[과학을 읽다]휘청√∫ⅷ∫√ 트라우마

정종오 입력 2016. 9. 27.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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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지진 그후..불안과 공포를 키운 네 가지
▲경주 지진 이후 불안과 공포가 아직 가시지 않고 있다.[사진=아시아경제DB]


[아시아경제 정종오 기자] 경주에 5.8 강진이 휩쓴 대한민국의 민낯은 공포와 불안감으로 얼룩졌습니다. 그 공포와 불안감은 아직 가시지 않았습니다. 이 같은 불안과 공포는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요. 안전 불감증이 불러온 총체적 공포가 그 원인이란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지진 안전지대'라는 인식이 강했습니다. 해방이후 5.8 규모의 지진을 경험한 적이 없습니다. 국민안전처와 기상청의 대처는 '어떻게 하면 국민을 이렇게나 실망시켜 줄까'라고 작정한 것처럼 실망스러웠습니다. 여기에 지진이 발생했는데도 그 원인과 전망에 대해 전문가마다 서로 다른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국민들은 어떤 것을 믿어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경주 근처에 있는 원자력발전소는 수동 정지값을 넘어섰는데도 정지되지 않았습니다. 국민들은 지진대피요령을 알지 못해 부랴부랴 인터넷을 통해 찾아보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공포는 '상황을 알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한 곳'에서 시작되기 마련입니다. 이번 경주지진의 '불안과 공포'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불안과 공포① "지진 안전지대 아니다"=우리나라는 지진 안전지대가 아닙니다. 이웃나라 일본이 강진으로 휘청거릴 때마다 '우리나라는 지진으로 부터 안전해!'라는 스스로의 위로감에 빠져 있었던 것은 아닌지 되묻게 됩니다. 지진 역사에 대한 면밀한 검토 작업과 분석도 필요해 보입니다.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수많은 강진이 일어났습니다. 지금까지 대중화되지 못하고 전문가들의 학문영역에만 머물러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역사 공부할 때 이를 한 장르로 만들어 아이들에게 교육시킬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서기 2년 고구려 유리왕 때부터 우리나라 지진의 역사는 기록돼 있습니다. 779년 신라 혜공왕 때는 지금처럼 경주에서 큰 지진이 일어나 집이 무너지고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도 전해집니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규모 6~7에 해당되는 강진이 수차례 발생했습니다.

1518년, 중종 13년에 한양에서 지진이 발생했습니다. 중종실록에는 당시 상황을 "유시(酉時)에 세 차례 크게 지진(地震)이 있었다. 그 소리가 마치 성난 우레 소리처럼 커서 인마(人馬)가 모두 피하고, 담장과 성첩(城堞)이 무너지고 떨어져서, 도성 안 사람들이 모두 놀라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모르고, 밤새도록 노숙하며 제 집으로 들어가지 못했다"고 기록했습니다.

크게 흔들리고 담장이 무너지고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현장 묘사로 봤을 때 최소한 규모 5.0 이상의 지진이 일어났음을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나라는 지진이 일어나면 '집에 못 들어가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지진 해일이 관측된 기록도 존재합니다. 1643년, 인조 21년에 일어난 지진입니다. 승정원일기에는 "안동에서 시작해 영덕 이하에서부터 옆으로 돌아 금산에 이르기까지의 각 고을에 이달 9일 신시와 10일 진시에 두 차례 지진이 일어나서 성첩이 많이 무너졌다"라며 "울산도 같은 날 같은 시각에 지진이 일어났는데 바다 가운데의 큰 파도처럼 물이 격렬하게 솟구쳐서 육지로 1, 2보까지 밀려 왔다가 도로 들어갔다"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지진이 발생한 뒤 해일이 덮쳤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또한 당시의 모습으로 분석해 봤을 때 규모 6.0 정도의 지진에 해당될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외에도 1681년 숙종 7년에 강원도에서 큰 규모의 지진이 발생했음을 역사서에서 전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지진의 역사로 비춰봤을 때 우리나라는 지진으로부터 안전한 게 아니라 '언제든 지진이 발생할 수 있는 지역'임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역사적으로 일어난 지진과 계측기로 측정한 지진을 비교해 보면 거의 일치한다는 점은 상징하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

강태섭 부경대 지구환경과학과 교수는 이 같은 조선시대 지진이 기록역사를 설명하면서 "공포는 우리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것을 경험하게 되면서 비롯된다"며 "역사서를 보면 한반도에 끊임없이 지진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강 교수는 "역사적 기록을 통한 지진 분석은 물론 과학적 장비를 통한 진단작업 등이 있어야 지진으로 부터 국민을 보호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불안과 공포② "대책 없는 정부"=국민안전처의 지진 대처는 그야말로 '공포'를 더 키웠습니다. 지진이 발생한 지 수십 분이 지나서야 긴급 문자를 발송하고 홈페이지가 다운되는 것은 다반사였습니다. 기상청은 지진이 일어난 뒤 진앙지를 잘못 분석하는 등 아주 기초적인 사실조차 헷갈려 하는 등 상식 밖의 행태를 보였습니다. 지진 대피요령도 현실에 맞지 않는 등 한 마디로 지진에 대한 정부의 대처와 지진 이후 행동요령은 시대착오적 한계에 부닥쳤습니다.

여기에 전문가들의 서로 다른 해석 또한 국민에게 공포감을 던져주었습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은 2012년 비공개된 보고서에서 "우리나라에서 강도 8.3 규모의 지진이 일어날 수 있다"고 했다가 뒤늦게 "이 같은 보고서는 정밀 분석 작업 없이 나온 부실한 보고서였다"며 "우리나라에서는 8.3 규모의 지진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해명하고 나섰습니다.

이번에 지진이 발생한 양산단층에 대한 전문가들의 해석도 엇갈리고 있습니다. 양산단층은 이미 1994년부터 지진 발생가능성이 있는 활성단층(제4기 단층)이라는 전문가들이 의견이 제시됐는데 정부는 이를 묵살했다는 정황이 곳곳에서 밝혀지고 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는 수많은 활성단층이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최성자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박사는 "추가령, 왕숙천, 당진, 인제, 영광단층 등은 활성단층일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며 "이 같은 단층들에 4기 단층의 징후가 발견되고 있는데 추가 조사를 통해 이를 규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지진연구는 제자리걸음에 머물러 있는 실정입니다. 지진의 공포는 커지는데 관련 연구는 이뤄지지 않고 있는 답답한 현실을 보여줍니다.

◆불안과 공포③ "원전의 위험성"=무엇보다 국민을 더 큰 공포에 몰아넣은 것은 경주 근처에 있는 원자력 발전소에 있습니다. 규모 5.8보다 강한 지진이 덮쳤을 때 원전에 이상이 발생하면 전 국토가 심각한 위험상황에 빠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수력원자력 측은 "원전은 6.5~7.0까지 견딜 수 있는 내진설계가 돼 있다"며 '끄떡없음'만을 강조했습니다. 이 같은 자신감(?)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이번 지진으로 수동 정지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월성 원전을 수동 정지해야 하는 '값'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어느 하나라도 이 값의 기준치를 초과하면 정지해야 합니다. 지난 12일 '한수원 월성본부 지진경보 발생관련 상황보고자료'를 보면 지진 가속도 값은 그동안 발표해 온 0.0981g로 수동 정지 기준(0.1g)을 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또 다른 수동정지 기준 값인 '응답스펙트럼 값'이었다. 응답스펙트럼 값은 당시 0.426g로 산출돼 해당 주파수대의 수동 정지 기준(0.3g)을 초과했습니다. '응답스펙트럼 값'이란 지진이 발생했을 때 건물이나 설비 등이 가지는 고유한 특성(진동수 또는 주파수)에 따라 최대로 흔들리는 값을 그래프로 나타낸 것을 말합니다.

그동안 원전안전위원회와 한수원은 "지진 자동정지 설정 값에 도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즉시 수동정지의 필요성은 없었고 4시간 만에 중단 결정을 내린 것은 예방점검 차원의 선제적 조치"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습니다. 이 같은 해명이 거짓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신용현 의원(국민의당)은 "원안위와 한수원이 수동 중단 기준을 넘긴 사실을 철저히 은폐하며 국민을 속였다"며 "응답스펙트럼 값이 기준을 초과한 사실을 알게 된 즉시 원전 가동을 중단하고 정밀 분석을 했어야 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지진이 발생하면 가장 우선적으로 염두에 둬야 할 곳은 원전입니다. 원전사고는 예측을 불허할 정도의 심각한 피해가 발생합니다. 한수원 측은 또 다른 '정지값'을 공개하지 않았고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했습니다. 객관적 사실을 알려주지 않는 원전에 대한 신뢰는 무너지기 마련입니다. 국민의 공포가 커질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불안과 공포④ "내진설계 없다"=지진에 견딜 수 있는 건물은 우리나라에 어느 정도일까요. 지진이 현실화된 상황에서 이는 무척 중요합니다. 서울을 비롯한 전국 건축물 중 내진설계가 된 건축물은 6.8%에 불과하다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10개 중 1개 정도만 내진설계가 돼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현희 의원(더불어민주당)은 26일 전국 건축물 698만6913동 중 내진설계가 된 건축물은 47만5335동으로 6.8%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지적했습니다.

전국 지자체별 내진설계 현황을 살펴보면 서울이 27.2%로 부산(25.8%)과 대구(27.2%)에 이어 내진율이 저조한 상위 3개 도시에 꼽혔습니다. 대도시를 중심으로 내진설계가 거의 되지 않아 강진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병원도 내진설계가 미흡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인재근 의원(더불어민주당)은 교육부와 보건복지부로부터 받은 '전국 국립대학병원 내진보강 대상건물 등 현황'을 분석해 봤습니다. 그 결과 지난해 기준 전국 13개 국립대병원 중 내진설계적용 대상이 아닌 치과병원 3개를 제외한 72개 건물 중 33개 건물의 내진설계가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지적했습니다.

인재근 의원은 "지진 관측 이래 최대 규모였던 경북 경주 지진을 통해 우리나라가 더 이상 지진 안전지대가 아님을 모든 국민이 체감하고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며 "최근 이탈리아의 사례에서처럼 더 큰 규모의 지진이 발생한 후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정부는 병원 등 주요 다중이용시설에 대한 내진설계를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습니다.

정종오 기자 ikoki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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