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을 읽다]비(非)과학적인 '미친 전기의 나라'

정종오 2014. 9. 2.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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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산하 물들인 345·765kV 송전탑

[아시아경제 정종오 기자]가을엔 아름답게 물든 낙엽 대신 송전탑에 가로막힌 산들을 봐야 할 것 같다. 10년 넘게 이어온 밀양사태. 한 농민은 끝내 스스로의 분노를 이겨내지 못하고 분신하고 말았다. '밀양 할매'들은 아직도 고향 마을에서 송전탑 설치를 반대하는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경상도를 넘어 이제 경기도에 송전탑 갈등이 시작됐다. 경상도, 경기도뿐만 아니라 앞으로 전국 곳곳에 변전소와 송전탑을 둘러싼 갈등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는 최근 신경기변전소 후보지로 ▲여주(2곳) ▲양평 ▲이천 ▲광주 등 5군데를 발표했다. 입지선정위원회가 여섯 차례 비공개 회의를 거친 뒤 결정한 것이라고 내놓았다. 후보지가 발표되기 이전에 이 지역에 사는 주민들에게는 한전의 '지속 가능 활동'이라는 선물이 제공됐다. 한전이 내놓은 선물은 다양했다. 공구세트, 냄비, 프라이팬… 한전의 '지속 가능 활동'이 이런 것이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는 주민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홍보물도 내놓았다. 한전이 뿌린 홍보물에는 "765㎸ 변전소와 송전탑에는 전자파의 위험 요소가 없다"는 데 있다.

한전 측은 "(전자파 기준에 대해)우리나라는 국제기준인 2000mG보다 낮은 수치인 833mG를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07년 6월18일 보고서 (Fact sheet No.322)에서 833mG에 단기 노출 되더라도 근육과 신경계 자극, 중앙신경계 내 신경세포에 변화를 일으키게 된다고 보고했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얼마 전 '전자파 인체보호 종합대책'을 내놓았다. 휴대폰, 냉장고, TV 등 일상적인 기계에서 뿜어져 나오는 전자파의 기준과 안전 대책을 발표했다. 늘 가지고 다니는 휴대폰에서 조차 전자파가 위험할 수 있다는 마당에 초고압 76만5000v의 송전탑에서는 전자파로부터 안전하다니 한전의 비과학적 접근이 점입가경이다.

전국의 고압 송전탑은 현재 4만1000여개. 앞으로 1700개가 더 들어선다. 대한민국의 온 산하에 송전탑이 꽂히고 있다. 그것도 시골지역을 중심으로 순박하게 살아온 농심(農心) 한 가운데.

대한민국은 '미친 전기의 나라'이다. 한전이 이처럼 시골 땅에 눈독을 들이는 데는 이유가 있다. 한전의 '머리'는 여기에 이르면 비상하게 돌아간다. 한적한 시골은 땅값이 비싸지 않다. 나이가 많은 노인들이 주로 산다. 국책사업이라고 하면 노인들은 "그랴? 국책사업인디 어쪄? 우리가 양보해야지"라고 받아들이는 경향이 크다. 땅 값도 싸니 들어가는 비용도 적다. 한전이 변전소와 송전탑 건립을 두고 시골 지역을 공략하는 이유이다. 자본과학을 기가 막히게 알고 있는 한전이다.

여기에 전략 구사도 지능적이다. 경기도의 경우 비공개 입지선정위원회를 통해 5군데 후보지를 결정했다. 그 과정에서 주민들의 의견은 철저하게 무시됐다. 주민들은 결정된 뒤 통보받았다. 한전은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5군데 지자체들은 서로 자신들 지역에 변전소가 들어오지 않기 위해 싸움을 진행한다. 이른바 '헝거 게임'이다. 한전은 내심 이들의 반대 여력과 파워를 가늠하면서 어느 지역이 가장 반발이 약한지 파악한다. 교묘한 전략이 아닐 수 없다.

'미친 전기의 나라'를 만들고 있는 한전에 날개를 달아준 것이 바로 '전원개발촉진법'이다. 1979년 박정희 유신정권은 '전원(電源)개발촉진법'을 만든다. 이 법은 전원사업(변전소, 송전탑 등)으로 지정되는 땅에는 19개 법률에 규정된 규제를 모두 피할 수 있도록 한 '친절한 안내서'이다.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이 누구든 전원사업으로 지정되면 강제로 수용할 수 있다. 국민의 선택권은 안중에도 없다. 돈 몇 푼 던져주면 그만이다.

765kV 송전탑은 그 크기가 94m에 이른다. 아파트 20층이 52m 정도이니 어느 정도의 크기인지 가늠이 된다. 이런 송전탑이 시골 동네 곳곳에 들어서니 온 산하가 송전탑 천지가 될 건 뻔하다.

상식의 과학으로 풀어보자. 우리나라는 과연 전기가 부족한가? 우리나라의 경우 전기가 부족할 때는 딱 며칠뿐이다. 찌는 여름과 살을 에는 겨울. 냉방과 난방을 위해 전기 사용이 집중될 때이다. 2013년 기준 우리나라 전력 설비용량은 약 8000만kW, 평균 전력 수요는 6000만kW로 알려져 있다. 전력 수요가 거의 없는 새벽에는 40% 가까운 전기가 낭비되는 실정이다. 전기가 없는 게 아니라 관리의 문제이다.

중요한 게 또 하나 있다. 비과학적 전기 요금 책정에 있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산업용 전기요금이 싸기로 유명하다. 얼마나 싸면 중국에 있는 기업들이 우리나라에 공장을 짓겠다고 하겠는가. 기존에 석탄이나 나무로 공장에 난방을 하던 것을 모두 전기로 바꿨다. 석탄이나 나무보다 전기가 더 싸기 때문이다. 산업용 전기 요금은 가정용 요금의 절반 수준이다. 일본과 독일 등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3분의1에 불과하다.

2012년 기준으로 5년 동안 가정용 전력 사용은 13% 증가하는데 그쳤다. 반면 상위 30개 기업의 전력 사용량은 50% 급증했다. 값싼 전기를 나라가 책임지고 기업에 제공하니 기업으로서는 안 쓸 이유가 없다.

기업이 잘 돼야 국민이 먹고산다는 명제를 정부는 늘 과학적 논리라고 내세운다. 국민보다는 늘 기업이 먼저다. 기업이 없으면 노동자도 없고 일자리도 없다는 거다. 과연 그럴까. 국내 대기업 총수들은 직원 배 불리는 게 아니라 자기 배만 가득 채운다. 횡령과 배임을 서슴지 않는다. 기업이 잘되면 국민이 잘 되는 게 아니라 기업이 잘되면 특정한 자(者)의 입 속으로 들어가고 만다. 검은 입속으로.

정부의 태도는 비(非)과학의 극치를 달리고 있다. 국무조정실(실장 추경호)에는 갈등관리지원관이 있다. 박근혜정부 들어 새로 만들었다. 국가적으로 이슈가 될 만한 갈등관리를 선제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목적이다. 밀양사태를 겪으면서 정부는 사업자와 주민 간 갈등이 예상되는 경우 '대화와 타협'으로 먼저 풀겠다고 했다. 그때뿐이다. 신경기변전소를 두고 여주, 양평, 이천, 광주 등 지자체는 한전과 격렬한 갈등을 겪고 있는데 국무조정실은 손 놓고 있다.밀양 사태를 겪으면서 충분히, 가슴 저리게 학습이 됐을 법도 한데 여전히 정부의 갈등관리는 '립 서비스'에 머물고 있다. 머리가 둔한 건지, 일부러 내 팽개치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한전이 후보지 주민들을 대상으로 냄비와 프라이팬을 뿌리면서 '지속 가능 활동'이란 것을 하고, 이미 만들어져 있는 변전소에 해당 주민들을 버스에 가득 싣고 견학시킨 뒤 버스 안에서 '변전소는 참 좋다!'는 등의 설문지를 강제하고 있을 때 정부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한 가지 더. 정부와 한전의 비과학적 논리는 또 있다. 변전소와 송전탑 반대를 위해 지역 주민들이 시위를 하거나 집회를 열면 언제나 정부와 한전은 "특정 세력이 개입해 주민들을 선동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쫌!변전소와 송전탑은 지역 주민들에게는 절체절명의 사건이다. 생존의 문제가 걸려 있다. 그곳에 특정 세력이 침투할 이유가 없다. 전기는 누구나 필요하다. 인정한다. 문제는 지금의 시스템으로는 안 된다는 데 있다. 도시와 농촌의 상생 방안이 필요하다. 이게 과학적 접근이다. 비공개로 입지선정위원회를 만들어 강행하는 한전을 이해할 수 있는 주민은 아무도 없다.

제발 과학적으로 접근하자. 한전의 '지속 가능 활동'과 국무조정실의 '무책임한 직무유기'는 과학적이지 않다. '미친 전기의 나라'에서 '누구나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전기의 나라'로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도시와 농촌이 상생하고 누구나 받아들이는 전기를 만들지 못할 바에는 국무조정실과 한전의 책임 있는 이들은 물러나는 게 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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