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파야가 피아노로 모방한 스페인 기타

2015. 8. 25.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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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마누엘 데 파야
“뚜두둥∼.” 눈을 감고 리드미컬한 악기 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분명 피아노 소리입니다. 그런데 계속 듣고 있으면 마치 누군가 거대한 기타를 치고 있는 듯합니다.

이상하지는 않은 일인지도 모릅니다. 스페인 기타리스트들의 연주를 그대로 모방해 피아노로 치도록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마누엘 데 파야가 쓴 ‘일곱 곡의 스페인 민요’(1914년) 반주부입니다. 원래는 성악가가 노래하도록 돼 있지만 바이올린이나 첼로가 솔로를 맡기도 하는 곡이죠.

오늘날 대중음악의 총아로 등극한 기타이지만, 서양음악사의 최정점으로 꼽히는 18, 19세기 고전 낭만 시대에는 인기를 잃고 단지 스페인 민속악기 정도로만 취급됐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연주회장의 확대였습니다. 오스트리아와 독일을 중심으로 한 중부 유럽에서 콘서트홀이 커지면서 현악기인 기타나 관악기인 리코더 등은 음량이 작아 ‘잘 들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외면을 받게 됐습니다. 음량이 작은 건반악기인 하프시코드가 큰 음량을 소화할 수 있는 피아노로 ‘진화’한 뒤 잊혀진 것도 같은 이유였습니다.

그러나 피레네 산맥 서남쪽의 스페인에선 기타가 계속 대접을 받았습니다. 근대 기타 자체가 스페인에서 서방의 ‘라틴 기타’와 이슬람의 ‘무어(Moor) 기타’의 장점만 결합해서 탄생한 것도 이유였습니다. 18세기에 스페인 궁정의 초청을 받고 이탈리아에서 건너간 작곡가 보케리니도 현악 4중주에 기타를 추가한 현악 5중주 등을 즐겨 썼습니다.

20세기에 기타가 전면적으로 ‘부활’한 것도 음량과 관계가 큽니다. 마이크와 앰프장치의 등장 덕에 대중음악에서는 악기가 가진 본래 음량이 중요하지 않게 되었으니까요. 아예 악기 자체의 음량은 없다시피 한 일렉트릭 기타가 어쿠스틱 기타보다 오히려 대접을 받는 것도 재미있는 일입니다.

9월 2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미샤 마이스키 첼로 리사이틀에서 마이스키는 딸인 릴리의 피아노 반주로 ‘일곱 곡의 스페인 민요’를 연주합니다. 기타는 등장하지 않지만, 오늘날 큰 콘서트홀에서 들을 수 있도록 피아노가 기타 흉내를 내는 반주부를 감상하며 기타의 역사를 돌아볼 만합니다.

유윤종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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