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클럽 공연 같았던 엘턴 존 라이브
27일 밤 서울 이태원의 소극장에서 500명을 앞에 두고 공연한 엘턴 존. 현대카드 제공 |
객석이라니. 무대 아래가 더 맞는 말일 거다. 손목 스냅만으로 물병을 던져도 바로 위에서 노래하는 사람을 맞힐 것 같았으니까. 은빛 보석들과 ‘E.J.’란 약자를 새긴 푸른 재킷을 입은 그 사람. 심리적 거리야 바다 저편쯤 됐다. ‘Candle in the Wind’ ‘Goodbye Yellow Brick Road’ ‘Rocket Man’ ‘Your Song’ 같은 명곡을 부르는 그 사람은 엘턴 존(68)이었으므로. 물리와 심리의 거리가 천지 차이니 100분 동안 네 번쯤 정신이 아득해졌다.
존이 3년 만에 내한공연을 연 곳은 서울 이태원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였다. 딱 홍익대 주변 라이브 클럽만큼 작은 공간. 앉는 자리가 없으니 입장권 구입에 20만 원씩이나 지불한 30∼50대 관객 전부는 2시간 가까이 서서 봐야 했다.
존을 포함한 6인조 밴드는 인디밴드의 에너지로 팝의 역사를 연주했다. 건반에 불이라도 난 듯 날래고 강하게 두드리는 존의 홍키통크 스타일 피아노는 잉베이 말름스틴의 기타 소리만큼 요란스러웠다. 데이비 존스턴의 기타가 겨우 피아노 소리에 육박한 ‘Don‘t Let the Sun Go Down on Me’는 그래서 도드라졌다. 노래가 끝나자 관객들 눈이 젖어 빛났다. 한 곡 끝날 때마다 존은 피아노 의자를 박차고 일어서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벌어진 앞니를 드러내고 스파이더맨의 악당인 ‘그린 고블린’처럼 직사각형으로 입 쩍 벌리는 그의 과장된 제스처가 방금 올림픽 100m 달리기 결승선을 끊고 포효하는 사람 같았다.
앙코르는 ‘Crocodile Rock’. ‘나∼∼∼∼ 나나나나나∼∼∼∼ 나나나나나∼∼∼∼…’의 여흥구를 제창하는 관객들의 즐거운 표정에서 ‘50만 원 냈어도 안 아깝다’가 읽혔다.
공연 내용은 3년 전 1만 석 규모의 경기장 공연과 대동소이했다. 단 하나의 아쉬움은 그때는 들려준 대곡 ‘Funeral for a Friend/Love Lies Bleeding’을 하지 않았다는 것. 대학교 때 늘 건강이 안 좋았던 나는 갑자기 요절하는 상상을 자주 했다. 병상에 누워 밴드 멤버들에게 편지를 쓰고 음반을 동봉하는 비극적이나 멋진 장면을 떠올렸다. ‘내가 죽으면 꼭 이 곡을 연주해줘. 다른 건 필요 없어….’ 오래 살아서 진귀한 공연을 찾아다니는 나. 지금은 필요한 게 너무 많다. 좋은 집, 비싼 차, 더 귀한 공연, 돈, 돈,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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