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소문 포럼] 전기도 정치도 경쟁이 답이다

최상연 2016. 9. 22. 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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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특파원으로 발령받고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힘들었던 건 빌린 집을 살림집으로 바꾸는 일이었다. 빈집에 수도·가스·전기를 신청하고 전화와 TV를 개통시키는 일이 생각보다 까다로웠다. 그중에서도 전기가 어려웠다.

전기 회사에선 묻는 게 어찌나 많던지 제각각인 맞춤형 요금제에 대한 설명이 길었다. 수력·화력·원자력발전 중 어떤 전기를 원하는지도 선택해야 했다. 대충 간략하게 하면 안 되겠느냐고 물었다가 ‘법 절차대로 진행 중’이란 차가운 답변을 들었다. 1시간쯤 걸린 전기 신청을 마친 뒤 짧은 영어에 기진맥진해 소파에 그대로 드러누웠던 기억이 있다.

오래전 경험이 갑자기 떠오른 건 어제 8월분 전기료가 포함된 아파트 관리비 청구서를 받아 들고서였다. 누진제 전기요금이 겁나 에어컨을 가구 취급하며 여름을 보냈다. 땀범벅인 침대에서 한밤중에 일어나면 냉장고에 얼려둔 생수병으로 몸을 식힐 때도 많았다. 그런데도 결국 요금 폭탄을 피해 가지 못했다. 워싱턴에선 방 4개짜리 커다란 개인 주택에 살았고 여름내 에어컨을 원 없이 틀었다. 하지만 서울 같은 폭탄 고지서는 구경을 못했다.

독점과 경쟁의 차이다. 전기 판매 독점으로 10조원 넘는 이익을 내는 한전과 달리 미국은 경쟁한다. 전기 회사가 묻는 게 많고 이용자가 선택할 것도 많지만 투명해서 불만이랄 게 크게 없다. 미국만이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경쟁 없는 전기 판매는 두세 나라뿐인데, 바로 요금 폭탄 이유를 정부만 아는 나라다.

당정이 주택 전기료에 선택 요금제를 도입하겠다지만 그 정도 땜질로 내년 여름은커녕 올겨울 전기료 원성이나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핵심은 한전의 폐쇄적 구조다. 누진제로 타올랐을 뿐 산업용·상업용·농업용 할 것 없이 전기 소비를 왜곡시켜 온 불합리를 한꺼번에 정리해야 하는데, 정답은? 물론 경쟁에 있다. 전 세계가 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경쟁 없는 국회가 이걸 해낼 수 있느냐는 점이다. 누진제를 손보자는 시도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번번이 무산된 건 ‘부자 감세’의 논리가 컸다. 그게 매번 집권당의 당론이었다. 한전 민영화는 야당이 당론 반대다. 수요·공급 논리인 시장 기능에 맡기자면 입법도 당론이란 독점 체제가 풀려야 한다. 그런데 우린 대통령과 당의 오너만 바라보는 정치다.

전기료만 그런 게 아니다. 모든 나랏일이 여야의 당론에 묶여 있다. 국가 안보도 예외가 아니다. 정부가 곧 제3의 사드 후보지를 발표한다는 데 성산포대가 아니라면 예산이 뒷받침돼야 한다. 야당이 반대 당론을 확정하거나 유지하는 순간 내년 예산 통과는 물 건너간다.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정부 예산안이 본회의에 올라가겠지만 당론에 묶인 거대 야당이 사드 예산을 통과시켜 줄 까닭이 없다.

친박과 친노가 부닥쳐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게 19대 국회다. 여야로 갈렸지만 배타적 유전자만은 복사판인 양쪽이 원리주의식으로 맞섰는데 이제 시작인 20대 국회는 더 문제다. 친박 당인 새누리당은 진박 당으로 담을 높였다. 친문 일색으로 바뀐 민주당 지도부는 야당 정체성 강화를 다짐한다. 상극의 정치, 오기의 대결이다. 북한 핵실험 때문에 만난 청와대 영수회담에서 대통령은 야당 대표를 배웅조차 하지 않았다는 게 오늘의 정치판이다.

구성원이 절반이나 바뀌고 새 인물이 충원돼도 정치가 늘 그 타령인 건 경쟁이 없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 수준으로 물갈이된 국회지만 열리면 패거리 싸움이고 표결만 하면 뒤틀린다.

시장통과 약수터를 누비며 귀에 못이 박이게 추석 민심을 들었다면, 그 민심이 정책이나 법안으로 연결돼야 하는데 듣는 귀와 표결하는 손은 주인이 다르다. 1인자의 말 한마디가 골목길 민심보다 중요하기 때문인데 이렇게 고장 난 정치를 바꾸려면 정치의 독과점이 먼저 깨져야 한다. 의원들을 당론에서 풀어주면 되는 일이다. 갑질 막겠다고 김영란법을 만든 국회가 못할 것은 또 뭔가. 그래야 전기세가 전기료가 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최 상 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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