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왕설래] 대통령의 노란발자국

배연국 2016. 10. 27.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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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청백리 맹사성은 젊은 시절에 기고만장했다. 좋은 집안에다 장원급제까지 했으니 세상에 거칠 게 없었다. 그가 처음 관직인 경기도 파주 군수로 나갔을 때의 일이다. 학문과 덕망이 높다는 무명선사를 만나러 암자를 찾았다. 그의 마음속에는 자신의 높은 학식으로 코를 납작하게 해주겠다는 오만과 독선이 가득했다. 그가 무명선사에게 물었다. “어떻게 해야 이 고을을 잘 다스릴 수 있겠소?” “나쁜 일은 하지 말고 좋은 일만 하시면 됩니다.” 선사의 대답에 그는 삼척동자도 다 아는 얘기라고 면박을 줬다. 그러자 선사는 “어린애도 다 알지만 실천은 팔십 노인도 하기 어렵지요”라고 훈계했다.

화가 난 맹사성은 급히 방문을 열고 나가려다 문틀에 이마를 부딪치고 말았다. 머리를 감싸 쥔 그에게 선사가 한마디 던졌다. “고개를 숙이면 부딪치는 일은 없습니다.” 그 말을 듣고 맹사성은 크게 깨쳤다. 그 이후 자신의 호까지 ‘옛 부처’라는 뜻의 고불(古佛)로 고쳤다. 겸손으로 무장한 맹사성은 마침내 세종시대를 꽃피우는 명재상이 됐다.

요즘 최순실게이트의 문틀에 부딪친 박근혜 대통령을 보면서 퍼뜩 떠오른 생각이 ‘젊은 맹사성’이었다. 최씨는 정부 인사권과 기업의 이권을 제 것인 양 주물럭거렸다. 대통령은 그녀가 마음껏 춤판을 벌일 수 있도록 뒤에서 북을 치고 장구를 쳤다. 권력에 취한 안하무인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결국 교만에서 내려온 맹사성은 명재상 자리에 올랐지만 교만의 정상에 머문 두 사람은 공도동망(共倒同亡)의 하산을 재촉하는 중이다.

때마침 초등학교 주변 횡단보도 앞에 노란발자국을 설치하는 운동이 번지는 모양이다. 노란발자국은 신호 대기하는 학생들이 차도 앞까지 나가지 않도록 인도 바닥에 그린 교통사고 예방시설이다. 실제로 차도에서 1m쯤 떨어진 이곳에 서 있게 했더니 사고가 크게 줄었다고 한다. 어디 어린이 교통사고뿐이랴. 아마 대형 사고를 낸 대통령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국민의 당부가 아닐까. 대통령 자신부터 고개를 숙이고 1m쯤 뒤로 물러나 보라. 문틀에 머리를 부딪치는 불상사는 결코 없을 터이니.

배연국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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