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왕설래] 낭만

입력 2015. 11. 29. 22:38 수정 2015. 11. 29. 22:39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낭만은 시대를 관통하는 정서다. 서양 예술사에서 낭만이 사조를 이룬 때는 18∼19세기다. 낭만은 그때만 세상을 덮었을까. 아니다. 이전에도, 이후에도 언제나 꿈틀거렸다. 기독교 교조주의가 하늘을 찌르던 12∼13세기, 애정과 무용담을 엮은 통속소설 ‘로망(roman)’이 유행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땠을까. “훨훨 나는 저 꾀꼬리/ 암수 서로 정답구나/ 외로워라 이 몸은/ 누구와 함께 돌아갈꼬(翩翩黃鳥 雌雄相依 念我之獨 誰其與歸).” 고구려 2대왕 유리왕의 황조가다. 떠나버린 계비 치희(雉姬)를 그리워하며 부른 노래다.

낭만은 억누를 수 없는 정서가 아닐까.

세계 고고학계에 낭만이 다시 꿈틀댄다. 이집트 파라오 투탕카멘 무덤의 벽 뒤쪽에 또 하나의 숨겨진 방이 있는 것 같다고 한다. 온 이집트가 난리다. 왜? 고고학을 낭만의 늪으로 이끈 파라오가 투탕카멘인 탓이다.

투탕카멘의 묘는 1922년 이집트 룩소스 ‘왕가의 계곡’에서 발견됐다. ‘사자의 안식을 방해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있으리라.’ 묘비명에 새겨진 경고에도 불구하고 석실과 석관을 열었다. 세계는 깜짝 놀랐다. 3000년 전의 유물이 대거 쏟아져 나왔으니. 역사 교과서마다 실리는 파라오의 황금가면 사진, 잠든 투탕카멘의 환생을 빌며 그의 얼굴을 덮은 가면이다. 1980년대 초 번역 출간된 C W 체람의 ‘낭만적 고고학 산책’. 책이 잘 팔린 것도 투탕카멘의 덕택이었다. 18세의 어린 파라오. 그의 석관 위에는 말라버린 꽃잎이 놓여 있었다. 누가 꽃을 놓아뒀을까. 왕을 보내며 눈물 흘렸을 어린 왕비 안케센나멘. 석관 뚜껑이 닫히자 마지막 선물로 꽃을 바쳤을까. 그 바람은 미망이었다. 미라로 누운 왕의 발은 수은에 검게 변해 있었다.

안방을 후끈하게 달구는 낭만도 있다. ‘응답하라 1988’. 8화의 평균 시청률 12.2%. 최고 시청률은 14%에 달했다. 케이블방송 최고의 시청률이다. ‘응팔 신드롬’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그 힘은 무엇일까. 낭만이 아닐까. 모두의 가슴에 간직한 지나온 시간 속의 낭만이 빼꼼히 고개를 내밀도록 하니.

‘헬조선’. 힘들기에 나오는 소리다. 이런 생각을 해 본다. 30년 전 ‘응팔 세대’는 힘들지 않았을까. 그럴 리 있는가. 고해(苦海)의 바다이기는 1980년대도 마찬가지다. 낭만은 고해를 넘는 배가 아닐까. 저린 가슴으로 꿈을 현실로 만들도록 하니.

강호원 논설위원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