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푸드오디세이]새끼 돼지 요리를 먹다..비주얼에 놀라고 맛에 또 놀라고

2014. 6. 30.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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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전에 어떤 육류 수입상으로부터 '물건'을 소개받았다. 스페인산 새끼 돼지였다.

스페인은 원래 새끼 돼지 요리로 유명하다. 그게 어찌어찌 한국에도 수입이 된 것이었다. 필증을 보니 정식 수입이었고 값도 비쌌다.

스페인에서도 싸지 않은데, 물 건너오느라 더 비싸졌다. 내장을 빼고 손질한 돼지 한 마리가 10만원. 이 정도 값이면 식당에서 요리해서 팔 수 있는 선을 넘기 때문에 포기했다.

필자는 새끼 돼지 요리를 만들기 좋아하고, 또 맛이 각별하다고 생각하는 요리사다. 그런데 원가만 10만원이면 여타 부재료를 합쳐 요리하면 도대체 얼마를 받아야 한단 말인가.

참고로 음식 재료비는 음식값의 40%를 넘기 힘들다. 임대료에 세금, 월급과 공과금 등을 합치면 이문이 남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10만원짜리 돼지의 요리값을 계산해보시라. 25만원 이상은 받아야 한다. 어지간히 여유 있는 미식가가 아니고서는 어려운 값이다.

스페인에서 새끼 돼지 요리를 먹으려면 세고비아가 제대로다.

물론 여타 지방에서도 발견할 수 있고, 수도인 마드리드에서도 언제든지 먹을 수 있다. 그만큼 유명한 일종의 '관광 요리'가 됐다. 원래 남부 이탈리아에서나 먹는 까르보나라 스파게티가 이탈리아 전역에서 팔리고, 북동부 지역 디저트인 티라미수가 남부의 시골에서도 팔리는 것과 같은 이치다.

새끼 돼지 요리는 한 마리를 통째로 시키는 게 좋다. 부위별로 고루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코치니요 아사도(Cochinillo Asado)'라고 부르는 게 정식 명칭이다. 어린 돼지 로스트(구이)라는 뜻이다.

여담인데 서양 메뉴판에서 로스트가 나오면 오븐에서 천천히 익힌 것, 그릴이란 말은 곧바로 무쇠틀에서 직화로 구운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로스트 고기는 미리 해둘 수밖에 없는데, 더러 오래돼 퍽퍽한 것을 먹을 수도 있다. 그릴이라면 당연히 곧바로 구운 것을 뜻한다.

스페인에서 새끼 돼지 구이를 시키면 웨이터가 접시로 가운데를 잘라주는 퍼포먼스를 한다. 그만큼 바삭하고 부드럽게 익었다는 걸 과시하는 것이다.

바삭하고 부드럽다? 이게 무슨 말인가. 껍질은 바삭하게, 속은 촉촉하게 익혀야 제대로 된 새끼 돼지 구이다.

'꽃보다 할배'라는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면서 이 요리가 전파를 탔는데 TV에서는 웨이터가 고기를 자른 접시를 깨뜨렸다. 액운을 부수고 사기(邪氣)를 없앤다는 미신에서 비롯된 퍼포먼스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경우는 드물다. 큰 행사나 있어야 깨고 부순다.

이탈리아에서도 새끼 돼지를 요리한다. 스페인처럼 아주 작은 돼지가 아니라 제법 큰 돼지다.

생후 6개월 정도 된 것을 잡아서 천천히 굽는데, 한국에서 이른바 '팔도향토장터' 같은 곳에서 하는 돼지 바비큐와 비슷하다.

포도나무와 올리브나무 가지를 모아서 태우고 쇠꼬챙이에 끼운 어린 돼지를 천천히 돌려 굽는다. 돼지 입에 사과를 물리는 것도 비슷한 풍습이다.

이렇게 구운 돼지는 기름이 뚝뚝 흐르면서 아주 맛있게 보인다. 그냥 소금을 쳐서 먹거나 빵에 끼워 샌드위치처럼 먹는다. 이탈리아 축제의 자리에는 이런 돼지 요리를 파는 행상들이 있어서 간단하게 한 끼 때우며 행사를 즐길 수 있다.

구운 돼지 요리의 핵심은 껍질이다. 껍질을 바삭하게 굽는 게 포인트인데, 쉬운 기술은 아니다. 우선 낮은 불에 천천히 구워서 속까지 고루 익힌다. 그리고 마지막 몇 분 정도 센 불에 구워서 껍질을 바삭하게 만드는데 이 과정에서 요리의 성패가 갈린다. 굽는 동안 더 바삭하게 만들려고 돼지기름이나 올리브유를 껍질에 발라가며 굽기도 한다.

부드러운 살은 살살 녹고 껍질은 바삭하게 부서지고…. 껍질은 마치 과자처럼 부서진다. 그 밑에는 기름이 잘잘 흐르는데, 먹다 보면 너무 맛있어서 턱 밑으로 기름이 흐르는 줄도 모른다. 여기에다 술 한잔을 딱 곁들이면 최고다. 절대 고급 와인은 필요 없고, 싸구려 레드 와인이면 족하다.

이런 돼지 구이는 필리핀 관광을 가서도 흔하게 볼 수 있다. '레촌 바보이(Letchon Baboy·통돼지 구이)'라고 부르는 요리다. 숯불 훈제향까지 더해져 훨씬 맛이 좋아진다.

필자는 캠핑 가서 이런 요리를 하기도 한다. 새끼 돼지는 구할 수 없으니 삼겹살을 쓴다. 껍질이 붙어 있는 채로 사서 허브에 재운다. 그 다음에 숯불을 충분히 피워 고기를 멀리 떨어뜨려 놓고 천천히 굽는다. 숯불이 너무 세지 않게 관리하면서 오래 두고 익힌다. 이렇게 익히면 숯불 훈제가 돼 맛이 기막히다. 마지막에는 껍질 부분을 팬에 직접 구워서 바삭하게 만든다. 일종의 짝퉁(?) 새끼 돼지 구이가 되는 셈이랄까.

우리나라도 새끼 돼지 요리가 꽤 있다. 진안의 애저찜이 꽤 유명하다. 역사 서적에는 원래 광주가 명물이라고 쓰여 있다. 물론 광주에도 애저찜을 파는 집이 있다. 실학자 서유구의 '정조지(鼎俎志)'에도 기록돼 있다. 출산하기 두어 달 전 태중의 돼지를 써야 제격이라고 하는데, 요새는 생후 20일 정도 된 것을 많이 쓴다. 과거에는 사산하는 것을 많이 썼다고도 한다. 핏물을 빼고 마늘, 전피(초피나무 껍질), 생강, 청주를 넣어 끓이다가 고기가 완전히 익으면 양파, 대파를 넣고 푹 끓이는 게 요리법이다.

진안의 애저찜은 미리 익혀둔 것을 한 번 더 끓여준다. 돼지 통 마리가 아니어서 그다지 거부감은 없다. 살은 야들야들하게 찢어진다. 살 맛이 진하지 않기 때문에 부드러운 백숙을 먹는 것 같다. 어린 돼지는 아직 삼겹살이 발달하지 않았고, 살도 진한 적색이 아니다. 2인분에 4만원. 묵은 김치를 곁들여 싸 먹으면 더 맛있다.

새끼 돼지이니 아저(兒猪)라고 불러야 하는데, 불쌍하다 해서 한자로는 '애저(哀猪)'라 표기한다는 속설도 있다.

다 먹고 나면 맵게 탕을 끓여서 밥을 먹을 수 있다. 진안 진안관(063-433-2629), 광주 또식당(062-222-1355)이 유명하다. 옛 가정생활백과인 '시의전서'에는 '아저찜'이라고 나오고, 일제 때 요리 서적인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는 '아저증(兒猪蒸)'이라고 소개됐다.

새끼 돼지로 만드는 가장 놀라운 요리는 애저회다. 문자 그대로 회로 먹는 것이다. 제주 동문시장의 한 식당에서 그 광경을 직접 보기 전에는 설마 날회일 줄은 몰랐다. 보통 익힌 것도 양념하지 않은 상태로 내는 걸 '회'라고 하지 않는가. 그래서 익힌 새끼 돼지를 차게 식혀서 양념을 찍어 먹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주문을 하니 2만원짜리 한 대접이 나온다. 그냥 걸쭉한 액체다. 돼지를 통째로 갈았다는 것이다.

"아이고, 뭘 자꾸 물어. 뼈고 내장이고 싹 갈았어." 시장 내 정육점에서 태중의 돼지를 사온다는 말을 듣고, 가서 취재했다. 동문시장 내에서도 딱 한 집만 판다. 물어보니 "나올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고"라며 심드렁하다. 이제 이런 요리는 거의 먹는 사람들이 없다는 뜻이다. 태중의 돼지를 갈고, 거기에 온갖 양념을 한다. 비릿한 액상에 맛을 더해야 하므로 깨, 참기름, 설탕, 식초, 미나리, 부추, 파, 마늘 등 갖가지 재료가 다 들어간다.

마침 식당에서 아침 해장 중이던 상인들과 나눠 먹었다. 그분들은 흔하게 먹을 수 있는 요리가 아니다 보니, 반가워하는 눈치였다. 훌훌 마시고 탁배기를 한잔 곁들인다. 정력에 좋고 속이 확 풀린다고 한다. 약으로야 먹겠지만 이제 제주 사람들도 거의 먹는 요리가 아니다. 날것이어서 아무래도 비위가 상하고, 먹고 해장할 게 지천인 세상이니 굳이 구하기 어려운 재료로 만든 것을 찾아 먹겠나 싶다.

[박찬일 요리연구가]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763호(06.25~07.01일자)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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