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우의 빨강] 불을 끄는 벌새

2015. 5. 4.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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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너무 바른생활 이야기 같긴 하지만 그래도 이런 이야기는 여전히 힘이 있다. "숲이 타고 있었다. 숲에 사는 동물들은 앞다투어 도망가기 바빴다. 그런데 작은 벌새 크리킨디는 혼자서 물을 한 모금씩 물어다 불을 끄느라 왔다 갔다 하며 땀을 흘리고 있었다. 도망가는 동물들이 크리킨디를 힐끔거리며 한마디씩 했다. 저런다고 별수 있겠어? 이 숲은 이미 가망이 없어." 벌새를 비웃으며 다들 숲을 떠나갔지만, 부리에 물을 문 채 부지런히 작은 날개를 파닥이며 크리킨디는 마음으로 외쳐 말한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 남미 안데스가 유래인 크리킨디 이야기가 우리에게 전해진 여러 경로 중 하나는 피에르 라비다. 그가 중심이 되어 2007년에 만든 생태 협동조합 콜리브리(Colibris)는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벌새라는 뜻의 콜리브리 철학은 소박하다. "각자 자기가 선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이 한 사람이 여러 사람이 되면 세상은 비로소 바뀔 수 있다." 언제까지나 농부로 불리고 싶어 하는 생명농업학자이자 철학자인 피에르 라비, 자급자족하는 그의 '자발적 소박함'의 이야기들은 접하는 것만으로도 치유가 일어나는 힘이 있다. 소로, 에머슨, 니어링 부부 등의 계보가 지닌 건강함이다. 콜리브리 철학이 너무 모범적인 것 같아 어쩐지 오글거린다고? 세상의 변화란 그렇게 자그마한 관계에 최선을 다하는 태도로부터 비롯해온 것 아닐까. 한탄하며 기운을 고갈시키느니 내가 옮길 한 방울에 최선을 다하는 게 낫다.

김선우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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