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화, 문제는 분배다]상·하 계층 자녀 대학 진학률 24%P 차이.. '돈'이 '꿈'도 갈라놨다

임지선 기자 2014. 6. 12.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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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불평등

서울 강남의 한 중학교에 다니는 2학년 김모군(14)은 일주일에 한 번씩 '진로 코칭 과외'를 받는다. 진로 코칭 과외란 외교관이 꿈인 김군에게 중학교 성적은 어느 정도 나와야 하고, 영어 실력과 제2외국어 실력은 어느 수준까지 끌어올리고, 동아리 활동은 어떤 게 좋은지 등을 일일이 상담해주는 '과외 아닌 '과외'다. 김군의 부모는 과외 선생님의 조언에 따라 여름방학 동안 해외 영어캠프에 참가시키고 국회 청소년 인턴자리 등이 있는지 알아볼 계획이다. 이 과외 선생님은 시간당 20만원씩 받으며, 한 달에 두 번 집으로 찾아온다.

이런 컨설팅은 과거에는 입시기간에만 반짝했지만 학교생활기록부와 서류전형 등이 중요해지면서 이제는 중학생들도 진로 코치를 일상적으로 받는 시대가 됐다. 물론 부모가 고소득층인 경우에 해당하는 얘기다. 의사인 김군의 부모는 한 달 수업이 1000만원을 넘는다.

김군에게 들어가는 사교육비는 이뿐만 아니다. 영어 과외와 수학 과외 모두 합해 150만원가량 들어간다. 진로 코칭 과외까지 합하면 한 달에 200여만원이 들어가는 셈이다. 김군은 "계획적으로 꿈에 다가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올해 서울 명문대에 진학한 김군의 형은 고등학생 때 시간당 100만원씩 내고 독서 과외를 받았다. 과외 선생님은 서울의 한 대학교 시간강사다. 책을 읽어오라고 숙제를 내주면 '박사님'과 함께 책 내용을 놓고 토론을 하는 것이다. 성적이 우수했던 김군의 형은 평일에는 일반 학원을 다니고, 주말에는 이런 독서 과외를 받았다.

빈부 격차 해소 역할을 해야 하는 교육이 개인의 부를 대물림하는 시스템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많다. 대한민국 '사교육 1번지'로 불리는 서울 강남 대치동 학원가를 학생이 지나가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 외교관 희망 강남 중학생 시간당 20만원 진로 과외생계 바쁜 저소득층 아이 기초학력조차 못 따라가학력 차이가 소득 차이로… 다시 자녀에 빈곤 대물림

2014년 한국 사회의 극심한 소득 격차는 아이들의 학력에 영향을 주는 데 이어 '꿈'마저도 갈라놓고 있다. 고소득 가정의 아이들은 학교 수업은 물론 온갖 사교육을 동원해 대학 진학에 매진한다. 반면 저소득층 아이들은 부모가 먹고사는 데 바빠 자녀들을 많이 챙겨주지 못하면서 기초학력이 부진한 경우가 다반사다. 한 번 놓친 학교 수업은 따라가기가 벅차다. 학원은 돈이 없어 꿈꿀 수도 없고 공부에 대한 의욕도 떨어진다. 주변에 본받을 만한 롤모델도 없다. 흔히 성공한 사람으로 불리는 판사, 의사, 변호사 같은 직업을 장래희망으로 가진 아이들조차 드물다. 학벌이 중시되는 한국 사회에서 성공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인식되는 대학 진학은 아예 꿈꿔보지도 못하고 있다.

서울 송파구의 변두리에 사는 중학교 3학년 박모군(15)은 요리사가 꿈이었다. 중3이라 고교 진학을 고민하던 박군은 그러나 일찌감치 꿈을 포기했다. 요리사가 되기 위해 조리고등학교나 직업 전문학교에 진학하려고 알아봤지만 등록금이 일반계 고교보다 훨씬 비쌌다. 요리학원 역시 학원비가 없어 포기했다. 교내 그림그리기 대회에서 1등을 한 적이 있는 박군에게 선생님은 미술을 본격적으로 배우면 좋겠다고 했지만, 주 3회 한 달에 27만원 하는 수강료 앞에서 좌절했다. 엄마는 '돈 없다'고만 말했다. 이혼 후 간호조무사로 일하는 박군의 어머니는 한 달에 120만원 정도 버는데, 월세를 내고 생활비를 쓰고 나면 아이들 학원비를 대줄 여력이 안된다.

돈 때문에 '좌절'을 경험한 박군은 공부에 대한 의지도, 의욕도 낮다. 박군은 중학교 3학년이지만 보통 중3 학생이 배우는 내용들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중3 학생이면 학교에서 2차 방정식을 배우는데, 박군은 아직 1차 방정식도 잘 풀지 못한다.

저소득층 청소년의 교육기회 확대를 위한 비영리단체인 점프(JUMP)의 김유진 사무국장은 "부모는 방임하고 사교육에선 소외돼 있고 공교육은 붕괴되다보니 저소득층 아이들을 도와주는 네트워크 자체가 없다"며 "학교에 방과후 프로그램이 있지만 기초학력이 부진한 학생들은 그조차 따라가기 어렵고, 과외하는 학생들을 당해낼 수도 없다"고 말했다.

소득 불평등이 교육 불평등으로 이어지고, 이것이 진로 격차를 벌려 다시 소득 불평등으로 이어지는 악순환 고리는 이미 형성돼 있다. 소득계층에 따른 대학 진학률 차이는 통계 수치로도 확인된다.

전북대 반상진 교수와 조영재 박사과정 수료생이 지난해 2월 한국교육고용패널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소득계층별 자녀의 대학진학 격차 분석' 논문을 보면 소득 최상위(월소득 400만원 초과) 집단 가정의 대학 진학률은 82.6%로 나타났다. 반면 소득 하위계층(100만원 이하)의 대학 진학률은 58.3%에 그쳤다. 이 논문은 한국교육고용패널 조사 결과를 분석한 것이다.

유명 대학 진학률로 세분해보면 격차는 더 벌어진다. 월소득이 400만원을 초과하는 계층에서는 10개 유명 대학 진학률이 28.4%였으나 월소득 100만원 이하 계층에서는 1.6%에 불과했다. 소득 최상위 집단의 자녀는 소득 하위 집단의 자녀보다 유명 대학 진학률이 17배 이상 높다.

반 교수는 "소득계층별 대학 진학률 격차는 월소득 100만원 이하 집단보다 소득 최상위 집단 자녀의 사회·경제적 성공 가능성이 월등히 높음을 의미한다"며 "학교 교육 외에는 사회·경제적 성공과 계층 상향 이동의 희망이 거의 없는 저소득층 자녀의 경우 대학 진학의 실패는 부모세대의 빈곤 대물림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교육 불평등은 올해 서울대 고교별 합격생 현황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새누리당 박인숙 의원이 지난해 서울대에서 받은 '2014학년도 고교별 합격 현황'(최초 합격 기준) 자료를 보면, 서울 지역 전체 25개구의 일반고 졸업생 가운데 서울대 합격생 수는 502명이었다. 이 중 강남3구(강남·서초·송파) 출신이 251명으로 50.0%였다. 서울지역만 보면 일반고 출신 서울대 합격생 2명 중 1명이 강남 출신인 셈이다. 서울대 일반고 출신 신입생 1580명 전체로 확대하면 강남 출신은 15.8%로, 일반고 출신 신입생 6명 중 1명꼴이다. 이 비율은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특히 다양한 잠재능력을 계발·평가하자는 취지로 도입된 입학사정관제 등 각종 입시 전형은 저소득층 아이들을 상위권 대학 진학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게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자기소개서에 들어가는 대표적인 '스펙'인 인턴 경력만 봐도 부모의 재력과 인맥에 의해 좌우된다. 재력 있고 사회적 위치가 높은 부모일수록 인맥이 넓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국회의 한 보좌관은 "국회의원이 '친구 아들·딸'이라면서 자리를 주선할 경우 책상과 컴퓨터만 있으면 무급 인턴은 사실 언제든지 가능하다"며 "공개채용이 아닌 인턴 자리는 아는 사람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전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서 언어영역 고액 과외를 하는 한 강사는 "확실히 부유한 집안 아이들이 더 많은 정보와 기회를 갖는다"며 "특히 전형이 다양해지는 상황에서는 정보 취득과 컨설팅 의뢰가 가능하냐 여부가 중요한데, 이게 결국 돈"이라고 말했다.

입시 전문가인 하늘교육 임성호 대표이사는 "일반계 고교와 특목고 학생들의 대입 자기소개서와 서류를 보면 양과 질에서 확연히 차이가 난다"며 "보통 학생들이 구청 등에서 봉사활동을 했다고 써놓는다면, 특목고의 고소득 가정 아이들은 자기소개서에 경찰 과학수사대 봉사활동, 청소년 인턴, 청소년 기자 등을 했다고 쓴다"고 말했다.

학력 차이는 결과적으로 일자리와 임금 격차로 이어진다. 고졸 출신들은 정부가 정책적으로 각별히 신경쓰지 않는 한 일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명박 정부에서 '고졸 채용'을 강조하면서 공공기관에서 고졸 채용이 일부 이뤄졌는데, 이마저도 박근혜 정부 들어 경력 단절 여성 일자리 창출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줄어드는 추세다. 2012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1년 미만 경력의 대졸 이상 취업자 임금은 220만3662원으로 고졸 출신 임금(149만8142원)보다 47% 많았다. 특히 대졸자가 취직하자마자 받는 임금은 중졸 이하 학력자가 10년 일해야 받는 임금(232만원)과 비슷했다. 학력 격차가 소득 격차를 가져오고 소득 격차가 다시 자녀의 학력 격차를 불러오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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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지선 기자 vision@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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