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파식적] '피싱' 공약

2015. 11. 29.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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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코미디언인 야코브 하우고르(Jacob Haugaard)는 1979년부터 사람들을 웃기겠다는 일념으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다. 공약은 허무맹랑 자체였다. 하루 중 자유시간 8시간, 휴식 8시간, 취침 8시간 의무화, 좋은 날씨 제공하기, 발기불능자를 위한 권리 확보 등…. 세 번의 낙선 후 1994년 네 번째 도전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무려 2만3,253표를 얻으며 의회 입성에 성공한 것이다. 무소속으로 출마해 국회의원에 당선된 것은 덴마크 역사상 처음이었다. 유권자들이 그의 황당 공약에 표를 던지는 형식으로 기성 정치를 비웃은 것이다.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선거의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일단 내뱉고 보자는 식의 공약(空約)이 수없이 남발되는 이유다. 우리에게는 1971년 제7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진복기 정의당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전쟁을 일으켜 북진 통일을 하겠다'는 등의 주장을 한 것이 황당 공약의 시조. '결혼하는 커플에게 1억원 지급(허경영)' '지역감정 조장하는 정치인 때려 죽이기(서상록)' 등도 이에 못지않다. 하지만 이 공약들은 애초부터 믿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웃음으로 넘길 수 있다. 문제는 유명 정치인들조차 지키지 못할 약속을 떠벌리는 것이다. '쌀 시장 개방을 막겠다' '농가부채 탕감' '747(7% 성장, 국민소득 4만달러, 세계 7대 강국)' 등 현실과 동떨어진 주장을 외치다가 포기한 역대 대통령들이 여기에 속한다.

미국 민주당 대선주자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의 공약을 담은 e메일이 구글의 e메일서비스인 지메일(Gmail)로부터 '피싱 사기 문자'로 몰리는 치욕을 당했다. 메일 내용에 대학등록금 무료화 등 파격 공약이 담겨 있자 일부 이용자에게 "사기일 수 있다"는 경고문을 보낸 것. 만약 지메일이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내건 공약을 필터링한다면 피싱 판정을 받지 않고 통과할 이가 몇이나 될까.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꼭 한번 해봤으면 좋겠다. /송영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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