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파식적] 어메이징 그레이스

한기석 논설위원 입력 2015. 6. 29. 20:59 수정 2015. 6. 29.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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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기독교 신자가 아닌 사람에게도 익숙한 찬송가 '어메이징 그레이스'의 1절이다. 노래는 '잃었다(lost)'와 '찾았다(found)', '눈멀었다(blind)'와 '눈떴다(see)'를 절묘하게 대비시켜 '놀라운 은혜'를 입은 기쁨을 얘기하지만 정작 불리는 자리에는 기쁨보다 슬픔이 함께했다.

노래가 만들어진 배경부터 슬픔이 있다. 영국인 존 뉴턴은 젊을 때 노예무역을 했다. 당시 노예선에 태워진 흑인은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아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죽는 경우가 많았다. 그는 뒤에 노예무역을 그만두고 사제가 돼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후회하며 '어메이징 그레이스'의 가사를 썼다. 노래는 영국에서 만들어졌지만 널리 불린 곳은 미국이다. '어메이징 그레이스'는 특히 백인에게 땅을 빼앗긴 채 학살당한 인디언의 슬픈 영혼을 위로했다.

미국은 1838년 동부에 거주하던 체로키 인디언 1만5,000여명을 서부로 강제 이주시켰다. 이 과정에서 4,000여명이 질병 등으로 사망했다. 체로키 인디언은 1,900㎞의 길을 걸으며 슬픔을 삼키기 위해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불렀다. 그들이 걸어간 길을 '눈물의 길(Trail of Tears)'이라고 일컫는 이유다. 지난해 4월28일 진도 팽목항에서는 미국 바이올라대 합창단이 세월호 실종자의 생환을 염원하고 희생자의 넋을 기리는 공연을 했다. 합창단과 자원봉사자, 실종자 가족들은 공연 끝에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함께 부르며 아직 돌아오지 않은 아이들에게 놀라운 은혜가 가득하기를 기원했다.

흑인 교회 총기 난사 사건 희생자 장례식이 열린 26일 미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입에서 '어메이징 그레이스'의 첫 소절이 흘러나오자 참석자들이 하나둘씩 일어나 따라 불렀다. 슬픔에 잠겨 있던 장례식장은 웃음과 박수가 터져 나오며 놀라운 은혜로 가득한 감동의 장이 됐다.

한기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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