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서해에 국가는 없다 / 김연철

2016. 6. 26.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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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북방한계선 근처로 몰려오는 중국 어선을 바라보며, 서해의 어부들이 묻는다. 국가는 어디에 있는가? 여론에 밀려 정부가 무력시위에 나섰다. 단속이 효과가 있을까? 아마 없을 것이다. 정부가 문제의 본질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방한계선 근처에서 벌어지는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은 한-중 관계가 아니라 남북관계의 결과다.

중국 어선들은 북방한계선을 타고 들어왔다가 단속을 하면 북쪽으로 피신한다. 북한 경비정이 내려오지 못한다는 점을 알기 때문이다. 2009년 ‘대청해전’을 기억해야 한다. 중국 어선을 단속하기 위해 북방한계선으로 내려온 북한 경비정을 우리 함정이 격침시켰다. 2014년에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우리 군의 최우선 목표는 북방한계선 사수다. 목표를 달성했다. 결과는 어떤가? 북한은 단속할 수 없고 우리 어선은 접근하기 어려운 틈을 타, 중국 어선들이 몰려왔다. 긴장의 바다가 중국 어선들 입장에서는 기회의 바다가 되었다. 평화의 바다가 되지 않으면 중국 어선을 단속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서해에서 긴장의 파도가 친 것이 벌써 9년째다. 어민들의 절망이 깊다. 정부는 언제나 지원대책을 말한다. 늘 하나 마나 한 소리다. 고기를 못 잡고 관광객이 오지 않는데, 무슨 대책이 있겠는가? 해양 생태계도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 한강 하구의 생태계가 깨지면 결국 서해 중부지역까지 영향을 미친다. 어민들은 답을 알고 있다. 아니 누구든지 이성의 눈으로 보면 출구를 알 수 있다. 여당 의원과 여당 소속의 인천시장이 ‘남북공동어로’와 ‘남북해양시장’을 말하는 것은 당연하다. 2007년의 10·4 선언을 파기해 놓고 지금 와서 그런 말을 하느냐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 지금에라도 답을 안 것이 어디인가? 환영할 일이다.

다만 남북공동어로의 개념을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돈을 주고 북한 어장을 산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런 것이 아니다. 공동어로 수역은 바다의 비무장지대를 만드는 것이다. 평화수역 말이다. 누구의 바다가 아니라, 공동의 바다를 만들자는 것이다. 북방한계선이라는 직선을 고집하면 충돌은 불가피하다. 점선의 지혜를 받아들여야, 남북 어부들의 협력이 가능해진다. 경제적 접근만으로 어렵고, 평화와 경제가 어우러져야 한다.

공동어로 수역을 어디에 만들어야 할까? 이익이 있는 곳에 다툼이 있고, 그곳에서 호혜의 협력을 시작해야 한다. 연평도 앞바다가 충돌의 바다가 된 이유는 그곳이 바로 황금어장이기 때문이다. 갈등의 바다를 공동번영의 바다로 전환한 해외 사례들이 적지 않다. 생각을 바꾸면 얼마든지 방법을 찾을 수 있다.

누구나 답을 안다. 박근혜 정부가 현실을 보기를 바랄 뿐이다. 서해는 남북관계와 북핵문제의 연계가 왜 문제인지를 알려준다. 서해처럼 당장 해결해야 할 현안들이 적지 않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모두스 비벤디(잠정협정)의 지혜다. 비핵화에 모든 현안을 걸지 말라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와 급히 해결해야 할 일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최소한 우리에게 이익이 되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일에 정부가 나서야 한다.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서해는 역설의 공간이다. 냉전의 현장으로 변한 서해가 한반도에서 시들시들 말라죽은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언제나 평화의 꽃은 갈등의 땅에서 핀다. 관계가 악화되면 접경은 전선으로 변하지만, 관계가 개선되면 접경에서 협력이 시작된다. 서해에서 무너진 평화를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한다. 어부들이 삶을 지속하는 것, 그것이 서해를 지키는 일이다. 국가가 어디에 있는지를 묻는 어부들에게 정부가 답할 차례다.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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