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읽기] 메르스와 핵발전 / 윤태웅

2015. 7. 1.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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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사는 게 난리통입니다. 세월호 참사부터 메르스 사태에 이르기까지… 국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아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아내야 하는 형국이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사과나 위로를 하기는커녕 국회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며 짜증 섞인 분노만 쏟아냈습니다. 그냥 법안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논리적으로 정중하게 설명하기만 하면 될 일이었는데 말입니다. 대통령에겐 사람들의 고통에 공감하는 감성뿐 아니라 상황에 논리적으로 대처하는 이성도 부족했던 모양입니다.

세계보건기구와 국내 전문가가 함께한 메르스 합동 평가단은 정부가 관련 정보를 신속히 공개하지 않은 게 초기 대응에 실패한 원인이라 전했습니다. 불확실성은 큰데 제대로 알려진 게 별로 없으니 이런저런 말이 나올 밖에요. 그런데 정부는 다짜고짜 괴담 유포자를 엄단하겠다 했습니다. 환자한테 아프단 소리도 하지 말라 으르는 격입니다. 이제껏 우리가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상황이 발생하면 전문가라 하더라도 잘 모르는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하고 어떤 점이 확실하지 않은지 겸손하게 밝히는 게 그래서 필요합니다.

핵폐기물 처리와 탈핵도 마찬가지입니다. 경험도 없고 불확실성도 크지요. 그런 만큼 정보를 공유하고 시민의 공감을 얻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일입니다. 원전 이외엔 대안이 없다고 하는 이들도 있지만, 제겐 궁극적 탈핵 말고는 다른 대안이 떠오르질 않습니다. 원전에서 사고가 생기지 않는다 해도 사용후 핵연료를 어떻게 수만년 이상 안전하게 가둘 수 있을지 그 답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7차 전력수급계획(안)을 보면, 정부가 원전 비중 축소에 별 관심이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고 대책 비용은 그만두고라도 사용후 핵연료 관리 같은 뒷감당 비용이나 갈등 비용 같은 외부효과를 원전 발전 단가에 제대로 반영했는지도 여전한 의문입니다. 7차 전력수급계획이 이대로 확정되면, 15년 뒤의 원전 비중은 28.5%로 전망돼 6차 계획 때인 27.4%보다 외려 더 커지고 원전도 두 기 더 짓게 될 것입니다. 이미 예정된 11기를 포함하면 2029년까지 모두 13기의 원전을 새로 건설한다는 계획입니다.

고무적인 소식도 있었습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6월12일 고리원전 1호기의 영구정지(폐로)를 권고하였습니다. 역사적 결정이었습니다. 그 뒤에는 물론 폐로를 끊임없이 요구한 부산시민들의 노고가 있었습니다. 6월11일엔 '사용후 핵연료 공론화위원회'의 권고안이 공개됐습니다. 2051년까지 사용후 핵연료 처분시설을 마련해 운영하는 것이 핵심 내용입니다. 2020년까지 지하 연구소 부지를 선정해 처분 전 보관시설을 짓고 2030년부터 실증 연구를 시작하자는 제안도 들어 있습니다. 원전 불가피론자들뿐만 아니라 탈핵론자들도 함께 놀란, 혁신적인 이야기였습니다. 원전 작업복 같은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 터를 선정하는 데도 20년 가까이 걸렸음을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후쿠시마를 목격했는데도, 또 폐로를 시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는데도, 정부의 정책 기조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거꾸로 가기도 합니다. 6월21일 정부는 전기요금 인하 정책을 발표합니다. 한데 에너지정의행동의 누진 요금 분석에 따르면, 그 혜택도 주로 전력 소비 상위 28%가 받게 될 거라 합니다. 이런 이유로 요금 인하가 원전 건설을 위한 꼼수라 비판하는 소리마저 들립니다. 우리는 지금 사용후 핵연료 공론화위원회의 혁신적인 권고안이 실현될 수 있는 토양 위에 있지 않습니다. 원전 지역 주민의 고통과 미래세대의 부담에 공감하는 감성과, 핵발전의 지속 불가능성을 논리적으로 이해하는 이성이 필요한 때입니다.

윤태웅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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