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읽기] 생명과 반생명의 지도자 / 정태인

입력 2015. 6. 29. 19:00 수정 2015. 6. 2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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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지난 6월18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찬미를 받으소서'(Laudato Si)라는 제목으로 가톨릭 성직자 모두에게 기나긴 편지(회칙)를 발송했다. 2013년 가을 '복음의 기쁨'을 발표했을 때만큼은 아니지만 또 한번 전세계는 술렁거렸다. 교황이 다국적기업과 금융산업, 그리고 정치와 언론에 생태위기의 책임을 물었기 때문이다. "글로벌 환경정상회담의 실패는 우리의 정치가 기술과 금융에 종속되어 있다는 것을 간명하게 보여준다."

그는 보수파로 알려진 전임 베네딕토 16세를 인용하여 "자연환경은 우리의 무책임한 행동에 의해 심각하게 훼손됐고 또한 사회적 환경도 훼손을 겪고 있다. 이 둘은 궁극적으로 동일한 악덕 때문에 생겨났다. 우리의 삶을 인도할 명명백백한 진리는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인간의 자유는 무한하다는 관념이 바로 그것"이라고 강조했다. 우리의 누이이자 어머니인 지구를 살리려면 자본주의적 생산과 소비, 그로 인한 불평등과 '소비자주의'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자연과 사회, 그리고 인간의 마음이 공존과 연대의 원리에 의해 새로운 조화를 이뤄야 한다.

교황의 회칙은 오는 12월에 프랑스 파리에서 열릴 유엔기후변화협약 회의에 보내는 강력한 메시지다. 한국 정부도 이 회의에 제출할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공개했다. 정부 보고서는 2030년 온실가스 배출전망치를 8억560만t으로 추정하고, 이 수치에 비해서 14.7%(1안), 19.2%(2안), 25.7%(3안), 31.3%(4안)를 감축하는 네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이들 시나리오는 이명박 정부가 2012년 국제사회에 공언한 계획에 비해 크게 후퇴한 것이다. 당시 정부는 2020년까지, 2005년의 실제 배출량에 비해 4%를 줄이겠다고 발표했고 박근혜 정부도 2014년 초 국무회의에서 이 목표를 추인했다. 그런데 갑자기 1년여 만에 그 수치에 비해 7% 내지 30% 더 배출하는 쪽으로 유턴한 것이다.

실수로 손바닥을 뒤집은 게 아니다. 정부는 2014년의 제2차 에너지기본계획, 6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미래의 전기수요를 대폭 높여 잡았다. 전기요금을 값싸게 유지하고 나아가서 22%라는 비정상적인 예비율을 적용해 수요를 뻥튀기한 뒤, 이에 맞춰 다시 공급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최근 발표한 하반기 경제정책 속에도 정부의 전기 사랑은 담겨 있다. 언론에는 "한여름 전기요금 누진구조를 개편"해서 생계비를 절감해 주겠다는 갸륵한 뜻만 부각됐지만 수출·투자 활성화 항목에는 "토요일 중부하 시간대에 경부하 요금을 적용하여 기업의 전기료 부담(을) 완화"하겠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온 국민이 남아도는 전기 좀 더 쓰라는 얘기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사회경제적 패러다임의 변화"라고 세계만방에 선언한 "녹색성장"은 이렇게 핵마피아와 에너지 집약적 대기업을 위한 '줄푸세'로 귀결되었다. 세월호 대책이라던 "국가 대개조" 역시 '줄푸세'로 판명났다. 국가의 방역 시스템 일부를 민간병원에 맡긴 결과, 일파만파 번진 메르스 공포에 대해서도 '의료 민영화'가 답으로 튀어나올지 모른다.

한쪽에는 유민이 아버지의 손을 잡아주며 공감이 무엇인지 보여준 지도자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세월호 진상규명위원회를 무력화하기 위해 국회와 전쟁을 선언한 분이 있다. 한쪽은 "규제 없는 자본주의는 또 다른 독재"라고 규정하고, 다른 쪽은 "규제는 제거해야 할 암덩어리"라고 부르짖는다. 이쪽에서는 "공동의 집"을 위협하는 지구온난화에 함께 맞서자고 하는데, 저쪽에서는 대기업의 이윤을 위해 기존 계획마저 뒤집는다. 한쪽에는 생명이 넘치고, 다른 한쪽에는 반생명이 넘실거린다. 종교와 정치가 다르다는 사실만으로 이 천양지차를 모두 설명할 수 있을까?

정태인 칼폴라니 사회경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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