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별' 지구를 살리자] 선진국 환경파괴 답습하는 필리핀

2014. 9. 3.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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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양지 벗어나니 석탄광산.. 화력발전 난립으로 천혜환경 위협
관광섬 세부의 난개발 부작용..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의 그늘

에메랄드빛 바다와 하얀 모래사장, 허니문…. 필리핀 '세부'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다. 하지만 관광객들이 찾는 시내 중심가를 벗어나면 곳곳이 파헤쳐지고 갈라진 세부의 민낯이 눈에 들어온다. 세부 섬 주민들은 석탄뿐 아니라 구리, 티타늄 등 천연자원을 채굴해 수출하거나 시멘트나 플랜트 공장을 운영한다.

지난달 5일 세계일보는 세부 섬 북부에 위치한 도시인 보고(Bogo)를 찾았다. 세부시티에서 보고로 가는 길은 곳곳이 유실돼 있었고 아스팔트 포장이 제대로 되지 않아 뿌연 흙먼지가 날리기도 했다.

필리핀 세부 섬 톨레도시 인근에 위치한 석탄광산에서 광부들이 작업차량으로 석탄을 옮기고 있다.

보고에서 수㎞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석탄광산은 필리핀에서 세 번째 규모를 자랑한다. 탄광에서 캐낸 석탄은 곳곳에 나지막한 산을 이루며 쌓여 있었다. 광부들은 석탄 언덕 주변을 오가며 석탄을 실어나르기 바빴다.

이곳에서 4년째 일한 크리스토프 아욜로(43)는 "차에 실린 석탄은 대부분 세부 섬의 화력발전소로 향한다"며 "석탄을 캐내면서 산이 파헤쳐져 산사태가 자주 나고, 공기도 안 좋아졌다"고 말했다. 그는 "환경에 좋지 않다는 것은 알지만 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다"며 한숨을 지었다.

◆선진국 개발모델 답습하는 필리핀

세부의 모습은 1960∼1970년대 선진국의 발전 모델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석탄과 디젤, 천연가스 등을 활용한 화력발전소를 통해 1차 산업을 육성하는 방식이다.

필리핀에는 총 15개의 화력발전소가 가동 중이다. 2016년까지 3개를 증설하면 총 18개가 된다. 신설되는 발전소 가운데 2기는 석탄 화력발전소다. 석탄을 이용한 화력발전은 온실가스 배출이 많아 선진국에서는 각광받지 못하지만 필리핀에서는 싼값에 많은 전기를 공급할 수 있어 여전히 선호된다.

일찍이 친환경에너지의 하나인 수력발전이 발달했던 필리핀은 최근 수력발전소 증설 개수를 줄여가고 있다. 2010년 이후 신설된 수력발전소는 2기에 불과하고 앞으로 새로 지을 계획은 없다.

필리핀의 환경전문가 라리사 나레볼루(38)씨는 "필리핀의 현재 모습은 선진국의 잘못된 개발 모델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라며 "최근 선진국이 신재생에너지를 많이 생산하면서 배출권을 개발도상국가에 판매하고, 이를 사들인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더 많은 화력발전소를 짓는 악순환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는 환경오염에서도 국가 간 격차가 발생하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기후변화 전문가인 바칼로 랑가위(34)도 "정부의 발전소 정책은 환경을 파괴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며 "특히 선진국 자본으로 운영되는 공장이나 발전소에서 온실가스 배출권을 사들여 더 많은 오염원을 배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필리핀 세부 섬 톨레도시 인근 석탄광산에서 채굴된 석탄이 작업 차량에 실려 운송되고 있다.필리핀 기후변화 시민행동 제공

◆선진국과 저개발국 입장차만 확인하는 유엔기후변화협약

필리핀은 기후변화를 초래하는 자국 내 환경오염에 대응하기 위해 2009년 기후변화위원회(CCC)를 구성했다. 필리핀 대통령실 직속기관으로 다른 행정부처와 분리돼 활동하고 있는 CCC는 필리핀 헌법 9729조에 따라 기후변화를 모니터링하고, 정부가 정책을 만드는 데 이를 반영하도록 하고 있다. 발전소 건립 문제에 대해서도 다양한 모니터링 조직을 두고 분석해 정부의 에너지 정책에 권고안을 내고 있다.

세계 각국의 기후관련 단체와 환경문제 해법을 공유하는 것은 CCC의 주된 업무 가운데 하나다. 이 때문에 CCC의 위원들은 매년 각국에서 열리는 기후변화 관련 회의에 적극 참석해 국제 연대를 도모하고 있다. 최근에는 물공급 문제와 식량문제, 지속가능한 발전 문제, 친환경적 에너지 개발 문제, 스마트 기후 산업 육성 등 다양한 사업으로 활동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하지만 CCC의 성과는 아직 가시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다. 기후변화가 장기적인 과제라는 점도 이유 중 하나지만, 최근 기후변화 관련 국제 회의가 성과 없이 끝나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2012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당사국총회는 아무런 성과를 도출하지 못했다. 지난해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UNFCCC도 배출권 문제에서 선진국과 저개발국가 사이의 깊은 골만을 확인했을 뿐이다.

CCC의 제니퍼 로인(32·여) 사무관은 "무엇보다 국제적 연대를 통해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다가오는 프랑스 파리 UNFCCC 당사국총회에서 좀 더 가시적인 성과를 내도록 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세부=정선형 기자 linea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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