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옥의 백 투 더 클래식]쇼팽의 전주곡 '빗방울'..우울한 사랑이 퍼붓는 빗소리로

2014. 8. 25.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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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주 상드(George Sand, 1804~1876년)라는 프랑스 낭만주의 시대의 작가가 있었다. 본명은 '아망틴 오로르 루실 뒤팽(Amantine Aurore Lucile Dupin)'. 당대엔 흔치 않은 여성 작가던 그녀는 남장을 하고 시가를 입에 문 여걸이기도 했다. 열여섯 살에 지방 귀족이었던 뒤드방 남작과 결혼했지만 시골 영주 안주인으로서의 삶은 아니었나 보다. 남작과 헤어지고 두 아이와 함께 파리에서 새 삶을 시작했다. 오로르 뒤팽이라는 이름이 조르주 상드로 바뀐 것은 '앵디아나(Indiana)'라는 소설을 쓰며 작가로 데뷔하면서다.

영어로 '조지'라고 하는 '조르주'는 남자 이름이었다. 당시 여성 작가들이 종종 했던 방식이기도 하고, 남성과 여성의 삶이 모든 부분에서 평등해야 한다는 소신을 상징하는 행동이기도 했다. 앙드레 모로아, 도스토옙스키, 샤토브리앙, 스탕달, 에밀 졸라 등 당대의 수많은 지성들이 그런 그녀를 찬미하고 사랑했다.

상드에게 6살이나 어린 연하의 피아니스트가 다가왔다. 피아노로 시(詩)를 쓰는 남자, 섬세하고 여린, 명주실같이 상처받기 쉬운 '유리알 같은' 남자였다. 프레데릭 쇼팽(Fryderyk Chopin)이었다. 1836년 리스트의 연인인 마리 다구 백작 부인의 살롱에서 만난 두 사람은 이내 사랑에 빠졌다. 심한 폐결핵으로 건강이 좋지 않던 쇼팽을 위해 상드는 따뜻한 스페인 남쪽 지중해의 섬 마요르카에 둥지를 틀었다. 두 아이도 함께.

상드의 열정적이면서도 모성애적인 사랑과 보살핌을 듬뿍 받으며 모처럼 깊이 음악에 빠져들 수 있었던 쇼팽은 이 시기에 많은 작품을 탄생시켰다.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로서 가장 생산적인 시기로 평가될 정도였다. 시를 음악으로 풀어 내는 작곡가답게 아름답고 영롱한, 그러면서도 강한 정열과 사랑이 담긴 곡들이 이어졌다.

하지만 두 사람의 평안함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생각보다 마요르카섬의 날씨는 좋지 않았다. 정식으로 결혼한 관계가 아닌 두 사람을 보는 섬사람들 시선도 곱지 않았다. 상드의 두 아이도 쇼팽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게다가 쇼팽의 건강은 날이 갈수록 나빠져 각혈을 했다. 의사는 그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선언했다.

그런 어느 날 상드는 두 아이들과 외출에 나선다. 마침 비가 왔고, 홀로 집에 남아 있던 쇼팽은 촉촉하게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마음이 젖어들었다. Ab와 Gb 음이 교차하면서 반복되는 피아노의 선율이 마치 빗방울을 연상시킨다고 해서 후세 사람들에 의해 부제가 붙은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이 탄생하던 순간이었다.

똑똑 떨어지는 빗방울의 단조로움으로 시작해서, 어둡고 묵직한 감정의 터널 속에서 이따금씩 세차게 퍼붓는 빗소리가 나타났다 사라짐을 반복하는 아름다운 곡이다. 상드는 그녀의 '회상록'에서 빗방울이 단조롭게 내리던 마요르카섬의 깊은 밤, 쇼팽이 연주하고 있던 이 전주곡을 추억했다.

이후 더 악화된 쇼팽의 병세 등 여러 어려움으로 두 사람의 사랑은 끝이 난다. 그로부터 1년 후 쇼팽은 세상을 떠났다. 그런 쇼팽과의 이별을 상드는 후회한 것으로 전해진다. 안타까운 것은 그 사실을 죽을 때까지 쇼팽이 몰랐다는 것. 그래도 쇼팽과 상드는 행복한 사랑이었다고 생각한다. 이토록 아름다운 결실을 세상에 남겼으니까. 채 마침표를 찍지 못한 사랑도 얼마나 많은데 말이다.

감상을 원한다면…

·CD

마우리치오 폴리니(Maurizio Pollini), DG 에밀 길렐스(Emil Gilels), Doremi

[최영옥 음악평론가]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771호(08.20~08.26일자)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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