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일의 천고사설] 사시와 로스쿨

한국일보 2015. 6. 25.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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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제 국가에서 대통령 한 사람의 역량이 중요한 것처럼 왕조 국가에서 국왕 한 사람의 역량이 중요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조선의 마지막 영군(英君)이라고 할 수 있는 정조가 재위 24년(1800) 6월 세상을 떠나자 세상이 시끄러워졌다. 경상도 인동(仁同ㆍ현 구미)의 명가 출신인 장시경(張時景) 일가가 정조 독살을 복수하겠다면서 마을 사람들을 이끌고 인동 관아를 습격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또한 정조의 급서에 충격 받은 삼사(三司)에서 어의(御醫) 처벌을 강력히 주창하고 나서 결국 심인, 강명길 두 어의가 사형 당했다. 이중 심인은 정조 승하 당일 영의정으로 승진한 노론 벽파 영수 심환지의 친척이자 심환지가 어의로 진출시킨 인물이었으므로 정조 독살에 대한 세간의 의혹은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정조의 죽음은 국가 공적시스템의 붕괴로 이어졌다. 정조 사후 순조가 즉위하면서 세도정치가 시작되고 민란의 시대로 접어드는 것이 이를 말해준다. 국가의 공적시스템 중 대단히 중요한 것이 인재 선발, 즉 과거제도이다. 등용문(登龍門)이라는 말은 황하 상류의 협곡 용문(龍門)을 잉어가 뛰어오르면 용이 된다는 속담에서 생겼지만 과거 급제를 용이 되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에 급제와 동의어로 사용되었다. 과거가 공정하면 나라의 미래에 희망이 있었다. 반면 과거가 문란하면 나라가 망할 조짐이었다.

망국과 동시에 자결한 선비 황현(黃玹)은 '매천야록'에서 "순조, 헌종 이후에 권세가와 외척들이 정권을 장악하자 모든 국사가 공도(公道)를 잃게 되었는데, 과거의 폐단이 더욱 심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황현은 "이른바 통과(統科)라는 것이 있었는데 여러 사람의 눈이 부끄러워서 만든 것으로 부잣집 자제(綺紈子弟)들만 뽑기 위한 것이었다"라고 덧붙였다. 조선 말에 부잣집 자제들을 뽑기 위한 통과가 있었다면 고려 말에는 홍분방(紅粉榜)이 있었다. 분홍방(粉紅榜)이라고도 하는데 나이도 어리고 실력도 없지만 과거에는 당당히 급제한 권문(權門) 자제들을 뜻하는 말이다. 조선 말의 통과와 고려 말의 홍분방은 나라가 망할 때에 나타나는 공통의 징조를 말해주는데, 곧 권세가와 부유층의 자제들이 관직까지 독점하는 현상이다.

순조 11년(1811)에 발생한 홍경래(洪景來)의 봉기도 발단은 과거제도의 부패였다. '홍경래전(洪景來傳)'은 과거에 낙방한 홍경래가 "당일 방(榜)에 이름이 오른 자들을 보니 거개가 귀족의 자질(子姪)들이었다"면서 "그가 감히 위를 범해 세상을 바꿀 결심(改造犯上之心)을 갖게 된 것은 이때부터였다"고 전하고 있다. '홍경래전'은 또한 '세도자 자제들은 과장에 가지 않아도 급제하지만 시골 선비는 한갓 노자와 다리 힘만 헛되이 하는데, 이들이 낸 답안지는 근시배(近侍輩)들의 휴지로 사용될 뿐'이라고 전하고 있다.

'세도가 자제들은 과장에 가지 않아도 급제한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어서 황현은 "공경(公卿)의 자제들은 과거시험이 있을 때마다 과장에 가지 않고 집에 앉아서 답안지를 써 올렸는데 이를 외장(外場)이라고 하였다"고 확인해주고 있다. 황현은 "이것도 처음에는 법으로 금지되어 두려워했는데, 요즈음에는 누가 왜 시권(試券ㆍ답안지)을 올리지 않느냐고 물으면 느릿느릿 응답하기를 '오늘은 외장이오'라고 대답한다"고 고종 때의 부패한 현실을 전하고 있다. 그래서 황현은 "재주 많고 학식 높은 사람은 자신의 뜻을 간직해서 일절 과거에 참여하지 않는 것을 고상하게 여겼다"고 말한다.

요즘 메르스가 번지면서 정부 고위관료들의 무능이 새삼 돋보이지만 고종 때도 마찬가지여서 황현은 "그때 사람들은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目不識丁)' 시험관이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거자(擧子ㆍ응시생)를 시험 봐서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자를 급제시킨다고 말했다"고 전하고 있다. 그러니 고종 31년(1894) 봉기한 동학농민혁명군이 백산 기의에서 "우리가 의(義)를 들어 여기에 이름은 그 본의가 결단코 다른데 있지 않고 창생(蒼生ㆍ백성)을 도탄(塗炭ㆍ진흙탕에 빠지고 숯불에 탐)에서 건지고 국가를 반석 위에 두고자 함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백성들을 살리고 나라를 반석 위에 두기 위해서는 백성이 일어나 썩을 대로 썩은 지배층을 일신해야 한다는 선언이었다.

사시(司試) 폐지와 로스쿨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사회 각 분야의 다양한 전문가를 법조인으로 기른다는 로스쿨 도입의 명분은 이미 간 데 없고 '돈스쿨'이란 말이 나올 정도다. "귤(橘)이 회수(淮水)를 건너가면 탱자가 되고, 담비가 문수(汶水)를 건너가면 죽는다"는 중국 속담이 있다. 로스쿨이 대한해협을 건너니 돈스쿨로 변했다고 해야 하나? 로스쿨 출신들 역시 무슨 기준으로 뽑히는 지 뽑은 자만 알고 있는 소수 판ㆍ검사 임용자를 제외하면 변호사 시장에서 찬밥 신세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실력 하나로 뽑는 사시로 되돌아가는 것이 이 사회의 미래를 위해 나을 것이다.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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