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 트렌드] 옛 기술의 진가 빛난 '엔진 다운사이징'

입력 2014. 7. 18. 16:30 수정 2014. 7. 18.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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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드의 999cc 엔진 에코부스트..100여 년 전 발명된 터보차저·직분사 활용

영국의 자동차 엔진 기술 전문지인 엔진 테크놀로지 리뷰는 1999년부터 매년 전 세계의 자동차 전문 기자들을 대상으로 투표를 진행해 '올해의 엔진'을 선정, 발표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발표된 '2014 올해의 엔진'에는 새로운 기록이 하나 추가됐다. 16년 만에 최초로 3년 연속 최고상을 거머쥔 엔진이 나온 것이다. 그 주인공은 바로 포드의 999cc짜리 3기통 가솔린엔진, '에코부스트(EcoBoost) I-3'다.

에코부스트 I-3 엔진을 본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놀라게 되는 이유는 엄청나게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대 이상의 파워 때문이다. 중·대형차를 선호하는 한국에서는 승용차를 산다면 대부분이 배기량 2000cc나 그 이상의 엔진이 달린 차를 사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999cc 엔진이라면 조그마한 경차에나 다는 게 아니냐고 반문할 법하다. 사실 할리데이비슨 같은 대형 오토바이에도 1200~1400cc가 넘는 엔진을 다는 것이 보통이니 승용차 엔진이 999cc라는 것은 너무 초라해 보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 100㎏도 안 나가는 작은 엔진이 내는 최고 출력은 무려 120마력이 넘고 최대 토크도 200Nm에 이른다. 이것은 1990년대 초를 풍미했던 1세대 쏘나타 2400cc 엔진이 내던 출력과 맞먹는 수준이다.

엔진이 이렇게 작아지면 가장 좋은 점은 역시 배기량이 줄어든 만큼 연료 소비와 오염 물질의 배출이 줄어든다는 점이다. 날로 기후변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며 환경 규제가 강화되고 있는 현실에 처한 자동차 업계로서는 이러한 엔진 다운사이징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에코부스트 엔진은 종전의 동급 엔진에 비해 연비가 20%나 좋고 온실가스 배출을 15% 줄임으로써 이러한 기술 트렌드 한가운데서 걸작이라는 찬사를 듣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기술적 혁신이 집약됐기에 이처럼 4반세기 만에 2배 이상의 성능을 뿜어내는 엔진이 만들어질 수 있었는지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에코부스트 엔진에 쓰인 기술의 근간은 '최신'과는 거리가 멀다. 사실은 1세기 전에 이미 나왔던 기술들이다.

3년 연속 '올해의 엔진' 석권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걸쳐 자동차와 항공기가 등장하고 가솔린엔진이 주요 동력원으로 자리 잡게 되면서 기술자들은 어떻게 하면 엔진의 출력을 높일 수 있을지 고민을 거듭했다. 특히 하늘을 나는 항공기는 되도록 가볍게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경량·고출력 엔진이 필수적이었다. 그러나 항공기가 동작하는 환경은 지상의 자동차보다 훨씬 불리하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고도가 높아지면 공기의 밀도는 그만큼 희박해지기 때문이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의 기술자 오귀스트 라토는 그 해법을 찾기 위해 고심을 거듭했다. 그때 그가 주목한 기술은 터보차저였다. 가솔린엔진은 공기와 연료를 잘 섞어 실린더 안에 집어넣고 피스톤의 힘으로 압축한 뒤 전기 스파크로 이를 폭발시키는 힘으로 움직인다. 같은 연료로 폭발을 더욱 강하게 하려면 더욱 많은 산소를 집어넣어 이 화학반응을 극대화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된다. 이를 위해 흡기구 쪽에다가 압축기를 달고 공기를 미리 압축해 보내는 것이 이른바 슈퍼차저(과급기)다. 그러나 엔진 동력 일부를 이용해 압축기를 돌리면 당연히 약간의 출력 손실이 있게 된다. 그 대신 엔진 실린더에서 빠져 나오는 고온·고압의 배기가스를 이용해 압축기를 돌리는 것이 바로 터보 슈퍼차저, 줄여서 터보차저다.

이런 터보차저는 스위스의 엔지니어 알프레드 뷔키가 이미 1905년에 특허를 낸 기술이었다. 그러나 섭씨 800~900도에 이르는 고온·고압을 견디며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장치를 만들기 어려워 실용화가 지지부진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라토는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터보차저가 장착된 엔진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 효과는 매우 인상적이어서 이 엔진을 장착한 항공기는 고도 상승력이 23%나 증가할 정도였다.

그러나 터보차저 기술만으로는 이만한 성능을 내기가 쉽지 않다. 통상적인 가솔린엔진은 효율을 갉아먹는 중요한 약점이 있는데, 그것은 기화기를 통해 연료를 주입하는 방식 때문이다. 가솔린엔진은 실린더 밖에서 기화기라는 분무 장치를 통해 공기와 연료를 미리 섞어 집어넣는다. 만약 이 과정에서 공기와 연료가 고루 잘 섞이지 않으면 불완전 연소가 일어나 연료가 낭비되고 질소산화물과 같은 오염 물질도 더 많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 문제 역시 내연기관 기술의 초창기부터 인식돼 그 해결책이 모색돼 왔다. 그 결과 1902년 프랑스의 레옹 르바바시흐는 가솔린을 실린더 안에 직접 쏘아 주자는 아이디어를 낸다. 이 방법을 쓰게 되면 연료를 보다 균일하게 잘 섞을 수 있는 데다가 연료가 실린더 내에서 기화되면서 냉각 효과도 발생해 연료가 미리 폭발해 버리는 노킹 현상도 억제된다. 레옹 르바바시흐의 이러한 설계를 토대로 1907년 앙투아네트에서 항공기용 직분사 엔진을 채용한 최초의 항공기가 출시됐다. 이후 독일이 큰 관심을 갖고 기술을 발전시켜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쓰인 독일의 여러 항공기 엔진은 상당수가 이러한 직분사 방식이었다.

첨단 기술 신화에서 벗어나야

이러한 직분사 엔진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분사를 위한 연료펌프를 만들어 줘야 하고 적당한 때 알맞은 양의 연료를 주입하도록 제어하는 장치가 복잡해 엔진이 커지고 단가가 올라가는 문제가 있었다. 이 때문에 자동차용 엔진에는 직분사 기술 채용이 한참 늦어졌다. 본격 채용되기 시작한 것도 전쟁 중에 항공기 엔진을 통해 노하우가 축적된 독일 업체들이 제품을 내놓은 1950년대 이후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터보차저 기술만큼이나 오래된 기술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이러한 터보차저 기술과 가솔린 직분사 기술을 조합해 배기량이 적으면서도 고효율·고출력인 엔진을 만들어 내기 시작한 것은 사실 유럽 업체들이 더 빨랐다. 일례로 2000년대 중반 폭스바겐은 1400cc급 엔진이면서도 이전의 2000cc 엔진을 능가하는 성능을 내는 TSI 트윈차저 엔진을 내놓으면서 자동차 업계의 엔진 다운사이징에 본격적으로 불을 지폈다. 포드는 그에 비하면 한 발짝 늦기는 했지만 대형 엔진부터 이들 기술을 집약한 제품을 내놓으면서 그간 쌓아 온 기술력을 과시하기 시작했다. 2007년에 발표한 3500cc급 V6 엔진부터 '에코부스트'라는 이름을 붙이기 시작해 차례로 배기량을 낮춰 가며 이듬해인 2008년에는 2000cc급 직렬 4기통 엔진을, 2009년에는 1600cc급 직렬 4기통 엔진을 발표했다. 그리고 급기야 2010년 베이징 모터쇼에서 새로운 999cc 에코부스트 엔진과 함께 이를 채용한 친환경 콘셉트카 '스타트'를 공개함으로써 한 발 앞선 경지로 나아갔다는 것을 선언했다. 포드는 이 신형 에코부스트 엔진을 2012년부터 양산하기 시작해 포커스·C-맥스·피에스타 등의 승용차에 탑재하고 있다. 어느새 연료 먹는 하마와 같은 미국 차의 이미지가 사라진, 친환경 자동차 개발의 최전선에 포드가 우뚝 서 있는 것이다.

엔진 다운사이징 트렌드를 주도하는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을 보고 있으면 고루하게 느껴지는 아이디어와 기술 요소들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이러한 엔진 다운사이징 트렌드를 주도하는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을 보고 있으면 고루하게 느껴지는 아이디어와 기술 요소들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우리는 흔히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는 정보기술(IT) 산업의 모습을 보면서 와해성 혁신(disruptive innovation)에 의해 기존의 모든 기술이 쓸모없게 돼 버리는 미래가 금세 올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자동차로 따지면 내연기관 자동차가 금세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전기차로 대체될 것이라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이처럼 전통적인 가솔린엔진도 점진적인 혁신을 통해 높아진 환경 규제를 충족시킬 만큼 발전하고 있는 것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옛것 또한 현재의 IT를 접목해 보다 갈고닦음으로써 얼마든지 빛나는 혁신 제품을 잉태할 수 있다는 사실에 눈을 뜨고 차근차근 실력을 쌓아 가는 데 집중해야 한다.

채승병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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