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남자는 알 수 없는 고통
아내를 대학 1학년 때 만나 7년간 연애하다 결혼했다. 친구로 만나 허물없이 교제를 시작했다.
아내는 생리 기간만 되면 몹시 짜증을 내고, 이유 없이 화를 내고, 게다가 그 화풀이를 다 나에게 했다. 처음에는 영문을 몰랐다. 그래서 같이 화를 내고 싸우기를 반복하던 중 어느 날 아내가 나에게 진지하게 이야기를 했다. "생리 기간만 되면 나도 어쩔 수 없이, 주체할 수 없이 짜증이 나고 아무것도 아닌 일에 화를 내게 된다. 남자인 당신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고통이 수반되니 미안하지만 좀 참아라."
그래서 참았다. 어떤 고통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랑하는 여자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저런 고통을 매달 겪는다는데 잠깐 짜증 좀 받아주는 것이 뭔 대수냐고 생각했다.
그러다 결혼을 했다. 어쩌다 보니 딸만 셋을 낳게 되었다. 친구들은 네 명의 여자와 사는 나를 몹시도 부러워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이제 막내딸까지 생리를 하는 나이가 되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딸 셋 모두 생리 기간만 되면 아내와 같은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일 년 내내 함께 사는 여성들에게 영문도 모른 채 짜증과 화를 받아내야만 했다. 오랜 시간 거의 매일 네 명의 여자에게 그런 시달림 아닌 시달림을 받다 보니 내심 '제발 딸들과 아내가 동시에 생리를 하든 아니면 최소한 둘씩 같이 해서 일 년의 반은 누군가에게 이유 없이 짜증을 받지 않기'를 진심으로 기도한 적도 있었다.
얼마 전 뉴스에서 한국의 생리대 가격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편에 속하며 많은 저소득층 여성은 생리대를 사용할 수도 없어서 신발 깔창이나 천 조각 같은 것으로 생리대를 대용한다는 기사를 접하곤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극빈층 여성, 그것도 청소년기 예민한 어린 여성들이 생리대조차 제대로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은 얼마나 어마어마한 고통일까. 생리대가 여성들에게 꼭 필요한 생필품이라는 인식이 하루빨리 확산되어, 소득에 관계없이 모든 여성이 생리대를 저렴하고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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