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교향악단과 어린 소년
간만에 제대로 걸렸다. 며칠 전 한 교향악단 정기연주회. 옆자리에 초등 저학년 정도로 보이는 사내아이가 앉았다. 비교적 얌전했지만, 역시나 시간이 갈수록 뒤척거렸다. 최대한 공연에 집중하려 애썼지만 이미 집중력은 흐트러졌다. 5년 전 추억이 떠올랐다.
독일 베를린의 콘체르트하우스에서 드레스덴 출신 노장 미하엘 길렌이 지휘하는 오케스트라 연주가 펼쳐지고 있었다. 1부 프로그램은 베를리오즈의 관현악 가곡집 '여름밤'. 소프라노 베로니크 장이 19세기 시인 겸 소설가 테오필 고티에의 시 여섯 수를 정성 들여 노래하고 있었다.
그런데 셋째 곡이 끝나갈 무렵 객석 2층에서 '으앙~!' 하는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관객들은 일제히 두리번거렸다. 내 바로 앞줄에서 한 남자가 울먹이는 사내아이를 안고 황급히 밖으로 나갔다. 아까 입장하면서 봤던, 유난히 초롱초롱한 눈망울과 진지한 표정이 인상적이었던 바로 그 아이였다. 뒷모습을 보면서 '고 녀석 참 기특하네'라고 생각했다. 비록 울음을 터뜨리긴 했지만, 부모 손에 이끌려 공연장에 억지로 끌려온 아이가 아니라 음악 자체에 충분히 집중을 해서 어른들도 겨우 알아챌 수 있을 만한 음악의 슬픈 기운을 본능으로 감지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여름밤'의 셋째 곡은 '석호(潟湖) 위에서'다. 연인을 잃은 뱃사공의 탄식을 담은 애가(哀歌)로 여섯 곡 중 유일하게 단조로 작곡됐다. 특히 비통하면서도 적막하게 끝맺음하는 후렴구가 인상 깊다. '내 쓰라린 운명이여! 사랑하는 이 없이 바다로 갈 줄이야!' 마침 그날 연주회에서는 이 후렴구를 뒷받침하는 관현악 반주가 예사롭지 않았다. 길렌이 특유의 예리하고 냉엄한 지휘봉으로 음악을 끝없이 깊고 어두운 절망의 심연으로 끌고 내려간 것이다. 그 끝자락에선 죽음의 음산한 기운마저 풍겨 나오는 듯했다. 물론 아이의 울음은 본능적 두려움의 발로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수한 집중과 솔직한 표현을 대하고서 문득 뒤돌아봤다. 거기엔 세파에 찌들어 적잖이 산만해지고 둔감해진 한 어른이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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