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한복이 아름다운 이유

탁현규·간송미술관 연구원 2016. 6. 1.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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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인들은 자꾸 옷을 벗으려 한다. 서양인들은 아직도 잃어버린 낙원, 에덴동산을 그리워하는 걸까. 누드면 화장도 장신구도 하지 않는다. 몸치장이 극한에 이르면 다 벗어버린 누드가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서양인이 자꾸 벗는 것은 이 세상에서 내 몸만이 유일한 내 것이라는 생각도 깔려 있다.

하지만 우리는 생각이 좀 달랐다. 내 몸도 내 것이 아니었다. 부모님이 주신 소중한 것이어서 옷으로 잘 가려야 했다. 그리하여 풍성한 옷자락으로 가렸다. 품이 넉넉한 우리 옷은 얼굴이 작은 서양인이 입으면 잘 안 어울린다. 작은 얼굴이 옷에 파묻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복 패션쇼에 나온 서양 체형의 모델들이 결혼식 때 한복 입은 우리 어머니들보다 예쁘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남성 슈트(suit)는 몸에 달라붙는 옷이어서 팔다리 길고 얼굴 작은 서양인이 입어야 태가 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저고리 없이 치마로만 이루어진 한복이 서양인들을 매혹시켰던 적이 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한복의 아름다움은 조이는 저고리와 푸는 치마의 조화에 있는데 이 한복은 치마만 있어서 음양의 조화가 느껴지지 않았던 점이다. 더군다나 우리 옷의 핵심은 몸을 잘 감싸 드러나지 않게 하는 것인데 윗몸의 반이나 살이 드러나서 서양의 드레스와 비슷하게 되어 버렸다. 그래서 서양 사람들이 좋아했던 것은 아닐까.

아무튼 치마는 가슴부터 발끝까지 몸을 휘감아서 다리가 짧거나 길거나 굵거나 얇거나 모두 가려주니 얼마나 좋은가. 더구나 사이즈가 없어 그냥 둘러 묶기만 하면 되니 비단만 좋으면 어머니가 입던 거 딸에게 물려 줄 수 있다. 한편 치마는 땅에 끌리기 마련이므로 나들이할 때 여인들은 치마를 돌려 묶어 입었다. 그래서 치마 밑으로 하얀 버선발이 살며시 드러나며 한복 맵시를 완성한다.

우리 옷의 멋을 가장 잘 보여준 화가는 혜원 신윤복이고 신윤복의 최고 그림은 30면으로 이루어진 '혜원전신첩'이다. '일급 한양패션 화보집'이라고 부를 만하다. 화첩을 볼 때마다 이런 기품있는 옷을 입고 어찌 경거망동(輕擧妄動)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옷은 매너를 만들고 매너는 사람을 만든다.

※6월 일사일언 필자는 탁현규 연구원과 김주영 피아니스트, 안현배 미술사연구가, 김은경 한국전통조경학회 상임연구원, 따루 살미넨 작가 겸 방송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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