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밥심'을 믿습니다
대학원에 다닐 적에 교직원 식당을 5년간 애용했다. 점심 배식은 대략 11시 30분부터 시작하는데 낮 12시쯤 가장 붐볐다. 줄 서기가 귀찮아서 나는 11시 30분만 되면 실험실에서 함께 공부하는 대학원생들과 쏜살같이 식당으로 달려갔다.
식당 메뉴는 대개 두 가지였다. 국물이 포함된 밥과 분식류였다. 난 언제나 밥을 택했다. 설렁탕, 김치찌개, 냉이 된장국, 갈비탕, 비빔밥 등 국물 종류는 다양했다. 개인적으로는 국물 음식을 그다지 즐기지 않았다. 설렁탕은 소면만, 김치찌개는 김치만 건져 먹는 식이었다. 된장찌개는 두부만, 갈비탕은 당면만 먹었다. 내 편식은 함께 식사하는 동료들 사이에서 환영받았다. 내가 먹지 않는 냉면의 달걀, 갈비탕의 갈비, 설렁탕의 고기를 미리 빼놓으면 자연스럽게 더 먹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못 먹거나 가리는 음식은 많았지만, 한 가지만은 분명했다. 내가 '밥 지상주의자'라는 점이었다. 학교 식당에서 배식하는 분들께 "고기나 달걀은 빼주셔도 된다"고 했지만, 밥만큼은 언제나 당당하게 "더 주세요"라고 말씀 드렸다. 밥 중에서도 그릇 위로 수북하게 높이 담은 고봉밥을 특히 좋아했다. 요즘처럼 먹을거리가 다양한 시절에 나처럼 밥을 편애하는 사람도 드물 것 같다.
고교 시절에도 같은 반 아이들이 다이어트를 한다며 도시락을 거르면, 언제나 친구들의 밥을 가져와서 먹었다. 보통은 '반찬을 빼앗아 먹는다'고 하지만, 나는 밥만 먹었다. 그러다 보니 점심이나 저녁을 두 번 먹는 날도 적지 않았다. 지금도 비슷하다. 대부분은 부모가 아이들에게 "편식하지 말라"고 꾸짖지만, 우리 집에선 거꾸로 열세 살 난 딸이 "콩밥에 든 콩을 제발 남기지 말라"고 내게 잔소리한다.
'밥심'이란 말이 있다. 사전적으로는 '밥을 먹고 나서 생긴 힘'이다. 개인적으로는 '밥의 마음'으로 읽곤 한다. 이 말에는 '밥 많이 먹고 힘내라'는 뜻이 담겨 있을 것이다. 대학원 시절을 버틸 수 있었던 것도 든든한 밥심 덕분이었을 것이다. 우리 곁에도 밥심으로 하루를 사는 분들이 적잖다. "밥심으로 힘내자"고 응원과 격려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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