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나무가 준 '인문학 레시피'

임병희 목수·'목수의 인문학' 저자 2015. 5. 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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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왜?"다. 박사 학위를 받은 인문학자가 왜 연구실이 아니라 공방에서 가구를 만들고 있는지 궁금한가 보다. 나는 3년 전 중국 사회과학원에서 신화학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한 후 공방에서 목수 일을 배웠다. 주변에선 대학에 일자리를 찾아봐야 하지 않느냐며 물어보기도 한다. 하지만 난 교수가 되기 위해 공부한 게 아니다. 그냥 공부가 좋아서 했을 뿐이다. 그렇다고 물려받은 재산이 있는 것도 아니다. 유학 때도 학비와 생활비는 대부분 벌어서 썼다. 솔직히 말하면 '울렁증'이 있어서 남 앞에서 강의하는 것도 내키지 않는다.

처음엔 나도 목수 일을 계속하게 될지는 몰랐다. 신화학 공부처럼, 하고 싶어 시작한 일이 여기까지 왔을 뿐이다. 목수는 나무를 가지고 가구를 만든다. 가구를 만들기 위해서는 금속으로 만든 톱이나 대패 같은 공구를 사용해야 한다. 자르고 파고 잇지 않으면 가구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연의 재료인 나무에 사람의 도구를 사용해야만 하나의 가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목공에는 자연의 이치가 있고 또 사람의 길이 있다.

나무의 역사를 기록한 나이테는 자연의 이치를 알려준다. 나무는 물과 양분이 풍부한 봄과 여름에는 빨리 자란다. 이 부분을 춘재(春材)라고 하는데 성장은 빠르지만 밀도가 낮고 무르다. 반대로 간고(艱苦)한 가을과 겨울에 자란 추재(秋材)는 성장은 더디지만 단단하다. 그 상황에 맞게, 그 지나는 시간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나무이다. 그러나 사람은 빨리 서둘러 단단하게 자라기를 바란다. 이치를 따르지 않으니 어그러지고, 어그러지니 자라지도 단단해지지도 못한다.

나무의 성장 과정은 또 가구를 만드는 사람의 과정과 다르지 않다. 어떤 과정을 건너뛰고 갈 수는 없다. 맹자는 '유수지위물야, 불영과불행(流水之爲物也, 不盈科不行)'이라고 했다. 흐르는 물은 구덩이를 채우지 않고는 더 나아갈 수 없다는 뜻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눈을 만드는 일이다. 그것이 꼭 인문학일 필요도 없다. 세상에는 수많은 재료가 있다. 그것을 어떻게 요리하여 어떤 음식으로 만들지는 만드는 사람의 몫이다. 나는 목공에서 '인문학 레시피'를 발견했다. 자신이 선 자리에서 의미를 건져 올릴 존재 역시 그 자신뿐이다.

※5월 '일사일언'은 임병희씨를 비롯해 신병주 건국대 교수, 박상미 토마스 파크 갤러리 대표, 팀 알퍼 디자인하우스 기자, 임재홍 재즈클럽 '원스인어블루문' 대표가 번갈아 집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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