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수의 도시 이미지 읽기]기이한 '인천 송월동 동화마을'

2014. 9. 5.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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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가난도 관광이 되는 시절. 그래서 수많은 지자체들이 가난한 마을의 담벼락에 벽화부터 그리고 있다. 이런 트렌드에 더하여 인천 중구청은 '동화마을'까지 만들었는데, 그 조형물들의 억지스러움은 둘째 치더라도, 그만한 예산이 있으면 마을 주민들의 실질적인 생활 개선을 위해 써야 하지 않을까.

인천시 중구 송월동 동화마을에 가보았다. 맥아더 장군 동상이 오랜 세월 기립해 있는 자유공원의 서쪽 언덕을 끼고 있는 마을이다. 지금은 인천의 중심이 위로 청라 신도시와 아래로 송도 국제도시로 번져 나가서 자유공원 일대의 여러 마을들이 위축됐지만, 실은 이 일대가 '원도심'이라 하여 개항 이후 인천의 역사를, 그 희망을, 그 상처를, 그 오랜 시간들을 견뎌온 공간이다.

벽화와 동화캐릭터 조형물이 설치된 동화마을 거리. | 정윤수

'늘 뭔가 끓이고 섞이던' 자유공원 일대

개항 이후 항구를 따라 밀려든 서구 문물의 집산지였고, 일제시대에 들어선 공장들 때문에 곳곳에서 사람들이 몰려와 살았고, 해방과 전쟁을 거치면서 인천의 남쪽과 북쪽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서, 먹고 살기 위해서 이불보따리 짊어지고 스며든 곳이다. 이 시기의 삶을 그린 오정희의 빛나는 단편 <중국인 거리>에는 이렇게 묘사되어 있다.

"길을 사이에 두고 각각 여남은 채씩 늘어선 같은 모양의 목조 이층집들은 우리 집을 마지막으로 갑자기 끝났다. 그리고 우리 집에서부터 완만한 경사로 이루어진 언덕이 시작되었는데 그 언덕에는 바랜 잉크 빛깔이나 흰색 페인트로 벽을 칠한 커다란 이층집들이 길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마주 보고 서 있었다.(중략) 그러나 넓은 벽에 비해 지나치게 작은, 창문이나 출입문이라고 볼 수 있는 문들은 모두 나무 덧문이 완강하게 닫혀져 있어 필시 빈집이거나 창고이리라는 느낌이 짙었다."

그런 집들이 많이들 사라졌지만, 지금도 맨꼭대기 자유공원 정상으로 수렴되는 이 일대의 수많은 골목에서 어렵사리 찾아볼 수 있다. 지난 2009년 소설가 오정희는 '인천아트플랫폼'과의 인터뷰에서 자유공원 언덕에 옹기종기 모여든 수많은 삶들을 이렇게 회고했다.

"인천은 뭔가 다른 공간이었어요. 늘 뭔가 끓이고 섞어서 벽에 칠하고 있는 중이었고, 미국인이니 중국인이니 외국인들이 어울려 있어서 지금 생각하면 '국제도시'였던 거예요. 일본식 집들, 중국식 집들도 많았죠. 지금은 많이 파괴되었지만 독특했어요. (…) 내 마음 속의 인천은 여러 이국정서가 뒤섞이고 약간은 혼란스럽고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것들을 볼 수 있는 곳인데, 그래서 제물포구락부나 옛 건물이 남아 있는 걸 보면 좋아요. 살릴 수 있는 건 살렸으면 좋겠어요."

만약 소설가 오정희가 지금 자유공원 일대를 찬찬히 돌아본다면 어떤 감회가 들까. 나는 자유공원의 서쪽으로 비스듬히 뻗어 있는 송월동 동화마을을 서성거리며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컴컴한 우물 속을 들여다보듯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비루하면서도 애틋한 욕망의 깊은 속을 살펴온 소설가 오정희라면, 동화마을 입구에서 한참이나 멍하니 서 있을 듯싶다.

이국풍의 조잡한 조형물들이 요란하게 들어선 곳에서 몇 걸음 들어가면 가난한 마을의 시커먼 쌩얼이 그대로 보인다. | 정윤수

인천역을 마주 바라보는 차이나타운의 입구에는 중국풍의 거대한 관문이 서 있는데, 그 관문을 통과하면 울긋불긋한 차이나타운 음식거리가 시작된다. 그처럼 송월동에도 동화마을을 알리는 큼직한 관문이 세워져 있고 이를 통과하면 10개의 주제에 따라 조성된 언덕길을 오르게 된다. 이 거리는 2014년 3월 29일 기공식을 가진 후, 일사천리로 순식간에 조성되었다. 인천시가 39억3000만원을 들여 도로를 재포장하거나 가로등을 정비하는 한편 벽화와 동화 캐릭터 조형물 설치공사를 했다.

맨 앞에 있는 것이 '도로시 길'이다. 벤치에 앉아 팅커벨을 기다리는 '피터팬'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이 곳에 놀러온 사람들이 피터팬 옆에 앉아서 맨 먼저 사진을 찍는 곳이다. 이어서 '성의 나라 길'이 나타나는데 백설공주, 잠자는 숲속의 공주, 신데렐라 조형물이 나타난다. 다음으로는 '네덜란드 길'. 풍자와 튤립 조형물이 주변 민가의 담벼락이나 지붕을 따라 조성되어 있다. 그밖에도 '전래동화 길', '신비의 길' 등이 이어진다. 평일임에도 꽤 많은 젊은이들이 이 마을을 찾아 사진을 찍고 아이스크림을 사먹는다. 그런 다음에는? 달리 할 만한 일이 없다. 그들은 느린 걸음으로도 5분이면 갈 수 있는 차이나타운으로 이동한다.

나는 그들의 행로를 따라 걷다가 불과 1분도 못 되어 멈춰 섰다. 알록달록한 동화마을과 울긋불긋한 차이나타운 사이에 그 어떤 치장도 조형도 페인트칠도 되어 있지 않은, 오래된 골목들이 실핏줄처럼 연결되어 있었다. 애써 찾을 것도 없는 길이다. 널찍한 동화마을에서 아무 곳이나 골목 하나를 골라서 몇 걸음만 들어가면 된다. 이 오랜 마을의 역사적 흔적이나 삶의 무늬와는 전혀 다른 이국풍의 조잡한 조형물들이 요란하게 들어선 곳에서 겨우 몇 걸음 들어가면 가난한 마을의 시커먼 쌩얼이 그대로 보인다. 그래서일까, 즐겁게 사진을 찍으며 걷던 젊은이들도 골목으로 들어갔다가는 금세 되돌아 나온다. 가난한 동네의 진짜 풍경을 본 그들도 어색하고 민망해서 뒷걸음질치는 것이리라.

동화마을에 가려진 가난한 마을의 민낯

이제는 가난도 관광이 되는 시절이 되었다. 그래서 경향 각지의 수많은 지자체들이 우선 가난한 마을의 담벼락에 벽화부터 일단 그리는 것이 관행이 되었다. 전북 진안의 백운마을이나 시인 서정주의 생가가 있는 고창 질마재 마을처럼 오래 전에 진실로 뜻한 바가 있어 예술가와 주민들과 지자체가 정성껏 마을을 가꾸는 일환으로 벽화를 그리던 풍경이 이제는 그저 관행처럼, 그 무슨 관광 유발효과 운운하며 일단 칠부터 하고 보는 것이다.

이런 트렌드에 더하여 인천 중구청은 '동화마을'까지 만들었는데, 그 조형물들의 억지스러운 키치 양상은 둘째 치더라도, 진실로 그만한 예산이 있으면 가난한 마을의 주거환경 개선이나 주민들의 (특히 아이들) 실질적인 생활과 교육여건 개선을 위해 써야 하지 않을까 하는 답답한 생각부터 하게 된다. 만약 당신이 동화마을에 가서 사진이나 찍고 돌아설 게 아니라, 조금은 착잡한 마음으로, 기이한 조형물 뒤편의 진짜 골목 풍경을 잠시라도 보게 된다면, 이런 생각을 1초 만에 즉각적으로 하게 될 것이다.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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