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수의 도시 이미지 읽기]'거대한 짐승 같은 대우빌딩'

2014. 8. 27.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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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 푸른 꿈을 안고 서울역에 도착해 역사 밖으로 나오면, 이 거대한 도시가 결코 만만치 않은 곳임을 거대한 황갈색 빌딩이 총체적인 시각으로 가르쳤다. 수많은 영화, 시와 소설들에서 옛 대우빌딩은 산업도시의 비인간적인 둔중함과 세속도시의 싸늘한 비정함을 동시에 보여준 전시적 프로파간다였다.

나는 경북 영주시에서 소백산맥 쪽으로 깊이 들어간 산골, 순흥면의 태장리에서 태어났다. 예로부터 '삼재팔난 불입지'(三災八難 不入地)라 하여 어떤 재난도 감히 스며들지 못한다고 했다. 그래서 고려·조선왕조 시기에 임금의 태를 묻어 국태민안을 도모하였다고 하는데, 그런 까닭에 마을 이름이 태장리다. 사람과 사람이 뒤엉켜 빚어내는 문제만 없다면, 실제로 전쟁도 화마도 수마도 없는 곳이었다. 이렇게 근사하게 말하기는 했지만 실은 영락없는 산골이다. 내 살던 곳에서 산으로 더 들어가면 한산골이라는 최후의 오지가 나오고, 그 다음은 깊고 깊은 소백산이다.

옛 대우빌딩에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이다(2009년). | 정윤수

원진레이온, 천마표시멘트 그리고…

그런 산골에서 서울로 올 때마다, 그 어린 시절에 내게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의 위용을 보여주는 것은 원진레이온 공장이었다. 1966년, 화신그룹이 일본 동양레이온의 중고 기계장치를 들여와 1966년에 설립한 인견사 생산공장으로, 중앙선 철로를 따라 도농역 인근으로 길게 늘어서 있던 공장이다. 치명적인 유해물질 이황화탄소로 인하여 일본이 헐값에 넘겨버리는 것을 29년 동안이나 가동하다가 1993년 6월에 폐업했다. 그 악마의 제조설비는 중국으로 이전됐다. 인간과 자연을 치명적으로 파괴하는 공장들이 선진국에서 개발도상국을 거쳐 이제 막 산업화를 시작하는 곳으로 옮겨가는 전형적인 사례다. 그런 과정에서 일본과 한국과 중국의 노동자들이 치명적인 이황화탄소 질병에 걸렸다.

중앙선 밤기차를 타고 상경하던 어린 시절의 나는 수많은 터널과 간이역의 숫자를 세다가 양평을 지나면서부터 결국 죽음보다 깊은 잠에 빠지게 되는데, 어김없이 형이 서울에 다 왔다고 내 몸을 흔들어 깨웠다. 실눈을 뜨고 창밖을 보면 창밖에 원진레이온 공장이 있었다.

거대한 유기체처럼 길게 늘어서서 온갖 경고등을 반짝이던 공장. 서울에 입성하는 것을 환영이라도 하듯 그 공장은 끝도 없이 도열한 건물들로 인하여 장관이었고, 중앙선 기차 또한 열병식을 치르듯 뱀처럼 늘어선 기괴한 공장 건물들을 따라 청량리역 쪽으로 서행했다. 나는, 그리고 선잠을 깬 승객들은 손가락으로 입가에 묻은 침을 닦으면서 그로테스크한 중화학 공장의 열병식을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다. 그때는 그게 죽음의 공장인지 모르던 시절이었다. 중앙선이 관통하는 충북 단양의 산중 깊숙한 오지에 '천마표 시멘트'로 유명한 성신양회 생산공장이 있는데, 이 건물 또한 거대한 위용으로 밤열차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압도한다. 이렇게 내 유년시절의 산업화 이미지는 성신양회 시멘트 공장과 원진레이온 공장이었다. 경부선이나 호남선을 따라 산업화 시절의 서울로 상경해온 사람들, 그러니까 청량리역이 아니라 서울역이 탈향의 종착역이자 서울생활의 시발역이었던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틀림없이 서울역 앞의 거대한 건물, 옛 대우빌딩이었을 것이다.

서울역 앞 옛 대우빌딩의 모습(2009년). | 정윤수

저돌적인 산업화의 냉혹함 상징

지하 2층 지상 23층(불길한 숫자라 하여 이 건물에는 4층과 13층이 없고, 따라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집무실은 25층에 있었다), 대지 면적 1만583㎡, 건축 연면적은 무려 13만2330㎡에 달하는 빌딩이다. 1974년, 교통부(현 국토교통부)가 교통회관으로 짓다가 중단된 것을 대우그룹이 인수하여 1977년 6월에 준공하였다.

외환위기 여파로 대우그룹이 해체되면서 자산관리공사(캠코)와 금호아시아나그룹을 거쳐 현재는 모건스탠리가 주인이다. 모건스탠리는 2년 가까이 리모델링을 하여 '서울스퀘어'라는 이름으로 바꾸었다. 1000억원을 들여 재개장까지 하였으나 입주기업이 적어 매년 손실이 늘어나고 있다는데, 그래서 '대우빌딩의 저주'라는 말도 들린다.

옛 대우빌딩, 그러니까 현 서울스퀘어 빌딩 전면에는 발광다이오드(LED) 전광판이 설치되어 첨단 디지털아트 캔버스로 바뀌기도 한다. 가나아트갤러리가 4만2000개의 LED 전구를 사용하여 가로 99m, 세로 78m의 세계 최대 단일 미디어 파사드를 만들었다. 이 거대한 캔버스 위에서 줄리안 오피 같은 세계적인 미술가의 디지털 아트가 펼쳐진다.

그렇기는 해도 어떤 사람들의 눈에 이 거대한 빌딩은 저돌적인 산업화의 비정함과 냉혹함을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했다. 김성동은 출세작 <만다라>에서 한창 공사 중이던 대우빌딩을 이렇게 묘사한다.

"날카로운 클랙슨 소리를 뿌리며 차량들은 전속력으로 달려가고, 사람들은 방을 찾아 잰걸음을 치고 있었다. 허공을 가로지르는 고가도로 너머로 신축 중인 고층빌딩의 형해가 우뚝우뚝 솟아 있었다. 나는 불빛을 향하여 걸어갔다. 갑자기 쇠붙이로 철판을 긁는 것 같은 굉음과 함께 '개새끼, 뒈지고 싶어!'라고 악쓰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1977년, 대우빌딩이 준공되었다. 저마다 푸른 꿈을 안고 서울역에 도착하여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들고 역사 밖으로 나오면, 방금 도착한 이 거대한 도시가 결코 만만치 않은 곳임을 거대한 황갈색 빌딩이 총체적인 시각으로 가르쳤다. 수많은 영화들, 시와 소설들에서 서울역 앞 옛 대우빌딩은 산업도시의 비인간적인 둔중함과 세속도시의 싸늘한 비정함을 동시에 보여주는 전시적 프로파간다였다.

대우그룹을 이끌었던 김우중 전 회장의 회고록이 출간된다는 소식에 다시 한 번 옛 대우빌딩을 생각해 보았다. 그 건물이 표상하는 바를 아주 섬세하게 묘사한 신경숙의 <외딴 방>도 아울러 읽어 본다.

"그날 새벽에 봤던 대우빌딩을 잊지 못한다. 내가 세상에 나와 그때까지 봤던 것 중의 제일 높은 것. 거대한 짐승으로 보이는 저만큼의 대우빌딩이 성큼성큼 걸어와서 엄마와 외사촌과 나를 삼켜버릴 것만 같다. 여명 속의 거대한 짐승 같은 대우빌딩을, 새벽인데도 벌써 휘황찬란하게 켜진 불빛들을, 어딘가를 향해 질주하는 자동차들을 두려움에 찬 눈길로 쳐다본다."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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