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뒷談]일상 담는 '파파라치 스냅' 전문 사진가들

2014. 7. 12.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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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스타처럼.. 자연스럽게 찰칵"

[동아일보]

파파라치 데이트 스냅을 촬영하고 있는 권흥성 씨. 서울 삼청동과 올림픽공원 등이 데이트 스냅을 많이 찍는 '명소'라고 한다. 권

씨는 국내에서 거의 유일하게 데이트 스냅을 '파파라치 샷'으로 찍는다. 하지만 그도 사람이 없고 배경이 좋을 때는 피사체에게

연출을 요구하기도 한다. 이종승 전문기자 urisesang@donga.com

돈을 위해 유명인의 사생활을 몰래 찍는 프리랜서 사진가를 파파라치(paparazzi)라고 한다. 그런데 요즘 한국에서 그들과 닮은 듯도 하고 그렇지 않은 듯도 한 '한국형 파파라치 사진가'가 뜨고 있다. 그들의 촬영 방식은 몰래 찍는다는 점에서는 파파라치와 같지만, 미리 돈을 받고 찍어준다는 점에서는 파파라치가 아니다.

무슨 얘기인가. 사진관에서 폼 잡고 찍는 사진보다 '파파라치 스냅'이 인기를 끌면서 '파파라치'를 고용해 자연스러운 사진을 찍어달라고 의뢰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고용 파파라치'들이 찍은 스냅 사진은 '자신도 모르는 자신을 발견하는' 재미를 준다. 한국만의 새로운 사진 촬영 풍속도는 현재 진행형이다.

6월 29일 오후 1시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국 최초로 파파라치 스냅 사진을 시도한 '더 파파라찌'의 권흥성 대표가 부부인 황윤택(42) 박상희 씨(37)에게 "지금부터 찍겠습니다"라고 말을 건넸다. 황 씨 부부는 이번이 3번째 촬영. 처음은 결혼 직후인 2010년이었다. 당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파파라치 사진에 대한 호기심에 촬영을 의뢰했는데 마음에 들어 파파라치 사진을 좋아하게 됐다.

"저도 사진을 좀 찍는다고 생각했는데 우리 모습을 찍은 사진을 보고 놀랐습니다. 정형화된 스튜디오 사진의 딱딱함은 사라지고 자연스러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 배경에 자연스럽게 녹아있는 우리 모습과 제가 아내를 배려하는 마음이 사진 속에 들어 있었습니다."

황 씨 부부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권 대표도 인파 속으로 들어가 '파파라치 촬영'을 시작했다. 부부는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고 스킨십을 하기도 하고 좌판에 눈길을 주기도 했다. 골목 중간에서는 부부가 가방을 열고 말을 주고받으며 선글라스를 꺼내 썼다. 자연스러운 행동이었지만 권 대표에게 '찍어보세요'란 의미가 담긴 행동이었다. '타타타타타….' 모터드라이브가 달린 카메라가 경쾌한 셔터 음을 내기 시작했다. 10초가량의 '선글라스 연출'을 마치고 부부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아마추어에게는 힘들겠지만 권 대표에게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부부보다 앞서 가던 권 대표는 수시로 뒤를 돌아보다가 부부가 안 보이면 황급히 전에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넘치는 인파 속에서 부부의 모습을 제대로 찍기란 복잡한 상황에서도 핵심을 잡아내는 사진기자 경험을 갖지 않은 사람에게는 힘든 일로 보였다. 5분쯤 지나자 권 대표의 몸에서는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더운 날씨도 날씨였지만 단골의 모습을 제대로 잡아내야 하는 부담감이 땀으로 변했으리라. 권 대표는 한 시간 동안 사진을 찍으면서 배경이 좋고 사람이 없을 때는 "키스 한 번 하실래요" "손을 잡으면 좋겠는데요" 등의 요구를 하기도 했다. 그는 "파파라치 데이트 스냅 사진 중 70%는 연출이 없고 나머지는 연출 샷"이라고 했다.

파파라치 스냅은 언제 어떻게 시작했을까.

2010년 영화 시나리오 작업을 하던 권 대표는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한 카페에서 우연히 다정하게 얘기를 나누는 커플의 모습을 목격했다. 그때 무심코 "저들도 자신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게 된다면 좋아하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권 대표는 곧바로 '파파라찌'라는 인터넷 사이트를 개설하고 무료로 찍은 세 커플의 '파파라치 스냅'을 올렸다. 즉각 반응이 왔다. 누리꾼들은 '딱딱한 스튜디오 사진과 다르다' '사진관 사진보다 싸다'고 호평했다. 결정적인 계기는 모 케이블 TV에 연예인을 파파라치 스냅으로 찍는 과정이 방영되면서부터.

파파라치의 이미지는 부정적이다. 피사체가 원치도 않는데 마음대로 사생활을 찍어 돈을 받고 팔기 때문. 파파라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영국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비명횡사하면서 최고조에 달했다.

파파라치의 특징은 피사체를 몰래 촬영하기 위해 망원렌즈를 사용한다는 것. 최소 500mm 이상의 초망원렌즈와 렌즈의 배율을 두세 배로 늘려주는 컨버터를 사용해 2, 3km나 떨어진 곳에서도 촬영을 시도한다. 그래서 파파라치가 찍은 사진들은 선명한 경우가 드물고 흐릿하면서 거칠다.

국내에서 파파라치 스냅을 찍는 상업 사진가들은 대부분 70∼200mm 줌 렌즈를 사용한다. 이 렌즈로 인물을 찍을 경우 유효 촬영 거리는 30m 정도. 그 정도 거리에서 몰래 찍기란 힘들다. 따라서 권 대표가 찍는 파파라치 스냅은 본래의 파파라치 사진과는 거리가 멀다.

오승환 경성대 사진학과 교수는 권 대표의 촬영 사진은 '캔디드 포토'라고 말한다. 캔디드 포토란 피사체가 촬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은 채 찍힌 사진을 말한다.

권 대표도 '파파라찌' 사이트를 개설할 때 파파라치 사진과 캔디드 사진의 차이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파파라찌'란 이름을 쓴 것은 "일반인들에게 쉽고 확실하게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서"라며 마케팅을 의식한 작명임을 인정했다.

권 대표가 찍는 사진의 의도도 파파라치의 그것과는 정반대다. 불쾌감과 당혹감이 아니라 피사체에게 즐거움을 준다. 그런데도 권 대표의 마케팅이 성공을 거두고 있는 주요한 요인은 디지털 카메라족 1000만 명이라는 '시장'이 있기 때문. 웬만한 프로사진가 못지않은 장비로 무장한 디카족은 사진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 황 씨 부부도 사내 동호회에서 매주 출사를 나간 디카족의 일원이다. 파파라치 스냅 시장은 사진을 모르는 사람들 때문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사진을 잘 아는 사람들이 늘어났기 때문에 번성하고 있는 셈이다.

파파라치 스냅 사진의 장점은 역시 자연스러움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카메라 앞에 서는 것조차 쑥스러워한다. 거기다가 카메라를 바라보며 이러저러한 포즈를 취하는 것은 더더욱 힘들다. 파파라치 스냅은 최소 20m 이상 떨어져 찍기 때문에 3, 4m 앞에서 찍는 스튜디오 사진과는 표정이나 분위기가 다를 수밖에 없다. 촬영 장소도 딱딱하고 밀폐된 공간이 아니라 서울 삼청동과 올림픽공원 등 살아 움직이는 곳이기에 피사체는 자연스럽게 주위에 녹아들 수 있다. 인파 속에서 찍기 때문에 아무리 사진 찍기를 싫어하는 사람도 '나도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네'라는 생각을 한다고 한다.

사진에서까지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것은 정신의학적인 면에서도, 패션에서도 의미가 있다고 한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정일 박사는 "사람이 자연스러움을 확인할 때 자신에 대한 신뢰와 안정감을 얻게 된다"고 말한다. 그는 "라캉이라는 심리학자가 거울을 보며 자신의 객관성을 깨닫게 할 수 있다고 한 게 거울 효과(mirror effect)라는 것인데, 자연스러운 사진은 이와 비슷한 경험을 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

패션 전문가인 액티브코칭 연구소 김경화 이사는 "최고의 패션은 자연스러움에 있다"고 말한다. 대표적인 예가 신경 쓰지 않은 것처럼 옷을 입는 연예인들의 공항패션. 김 이사는 "연예인들의 자연스러움을 동경하는 대중이 파파라치 사진에 연예인처럼 나온 자신들의 모습에 끌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파파라치 데이트 스냅은 '사진을 통한 연예인 따라하기'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파파라치 스냅은 연인을 대상으로 한 파파라치 스냅에서 몰래 찍은 듯한 부분을 배제하고 감성적인 장면 위주로 담는 '데이트 스냅', 드레스와 정장을 입지 않고 간편한 복장으로 결혼식 전에 촬영하는 '세미 웨딩', 돌 또는 유아 사진을 야외에서 찍는 '유아 스냅' 등으로 분화하고 있다. 요즘은 결혼식 사진을 찍을 때 아무리 어두워도 플래시를 쓰지 않는 '노 플래시 결혼식 샷'까지 등장했다.

서영희 이룸스냅 대표가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가족 스냅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서 씨는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엄마여서 그런지 아이를

잘 달래가며 사진을 찍었는데 이 점이 피사체들의 자연스러움을 끌어내는 데 많은 역할을 한 것 같았다. 이종승 전문기자

urisesang@donga.com

데이트 스냅과 세미 웨딩을 주로 찍는 천준형 두근거림 닷컴 대표는 "고객들은 데이트 스냅에 대해 트렌드에 맞으면서도 세련된 느낌이 들어 좋아한다"면서 스냅 사진 시장은 더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경북 포항에 사는 옥구슬 씨(28)는 일부러 서울로 와서 결혼사진을 찍었다. "스튜디오 사진은 특히 신랑들이 의무감으로 찍기 때문에 힘들어한다. 그런데 올림픽공원과 청담동 일대에서 찍은 세미 웨딩과 데이트 사진들은 우리가 함께 추억을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연스럽고 좋았다. 그때 찍은 사진들을 결혼식장에 전시했는데 호평을 받았다." 그래서 옥 씨는 요즘 "주위의 예비 커플들에게도 데이트 스냅을 추천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영희 이룸스냅 대표는 주부라는 강점을 이용해 200∼400일 사이의 유아를 촬영하는 '유아 스냅' 분야의 강자다. 서 대표는 "연인은 물론이고 친구, 가족들의 기념사진도 요즘에는 풍광 좋은 곳에서 찍는 파파라치 스냅이 늘고 있다"면서 "이런 트렌드는 '사진 찍기도 이제는 자연스러운 생활의 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30대 초반으로 둘째를 임신한 만삭의 주부 장유진 씨는 지난달 26일 올림픽공원에서 남편, 네 살 난 딸과 함께 파파라치 스냅으로 가족사진을 찍었다. 장 씨는 "둘째를 출산하면 넷이 모인 가족사진도 파파라치 스냅으로 찍고 싶다"고 할 정도로 파파라치 사진 예찬론자가 됐다.

파파라치 스냅의 대중성은 2013년 초 권흥성 대표가 한 소셜 커머스 업체에서 '파파라치 스냅 촬영권'을 보름 동안 440장이나 팔았던 것으로 증명된다. 파파라치 스냅이 외국인들에게도 인기를 끄는 것은 의외다. 파파라치라고 하면 거부감을 보이는 외국인들도 이름과는 달리 서울의 명소에서 자연스럽게 찍힌 자신들의 모습을 보면 크게 만족한다고 한다. 파파라치 스냅의 인기는 '좋은 사진'에 대한 열망을 나타낸다. 사진기자 출신인 필자는 좋은 사진이란 생명력이 긴 사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사진을 찍기 위한 조건은 '피사체와의 교감'이다. 세 명의 사진가들도 하나같이 "피사체와 소통하는 사진을 찍고 싶다"고 말했다.

나를 표현하는 유력한 방법 중의 하나가 사진이다. 우리는 '붕어빵처럼 똑같은 기념사진은 가라'고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몸에서 '힘'을 빼고 사진을 찍고 싶어 하는 대중과 '소통'을 무기로 그들에게 다가가려는 거리의 사진가들, 그들이 만나는 어디쯤에 '파파라치 사진'은 서서히 뿌리를 내리고 있는 듯하다. 그들이 찍은 사진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이종승 전문기자 urises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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