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 Scope] 상여금 통상임금에 넣겠다는 한국GM, 신의 한 수?

이재원 기자 입력 2014. 7. 21. 15:38 수정 2014. 7. 21.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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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GM이 임금 및 단체협상 과정에서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겠다는 협상안을 내놓으며 산업계가 시끄럽습니다. 자동차 회사들을 비롯한 대부분 기업의 올해 임금 및 단체협상에서 통상임금 문제로 노사가 격돌 중인데, 한국GM이 그동안 재계가 반대하던 일을 과감하게 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입니다.

통상임금이란 잔업수당과 휴일특근수당 등 여러 수당의 기준이 되는 임금입니다. 국내 기업, 특히 제조업의 상당수는 그동안 크게 기본급과 상여금으로 구성된 임금 체계에서 상여금 등을 통상임금으로 보지 않는 것이 관행이었습니다. 하지만 상여금도 월급처럼 고정적으로 지급되는 상황이다 보니 통상임금에 포함해야 한다는 노동계의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는 상황입니다.

특히 지난해 말 갑을오토텍 노동자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대법원이 "이 회사의 경우 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포함되는 것이 맞다"는 판결을 내놓으며 우리나라는 임금체계에 일대 전환기를 맞고 있습니다. 통상임금이 많아지면 노동자 입장에서는 제 수당을 올려받을 수 있어 좋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인건비 부담이 늘기 때문에 싫어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가운데 한국GM이 주요 기업 중 처음으로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자는 안을 내놓자마자 여러 곳에서 시끌시끌한 모습입니다. 당장 다른 자동차 회사 노조에서는 "한국GM도 했으니 우리도 당연히 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우며 강경 투쟁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고, 철강회사 등 다른 제조업으로 이런 분위기가 확산하는 중입니다.

재계는 "안 좋은 선례가 나왔다"며 대책 마련에 머리를 쥐어짜기 시작했습니다. 더구나 틈만 나면 한국이 고비용 국가라서 생산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주장하던 GM에서 이런 결정이 나왔으니 머리가 아플 만합니다.

어떻게 한국GM은 이렇게 통 큰 결정을 선제적으로 한 것일까요? 자동차 업계에서는 한국GM의 이번 결정이 '신의 한 수'라는 평가도 나옵니다. 한국GM의 상황을 잘 뜯어보면 이번 결정이 실제 노동계 입장을 반영한 통 큰 결단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죠. 이유는 이렇습니다.

우선 한국GM은 이미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와있는 기업입니다. 대법원은 지난 5월말 한국GM 근로자 5명이 제기한 임금 소송에서 "한국GM의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면서 "다만 개인연금보험료와 휴가비, 귀성여비, 선물비 등에 대해서는 다시 심리하라"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습니다. 고법의 확정 판결이 언제 나오든 상여금에 대한 판단은 이미 끝나있는 것입니다.

적용 시점에 대해서는 여전히 이견이 있는데, 노조는 갑을오토텍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인 올 1월치부터 통상임금을 다시 계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한국GM은 새로운 임금 체계를 8월 1일부터 적용하자고 제안한 상태입니다. 회사 측이 고법 판결이 나지 않았지만, 상여금 문제를 먼저 양보할 테니 적용 시점은 좀 늦추자고 협상을 시도하는 모양새인 것이죠.

두 번째로 한국GM은 현재 통상임금이 높아지더라도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은 기업이라는 점이 주목됩니다. 통상임금이 높아지면 잔업수당(초과근무수당)과 특근수당(휴일근무수당) 등이 덩달아 올라갑니다. 하지만 생산량이 주는 한국GM은 잔업과 특근을 별로 하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GM은 상반기에 지난해 같은 기간(40만대)보다 18.5%가 줄어든 32만여대밖에 생산하질 못했습니다. GM이 유럽에서 쉐보레 브랜드를 철수하기로 하면서 유럽으로의 수출이 많이 줄어든 영향을 크게 받았습니다. GM이 유럽에서 파는 쉐보레의 대부분은 한국GM이 납품하고 있었습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한국GM의 공장 네 곳 중, 부평 2공장과 군산 공장은 요즘 주말 특근이 없습니다. 군산공장은 평일에도 5일 중 3일밖에 가동을 못 합니다. 사정이 조금 나은 부평 1공장과 창원공장은 토요일에 1개조만 근무하는 방식으로 특근을 합니다. 물론 앞으로 생산량이 늘고 잔업과 특근이 많아지면 통상임금이 큰 부담이 될 수도 있겠지만, 당분간은 생산량이 많이 늘어날 기미기 보이질 않습니다.

특히 크루즈를 생산하는 군산공장은 글로벌 GM의 후속 모델 생산기지에서 제외돼 공장의 존립 자체에 대한 위기감도 큽니다. 결국 비용도 상대적으로 크게 늘지 않는 상황이니 어차피 맞아야 할 매 미리 맞으며 협상 카드로 활용하는 전략이 아니냐는 것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한국GM이 이번 통상임금 이슈를 계기로 현대·기아차를 흔드는 부수적인 효과도 얻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한국GM의 선제적인 협상안 제시로 자동차 업계 전반에 걸쳐 투쟁 강도가 높아지고, 결국 현대·기아차도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면 GM이 반사이익을 얻을 것이라는 것이죠.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는 업체 중 하나인 현대·기아차의 생산비가 올라가면서 가격 경쟁력이 약화하면 누군가는 득을 볼 가능성이 큽니다.

물론 한국GM의 이번 결정이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유야 어찌 됐든 노조의 요구안에 가장 먼저 적극적인 협상안을 내놓고, 파업 없이 회사를 이끌어보겠다는 한국GM 경영진의 결정은 기업에도, 직원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입니다.

기업에 따라 경우가 다르지만, 상당수 기업이 그동안 어차피 주는 월급을 기본급과 상여금으로 나눠놓고, 기본급만 통상임금에 포함하면서 특근 수당과 잔업 수당을 적게 준 것은 분명히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일종의 약속이었던 데다, 기존의 임금체계가 흔들릴 경우 갑작스럽게 나빠지는 경영 환경을 감내하기 어렵다는 기업의 입장도 이해가 갑니다. 때문에 대법원도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라고 판결하는 경우 신의칙에 근거해 볼 때 과거 분까지 소급해서 지급할 필요는 없다고 판결하고 있습니다.

올여름 임·단협은 통상임금 문제로 어느 때보다 뜨거울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GM이 조금 일찍 기름을 부은 것 같기도 합니다. 여름휴가철이 지나면 파업이 잇따를 것이라는 우려도 나옵니다. 협상을 하는 당사자들도 서로 입장을 모르는 바는 아닐 겁니다. 노·사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서로 조금씩 희생하면서 기업과 개인이 모두 득을 보는 결과물들을 보여주길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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