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팀 리포트] 바람난 남편 카톡, 35만원이면 완벽복구..범죄수사에도 활용

윤희은 / 정소람 / 홍선표 2014. 8. 16.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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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컴퓨터 속 증거 찾기..디지털포렌식의 세계 사설 디지털포렌식 업체, 최소 3시간 내 메시지 복구 상대동의 없이 진행해도 민사에서 승소할 수 있어 경찰청, 기존 디지털포렌식팀 센터로 확장·근무 인원 늘려 형사법상 전통적 압수물만 인정..주요 증거 채택에는 한계 위조·변조 쉽다는 것도 단점

[ 윤희은 / 정소람 / 홍선표 기자 ]

3000억원대 재력가를 청부살인한 혐의를 받고 있는 김형식 서울시의원을 구속기소하기 위해 검찰이 내세운 결정적 증거는 김 의원이 사용하던 대포폰에서 복원해 낸 문자와 카카오톡 메시지였다. 검찰은 재력가를 살해한 팽모씨가 김 의원에게 보낸 "오늘 안 되면 내일 할 거고 내일 안 되면 모레 할 거고 어떻게든 할 거니까 초조해하지 마라', '만약 들통 나면 넌 빠지는 거다' 등과 같은 카카오톡 기록을 두 사람이 범행을 공모한 유력한 증거로 보고 있다.

스마트폰의 확산으로 메신저 대화 내용과 검색기록, 이동경로 등 개인정보가 디지털 기기 안에 고스란히 저장되면서 이 같은 디지털 자료가 민·형사 재판의 주요한 증거로 사용되고 있다. 이에 따라 과거 '왕재산 사건'과 '일심회 사건' 등 대형 공안사건에서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담긴 자료를 복원하는 데 그쳤던 '디지털 포렌식(digital forensics)' 기법의 쓰임새도 확대되고 있다.

디지털 포렌식이란 카카오톡이나 문자, 사진, 영상에서부터 컴퓨터에 담긴 파일과 인터넷 로그인·아웃 기록 등을 복원하는 작업을 뜻한다. 최근에는 내부 직원의 배임·횡령을 감사하는 중소기업에서 배우자의 외도를 의심하는 일반인들까지 이런 기법에 관심을 가지면서 사설 디지털 포렌식 사무소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추세다.

하지만 형사소송법은 디지털 증거에 대한 명확한 규정을 두고 있지 않아 재판부마다 증거 인정 여부를 두고 판단이 갈리고 있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민사 재판에선 한쪽이 디지털 증거를 위·변조하거나 불법적인 방법으로 입수하더라도 이를 제대로 잡아내기 힘든 상황"이라며 "관련 법의 정비와 민간 사무소에 대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3시간이면 '불륜 증거'될 카카오톡 복구

15일 오후 대법원과 대검찰청이 있는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 건물 벽면을 꽉 채운 변호사 사무실 간판 사이사이로 '디지털 포렌식'이라고 적힌 간판들이 눈에 띄었다. 큰 글씨 옆엔 '모바일 포렌식' '컴퓨터 포렌식' '법원증거 감정서 발급' 등의 문구가 작은 글씨로 적혀 있었다.

디지털 포렌식 사무소 한 곳에 들어갔다. "남편이 좀 수상한데 휴대폰에서 카카오톡과 문자를 복원하고 싶다"고 말하자 사무소 관계자는 "어렵지 않다"며 남편의 휴대폰과 신분증 및 위임장을 가져오라고 했다. 위임장은 디지털 포렌식을 허락한다는 내용의 동의서지만 다른 사람이 임의로 작성하더라도 확인할 길이 없다.

"남편이 동의하지 않는 디지털 포렌식을 하면 나중에 소송과정에서 문제가 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100% 장담할 수는 없지만, 민사소송에서는 상당수 고객이 동의 없이 제출한 디지털 포렌식 증거를 제출해 승소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카카오톡 메시지 복구의 경우 착수금으로 5만원, 복원이 끝나면 35만원을 추가로 지급해야 한다. 복원에 걸리는 시간은 짧게는 3시간, 길게는 하루가 넘는 경우도 있다. 휴대폰 상태에 따라 최근 한 달 이내의 문자 내용은 물론 가입 직후의 카카오톡 내용도 복구할 수 있다고 했다.

인천의 또 다른 디지털 포렌식 사무소에 전화를 걸어 같은 내용을 문의하자 "35만원만 주면 바로 할 수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업체 관계자는 "어제도 고객 한 명으로부터 남편의 동의 없이 휴대폰 문자 내용에 대한 디지털 포렌식을 의뢰받아 작업을 했는데, 특별한 문제가 없었다"고 말했다.

국내 최대 포털사이트인 네이버에 '카카오톡 복구'를 검색하면 10여개의 사설 디지털 포렌식 사무소 사이트가 뜬다.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 인근에 있는 사설 디지털 포렌식 사무소도 20여개에 이른다. 이들은 각종 민·형사 소송에서 증거로 제출할 수 있는 문자와 카카오톡 내용 등을 전문적으로 복원한다.

대부분이 법률사무소와 협업하고 있어 디지털 포렌식에 대한 법률적인 자문도 함께 구할 수 있다. 배우자의 불륜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를 잡아 이혼소송을 하려는 사람들이 고객의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전했다.

강력사건부터 세월호까지 수사에 활용

검찰 경찰 등 수사기관도 변화하는 환경에 맞춰 디지털 포렌식 역량 강화에 나서고 있다. 2005년 274건에 불과했던 경찰의 디지털매체 정보 감식 건수가 지난 상반기에만 8233건으로 급증했다. 이 중 스마트폰과 휴대폰 등 모바일 기기에 담긴 정보 복원이 66%인 5487건을 차지할 정도다.

이런 수요에 맞춰 경찰청은 올해 기존의 디지털포렌식팀을 디지털포렌식센터로 확장했다. 근무 인원도 16명에서 30명으로 두 배 가까이 늘렸다. 센터장은 기존 경정급 대신 총경급이 맡도록 했다.

디지털 포렌식은 살인과 같은 강력사건에서부터 몰래카메라 촬영, 해킹 등의 사건 해결에 두루 활용된다. 2012년 서울 창천동에서 10대 청소년 등이 대학생 김모씨(당시 20세)를 흉기로 수십차례 찔러 숨지게 한 '창천동 살인사건'이 대표적이다. 미궁에 빠질 수도 있었던 이 사건은 피의자들이 만든 카카오톡 대화방을 복원하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검찰도 2008년 예산 144억원을 들여 대검 디지털포렌식센터(DFC)를 설립했다. 지난해엔 디지털포렌식연구소도 만들었다.

지난 4월 발생한 세월호 침몰사건 당시 DFC는 사고 해역에서 발견한 휴대폰에 담긴 내용을 복구해 사고 경위를 조사했다. 사고 당일인 4월16일 오전 9시25분께 학생들이 보낸 "해경이 도착했대", "배가 한쪽으로 기울었는데 계속 가만있으래" 등의 카카오톡 내용은 이때 복원돼 선원들의 혐의를 입증하는 증거로 사용되고 있다.

일각에선 수사의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수사기관에서 독립된 디지털포렌식 관련 기관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검·경과 분리된 별도 조직으로 운영되고 있는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검찰에서 첨단수사를 담당했던 한 변호사는 "디지털 포렌식을 전담하는 별도 조직을 만들면 지난해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의 대선 개입 의혹 사건'에서 불거졌던 것과 같은 공정성 논란에 휘말리는 일이 줄어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만능 도깨비 방망이'?…한계도 있어

디지털 포렌식으로 증거를 확보하는 사례가 늘고 있지만 현행 법은 이런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디지털 자료에 대한 별도 규정이 없어서다.

구태언 테크앤로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는 "법정에 제출될 증거는 진술자나 그 진술을 작성한 작성자가 '자신이 진술했거나 작성한 자료'라고 인정했을 때 증거능력을 갖는다"며 "디지털 기록은 누가 작성했는지 쉽게 알 수 없고, 서명이나 날인도 없기 때문에 현행 법으로는 증거로 인정되지 않을 때도 있다"고 지적했다.

경찰청 디지털포렌식센터 관계자도 "형사소송법 등 대부분의 법체계가 전통적인 압수물만을 인정하고 있는 등 디지털 증거의 특성을 반영한 단일한 법 규정이 없어 실무상 증거 확보에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이 때문에 법원에 따라 증거능력 인정 여부를 두고 다른 판단을 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증거가 위·변조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증거 자료가 들어 있는 휴대폰이나 컴퓨터를 처분한 경우에는 이동식 저장장치(USB) 등에 복사해 저장한 사본을 놓고 진위에 대한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

사설 디지털 포렌식 사무소에서 의뢰인에게 터무니없이 높은 대가를 요구하거나 의뢰인에게 유리하도록 디지털 증거를 일부 조작할 가능성도 상존한다. 디지털 포렌식으로 확보한 증거가 형사재판에서 증거로 채택되기 쉽지 않다는 사실을 의뢰인에게 사전에 고지하지 않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희은/정소람/홍선표 기자 sou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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