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별다방으로 오세요] "자고 가라.. 안 피곤하니?" 친정 가지 말라는 시어머니의 반어법

2015. 2. 26.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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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을 앞둔 며칠간은, 누구를 만나도 설 잘 쇠라는 인사를 주고받으셨을 겁니다. 그런데 요즘은 설을 쇠고 난 뒤에 여자끼리 주고받는 인사말이 있더군요. 명절 스트레스는 다 풀리셨나요?

흔히들 말하는 며느리의 명절 스트레스. 전 부치고 설거지하느라 쌓인 것만은 아닐 겁니다. 주고받는 말 속에 가시가 박혀 있고, 날이 서 있고, 밑자락이 깔렸기 때문이겠지요. 며느리를 사랑하지만 내 아들만큼은 아니고, 시어머니가 이해는 되지만, 내 엄마만큼은 아닌 고부 관계. 서로 속마음을 감추고 십 년째 같은 말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는 오늘의 손님입니다. 홍 여사 드림

결혼 9년 차 두 아이를 키우는 직장맘입니다.

신혼이라는 말도, 새댁이라는 말도 이제 나와는 무관한 말처럼 여겨진 지 오래인데, 어찌 된 일인지 며느리라는 단어 앞에서는 여전히 마음이 불편합니다. 예전에는 시댁 분위기나 시부모님 뜻을 헤아리지 못해 허둥대느라 힘들었다면 요즘은 시부모님 의중이 미리부터 짐작되는 바람에 스트레스를 받게 되네요.

저희 시부모님, 좋은 분들이시고 아들을 사랑하시는 만큼 저에게도 애정과 관심이 많으세요. 하지만 그 애정과 관심에서 우러나온 말씀이 저를 힘들게 할 때가 많습니다. 이번 설에도 저는 최소 열흘 전부터는 신경이 곤두서 있었습니다. 명절날 시부모님께 듣게 될 말씀이 벌써부터 제 귓가에 쟁쟁 울리는 듯해서요. 우선 남편이 그새 왜 이렇게 여위었느냐고 한바탕 걱정을 하시지요. 그냥 걱정만 하시는 게 아니라 저한테 자꾸 다그쳐 물으세요. 원인이 어디에 있는 것 같으냐고요. 체질적으로 살이 안 찌는 남편에 비해 저는 물만 먹어도 살이 찌는 체질이다 보니 더욱 송구스럽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우리 큰 딸아이 이제 겨우 초등학교 입학하는데, 손위 시누이의 5학년짜리 딸아이와 비교를 많이 하세요. 형님은 자타가 공인하는 타이거맘이고, 아이도 워낙 똑똑해서 영재 소리를 듣는 아이거든요. 우리 애는 한글 겨우 뗀 수준이고요. 그런 아이 둘을 비교하시면서 은근히 형님과 저도 비교하시네요. 왜 아이들 교육에 열성이 부족하냐고 채근하시면서요. 평소엔 안 하시던 말씀도, 명절날에는 유독 더하시는 까닭이 뭔지 저도 생각해봤습니다. 아마 형님과 제가 눈앞에 나란히 있으니까 그런 생각이 더 나서 그러시는 것 같아요. 그러나 눈앞에 나란히 있을수록 그런 비교는 안 해주시는 게 배려 아닌지….

물론 며느리가 아들을 잘 챙겨주길 바라는 마음, 친손녀도 외손녀만큼 공부 잘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러시는 거니까, 웬만하면 저도 웃는 얼굴로 대범하게 들어 넘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웃으려 해도 웃지 못할 대목이 하나 더 있습니다.

저희 시부모님은 설에 제가 친정에 가는 게 아무래도 못마땅하신 모양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아들이 처가에 가야 하는 것이 너무 안타까우신가 봐요. 요즘은 다들 처가에 다녀오니, 대놓고 못 가게는 못 하실 뿐, 마음 같아서는 안 갔으면 하십니다.

설 당일 시누이들 오면 점심 먹고 가라고 하셔서 그건 저희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설거지는 아가씨가 맡아주고요. 그러나 저희가 시댁을 나서서 친정으로 가려면 걱정 어린 말씀을 수십 번도 더 들어야 합니다. 명절이라고 우리 아들 맘 놓고 쉬지도 못한다고 걱정하시고, 운전하면 어깨 아픈데 차 갖고 가지 말라고 하시고, 눈이라도 올 때는 사고 날까 봐 무서우시다며 제발 내일 가라고도 하십니다.

그 모든 말씀을 못 들은 척하고 친정으로 출발하자면 제 신경이 쇠심줄처럼 질겨져야 하지요. 그러나 거기서 끝이 아닙니다. 친정으로 가는 두세 시간 동안 차 안에서 두어 번 휴대폰으로 전화를 드려야 합니다. 무사히 가고 있고, 길은 별로 안 막힌다고 보고를 드려야 하니까요. 물론 틈틈이 보고 전화 드리는 거 당연한 도리일 수도 있죠. 그러나 전화상으로 제가 들어야 하는 말이 저는 너무 힘듭니다. 네 신랑 어깨 주물러 줘라, 얼마나 힘들겠니. 아이들 차 안에서 오래 있어 감기 들면 어떡하니? 저녁 시간 다 돼 가는데 애들 곯겠다….

친정에 도착하면 잘 도착했다고 전화를 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전화를 드리면 어머니는 꼭 물으십니다. 언제 집에 갈 거냐고요. 하룻밤 자고 내일 간다고 말씀드리면 내일 몇 시쯤일지 자세히 물으세요. 집에 돌아왔다고 할 때까지는 도저히 마음이 안 놓이셔서 그러신다는데, 저희가 못 올 데를 온 것도 아니고 왜 그렇게 노심초사하실까요? 다른 때에는 별로 안 그러시면서 처가에 간다고만 하면 마치 전쟁터에 내보낸 것처럼 길 조심, 차 조심을 외치시니….

견디다 못해 이번 설에는 제가 시어머님께 작은 반항을 했습니다. 차 안에서도 친정집에 도착해서도 일절 전화를 드리지 않았어요. 마음이 불편했는지, 신랑이 친정집 베란다에 나가서 직접 전화를 드리더군요. 누가 했든 했으니까 됐겠지 했습니다. 그런데 저녁 9시가 넘어서 어머님이 저희 친정집으로 전화를 하셨네요. 며느리가 잘 도착했다는 전화가 도통 없어서 당신이 전화하셨다고요. 친정 부모님이 얼마나 당황하시던지….

명절날 아들을 처갓집에 보내기가 영 싫으신 우리 시부모님. 그렇다고 명절날 신랑과 함께 친정에 가는 걸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는 저. 일 년에 두 번씩 이렇게 스트레스를 주고받아야 한다니, 그야말로 명절이 싫어지는 제일 큰 이유입니다.

이메일 투고는 mrshong@chosun.com, 홍 여사 답변은 troom.premiu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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