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별다방으로 오세요] 두 딸에겐 아낌없이 펑펑.. 알뜰하던 아내는 어디갔나요

2015. 2. 12. 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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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지휘관은 나쁜 소식은 전하지 않는 법이다.'

어린 시절 제 아버지에게서 자주 듣던 말입니다. 농담 섞인 그 말씀 속에 가장의 책임감과 부담감이 묵직이 실려 있었다는 것은 수십 년이 지난 뒤에야 깨닫게 되었지만요. 수컷끼리 싸워 상처를 입어도, 주머니 속에 보풀만 가득해도, 넉넉한 웃음으로 가족을 보호하고 싶은 아버지의 마음에 우리는 늘 박수를 보냅니다.

그러나 경쟁은 치열해지고, 계층 간 격차는 커져만 가는 요즘 세상에 젊은 가장의 길은 전보다 더 고단한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길을 나란히 걸으며 어깨를 감싸 안아줄 동반자가 아쉽다는 오늘의 손님, 여러분의 따뜻한 격려가 필요합니다.

홍 여사 드림

결혼 13년 차인 사십대 남성입니다.

제 친구들 얘기를 들어보면, 신혼 몇 년 동안은 부부간 힘겨루기와 성격 차이로 다툼이 치열했다더군요. 그러나 저희 부부는 조금 다릅니다. 저희는 말다툼조차 거의 없이 지난 십여 년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천생연분인 채로 백년해로하면 더없이 좋을 텐데, 결혼 생활의 위기가 이제야 뒤늦게 드러나는 듯하여 고민입니다.

아내와 저는 캠퍼스 커플로 만났습니다. 동기들 사이에서도 인기있었던 아내에게 첫눈에 반해 한동안 남몰래 해바라기했고, 사귀게 된 지도 삼 년을 채우고 결혼에 골인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저에겐 참 눈물겨운 구애 시절이었습니다. 아내가 자기 나름대로 콧대가 높기도 했지만, 시골 출신인 저와는 비교도 안 되게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이었기에 더욱 다가가기 어려웠지요. 사귀는 동안에도 저는 고민이 많았습니다. 흔히들 말하는 개천의 용조차 되지 못한 제가 남의 집 귀한 딸에게 평생을 같이하자고 말해도 되는 것일까?

그러나 아내의 태도는 확고했습니다. 태어나서 지금껏 이렇게 마음 편하게 해준 사람이 없었다며, 돈보다는 마음의 행복이 우선이라고 하더군요. 없으면 없는 대로 웃으며 살자더군요. 이 친구가 역시 세상 무서운 줄을 모르는구나 싶으면서도 그 말이 정말 기쁘고 고마웠습니다. 결혼하면서 저는 결심했습니다. 이 철모르는 아가씨가 언제까지나 천진난만할 수 있도록, 튼튼한 울타리가 되어주겠다고요.

그 뒤로 저희 부부는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며 살았습니다. 아내는 씀씀이를 줄이고 알뜰한 주부로 거듭났고, 저는 저대로 아내가 원하는 건 다 해주려고 노력했습니다. 어렵게 자라 절약이 몸에 밴 저이지만, 아내에게만은 다른 기준을 적용했죠. 그렇게 우리는 새로운 가정을 꾸려나갔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두 딸이 연년생으로 태어났습니다.

문제는 그 아이들이 자라 유치원에 다닐 때쯤 시작되었습니다. 본인 생활은 여느 주부보다 더 알뜰해진 아내가 아이들에 관한 한 또 다른 눈높이를 갖게 되더군요. 이것도 입혀보고 싶다, 저것도 입혀보고 싶다, 인형 놀이 같은 옷 욕심으로 시작된 쇼핑이 각종 교구며 완구 도서로 확장되더니, 영어 유치원과 놀이 학교 얘기가 나오면서부터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습니다. 마침 저는 다니던 직장을 관두고 제 사업을 시작한 참이었습니다. 제 적성에 사업이 잘 맞는 건 아니었지만, 이대로 월급쟁이 생활만 해서는 아내와 두 딸을 제대로 뒷받침할 수 없을 것 같은 조바심이 컸기 때문에 결단을 내렸던 겁니다. 다행히도 자리를 빨리 잡았고, 일이 잘 풀려서, 직장 생활 할 때보다는 한결 여유로운 생활이 가능해지긴 했지요.

그러나 어떻게 된 게 월급 받을 때보다 더 쪼들리는 기분이더군요. 두 아이가 모두 사립 초등학교에 들어갔고, 남들 시키는 웬만한 건 우리도 가르치자니 교육비가 정신없이 들어가더군요. 게다가 아내가 자주 만나는 학부모들 수준이 저희보다 여유롭다 보니, 뱁새가 황새 따라가는 거나 다름없는 상황이 벌어지곤 했습니다. 한 팀으로 엮어서 무슨 캠프를 보낸다거나, 그룹 과외를 받는 일은 물론이고, 하다못해 엄마들 차림새에서도 너무 뒤처질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소비 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데, 그렇다고 제가 하는 일이 번창 일로에 있지는 않습니다. 특히 작년 하반기에는 생각지 못한 일로 큰 손실도 보았고, 아직도 그 수습이 끝나지 않은 상황입니다.

더 능력 있는 부모를 둔 친구들에게 전혀 뒤지지 않고, 어디 가서도 똘똘하다 소리 듣는 두 딸을 생각하면 지금 이 생활에 후회는 없습니다.

그러나 아내 태도는 확실히 변했네요. 여유로웠던 본인의 어린 시절 이야기나, 잘사는 처형들 얘기를 불쑥 꺼내며 부러워하곤 합니다. 그리고 다른 학부모들에게서 귀동냥해온 쓸데없는 정보에 속을 태웁니다. 그렇게까지 사교육에 투자하는 게 과연 온당한 부모인가 의구심도 들지만, 가능하면 아내와 딸들이 원하는 만큼 뒷받침하고 싶은 생각에, 저는 반대 의견을 거의 내지 못하고 있지요.

역시 아내는 곱게 자라 물정을 모르는 사람인 모양입니다. 철이 없어서 가난한 남친과 덜컥 결혼했고, 철이 없어서 남편의 자금 사정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물론 제가 현재의 어려운 사정을 털어놓으면 뜻을 따라주기는 하겠지요. 그러나 아내는 근본적으로 세상이 얼마나 각박하고 험악한지도 모르고, 우리의 미래가 얼마나 불투명한지도 모릅니다. 현실적인 부분은 나 혼자 고민하고 감당해나가야 한다는 게 압박감으로 목을 죄어 올 때가 있네요.

얼마 전 뉴스에서 경제적 이유로 가족을 해친 젊은 가장 얘기를 접하고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딸들 앞에서 욕설까지 하며 그를 비난했던 제 속마음은 어쩌면 은밀한 공감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의 행동은 도저히 이해가 안 되지만, 그가 느꼈을 절박한 심정은 모른 체할 수 없었던 것이 저 하나만은 아니겠지요?

이메일 투고는 mrshong@chosun.com 홍 여사 답변은 troom.premiu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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