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별다방으로 오세요] "시집 좀 가라" 닦달하는 식구들.. 속마음은 "부모님을 부탁해"

2014. 9. 4. 04: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굽은 소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옛말이 있지요. 쓸 만한 재목은 일찌감치 베여 나가고, 볼품없는 나무가 그늘을 드리워주듯이 못난 자식이 오래도록 곁에 남아 부모를 보살피더라는 뜻일 겁니다.

그러나 굽은 나무가 드리우는 굽은 그늘이 반갑지만은 않은 것이 또한 부모 형제의 마음일 텐데요. 그 안타깝고 쓰라린 마음조차도 세월 따라 형편 따라 무뎌져 가더라는 오늘의 손님. 여러분의 따뜻한 격려를 기다립니다. 홍 여사 드림

제 나이 올해로 서른아홉, 미혼입니다. 흔히들 말하는 노처녀지요.

현재 저는 70대 부모님과 함께 생활하고 있습니다. 오빠 둘과 여동생은 이미 십여년 전에 결혼하여 집을 떠났는데 어쩌다가 저만 이렇게 늦어졌는지 모르겠네요. 내세울 것도 없으면서 눈만 높았던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와 마음을 맞춰 가기에는 성격에 모가 난 것인지. 이유가 뭐였든, 미혼으로 마흔 살을 맞는 기분은, 작년과는 또 다른 서글픔으로 다가오네요.

부모님이나 오빠들이나 모두 제가 이 집안의 제일 큰 두통거리라고 합니다. 아버지는 오빠들에게, 오빠들은 올케들에게, 쟤 좀 어떻게든 해보라고 성화죠.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런 말이 저에 대한 애정으로 느껴지지 않는 건 왜일까요?

어서 시집가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날이 갈수록 집안에서 제가 맡은 역할의 비중이 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연로한 부모님에게 닥쳐오는 모든 문제가 고스란히 제 몫으로 돌아오고 있네요. 우선 두 분은 노후 대비가 전혀 안 돼 있습니다. 지금 살고 계신 집도 실은 제 소유입니다. 작은 아파트지만, 15년 직장 생활 끝에 마련한 제 집이지요. 제가 이 집으로 들어올 때 부모님도 모시고 왔습니다. 당연히 그럴 줄로 아시니 도리가 없었어요. 원래 살던 집은 세를 놓아 월세를 약간 받고 있는데, 그게 부모님 소득의 전부입니다.

현재 생활비는 대부분 제가 부담하고 있고, 부모님은 월세 받아서 저에게 보태 쓰라고 내주십니다. 오빠들이 이따금 약간 용돈을 드리기는 드릴 텐데, 도대체 얼마를 드리는 것인지, 혹시나 전혀 안 드리는 것인지 저로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부모님이 일절 말씀을 안 해주시니까요. 모른 척하자고 마음먹고도 한번씩 답답할 때가 있네요. 생활비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지출이 잇따르고 있거든요. 주로 병원비, 특히 최근에는 치과 비용이 만만치 않습니다. 그런 비용이 발생할 때마다 부모님은 주로 저한테 의지하십니다. 오빠들한테는 말씀 안 하시죠. 며느리 눈치가 보인다고 하시고,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는다고 하십니다. 여동생은 또 출가외인에 막내라고 제외하고요. 결국 시집도 안 간 채로 안정적인 월급 받으며 정년까지 보장되는 저만이 언제까지나 내 자식인 모양입니다.

그나마 엄마는 되도록 긴축하시려고 애를 쓰십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런 마음조차 없으신 것 같아요.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빚이 있다고 털어놓으시네요. 중간에서 엄마가, 어떡하느냐, 급한 불은 꺼드려야지, 하면 도리가 없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지난 삼 년간 해마다 외국 여행을 가셨네요. 동남아로, 일본으로, 대만으로. 이번엔 터키 말씀을 하셔서 제가 그건 좀 곤란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아버지는 드러내놓고 서운해하시네요. 한 달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오빠들에 대해서는 언제나 멀리서 잘되기만 축수 기원하시면서, 밤낮으로 얼굴 보며 생활비 대는 저에 대해서는 불만이 가득하십니다.

상황이 이러니 제가 결혼을 해도 당장 큰일입니다. 부모님들의 최저 생계가 위협받을 뿐만 아니라, 오빠들이나 올케들한테도 그런 악재가 또 없을 겁니다. 아닌 게 아니라 올케언니들은 저에게 굳이 억지로 결혼할 필요 없다고 누누이 말하네요. 본인들은 남편 월급봉투 꼬박꼬박 받아가며 훈남 아들 둘씩 키우고 있으면서 저한테는 결혼하면 행복 끝 불행 시작이라고 합니다. 부모님 곁에 오래오래 귀염 받고 사는 제가 부럽다나요? 한편 오빠들은 너는 왜 시집도 안 가고 부모님 속 썩이느냐며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버럭버럭 질러댑니다. 그럴 땐 솔직히 맞받아치고도 싶네요. 당장 내가 결혼 선언하면 된서리 맞고 쓰러질 사람들이 누구냐고요.

그나마 제 마음 알아주는 건 자매. 하지만 여동생도 한번씩 아픈 데를 건드리네요. 다섯 살이나 어리면서, 저를 애 취급 하곤 합니다. 언니는 애를 안 낳아봐서 몰라, 생판 남들하고 부대끼며 안 살아봐서 성숙이 안 됐어. 언니는 남자에 대해 유치한 환상이 있어. 그러면서도 조금만 버거운 일이 생기면 저를 찾고, 저한테 손을 벌립니다.

말해놓고 보니 참 처량한 신세네요. 짝 없는 외로움은 이미 익숙해져서 별거 아닙니다. 독거노인으로 살 일도 아직은 두렵지 않아요. 답답한 건 오늘 당장 견뎌내야 하는 이중적인 잣대예요. 못난 자식이라 노부모를 능력껏 봉양해야 하고, 어차피 예비 독거노인이라 돈 쓸 데가 따로 없는 사람입니다. 화를 내면 노처녀 히스테리고 웃어넘기면 속없는 늙은 철부지니, 어쩔까요? 명절에 해외여행 가버리는 노처녀들 대열에나 합류해야 할까요?

지난주 홍 여사 답변은 별별다방 커뮤니티 (troom.premium.chosun.com)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