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별다방으로 오세요] 시내 호텔에서의 1박 피서.. 별천지 신선놀음인 줄 아시는 시부모님

2014. 8. 14. 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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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의 오늘은 내일을 향한 발판입니다. 배우고 일하며 미래를 준비해야 하지요. 하지만 젊음은 또한 오늘을 살고자 합니다. 느끼고, 즐기려 합니다. 그 과정에서 얻게 되는 무언가도 분명 있을 테고요. 그러나 불운했던 세대, 지금 육칠십대 어르신들은 그런 젊은 날을 누려보지 못했습니다. 가난과 혼란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쳐오신 그분들의 눈에 요즘 젊은이들의 삶은 무가치한 낭비로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한 시각 차이를 극복하고 부모와 자녀가 화합하는 길을 묻고 계신 오늘의 손님. 여러분의 경험과 지혜를 보태주세요.

홍 여사 드림

Q: 결혼 8년 차, 아이 둘 키우는 엄마입니다. 첫애 때는 계속 일을 하다가, 둘째 낳고는 2년째 일을 쉬고 있어요. 본격적으로 살림을 해보는 것은 처음이라 모든 것이 서툴고 힘드네요. 19개월 아들을 안아줘 가며 밥하고 청소하는데, 날씨는 하루하루 더 무더워져만 가고요.

그런 저에게 남편이 자기 나름대로 선물을 준비했다더군요. 서울 시내 유명 호텔에서 파는 여름 패키지 상품을 샀답니다. 애들 데리고 멀리 가면 더 고생하니까, 가까운 호텔에 가서 1박하며 호텔 뷔페에서 식사 해결하자고요. 처음엔 괜한 돈 낭비 아닌가 했는데, 의외로 할인율이 커서 그리 비싸지 않더군요. 그리고 무엇보다 저 자신이 진정 쉴 수 있는 유일한 피서 방법인 듯해서 마음이 동했습니다. 그렇게 어느 호텔 캐릭터룸에 투숙했고, 온 방이 캐릭터로 장식된 장난감 같은 방에서 아이들과 1박을 하고 왔습니다. 남편과 번갈아 애들 봐가며 마사지도 받았고요.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남편 휴대폰 벨이 울렸습니다. 어머님이셨습니다. 그 순간부터 제 마음에는 돌덩이가 얹히는 느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저희의 즐거운 휴일은 시부모님께 절대 비밀로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남편은 어머님께 이런저런 거짓말을 둘러대더군요. 그리고 손녀를 바꿔달라는 어머님 말씀에 남편은 '지금 자요' 하며 또 거짓말을 했고, 저는 아이가 소리를 못 내게 입을 막아야 했습니다. 참 기가 막힌 풍경이지요.

저희 시부모님은 저희가 여행을 다니거나 외식을 하는 것을 근본적으로 못마땅해하십니다. 오직 저축과 투자 그리고 자녀 교육비 이외의 지출은 모두 낭비라고 생각하시지요. 일상적인 생활비 문제는 몰라서도 간섭을 못 하시지만, 여가 활동은 눈에 띄니까 그 부분을 제일 간섭하십니다. 입버릇처럼 하시는 말씀이, 노후에 돈 들어갈 일이 얼마나 많은 줄 아느냐고 하십니다. 그러나 막상 시부모님 생활을 보면 돈 들어갈 일이 거의 없습니다. 여행이나 외식 거의 안 하시고, 저로서는 흉내도 낼 수 없을 만큼 매 순간 절약하시거든요. 경제적으로 쪼들리시느냐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얼마든지 여생을 즐기셔도 되는 부유한 분들인데 돈이 무서워서 아무것도 못 하십니다. 더구나 저희에게는 당신들보다 더한 절약 정신을 요구하시죠. 너희는 갈 길이 멀기에 더욱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네요. 같이 TV를 보다가도 폐지 주우러 다니는 극빈층 노인들이 나오면 저한테 그러십니다. 너도 나도 언제 저런 지경까지 떨어질지 모르는 일이니 있을 때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한다! 그러나 저는 답답하기만 합니다. 어머님이 말년에 폐지를 주우러 다니게 될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부부 역시 어쨌거나 중산층에 속하고요. 있을 때 아끼라는 말씀도 맞지만, 사람에게는 저마다 수준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요? 자기 수준 안에서 아끼면 되는 것이지, 대한민국 사람 모두가 극빈층으로 떨어지는 공포를 안고 살아갈 수는 없잖아요.

남편도 저와 같은 생각입니다. 그러나 부모님에 대한 대처 방식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저는 부모님께 우리 생각을 이해시켜보자는 쪽이고, 남편은 모든 걸 모르게만 하면 된다는 주의입니다. 주로 처가에 간다고 거짓말하고, 아니면 아예 집에 있는 것처럼 꾸미고 여행을 다니죠. 그러다 보니 여행지에 가서도 제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갑자기 시부모님 전화라도 받게 될까 봐 불안하고, 요즘은 또 큰애가 들통을 낼까 봐 걱정입니다. 왜냐하면 어머님이 꼭 큰애를 바꾸게 해서 확인차 이것저것 물으시거든요.

남편은 저더러 무조건 이해해드리랍니다. 예전에 고생을 많이 한 분들이라서 그렇다고요. 그러나 감시당하는 느낌,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찜찜한 마음 때문에 마음에 돌덩이가 얹힌 기분입니다.

그래서 제가 며칠 전에 그만 사고를 쳐버렸네요. 어머님께 사실대로 말씀드렸어요. 저희 여름휴가로 ○○호텔 1박 2일 패키지 다녀왔다고요. 애들도 좋아하고 저희도 잘 쉬고 왔다고요. 그렇게 처음으로 결혼 8년 차 며느리의 배짱을 부려봤습니다. 설마 노발대발이야 하실까? 언제나처럼 못마땅한 기색으로 전화를 끊으시고 몇 날 며칠 다른 트집으로 짜증을 내시겠지. 그럼 내가 그 짜증 다 받아드리지 뭐. 그렇게 해서라도 거짓말만은 더 이상 안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웬걸…. 제 예상이 빗나갔네요. 아버님이 남편한테 전화하셔서 크게 야단치시더라네요. 여름휴가 갔다 온 걸 뭐라고 하는 게 아니다. 어떻게 코앞의 호텔에 가서 먹고 자는데 수십만원을 쓸 수가 있느냐고요. 그런 정신 빠진 것들이 있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그게 내 자식일 줄은 몰랐다고요.

정말 답답합니다. 궁핍했던 과거의 기억에서 못 빠져나오신 채, 결혼한 자식의 여가 생활까지 원천 봉쇄하시려는 우리 시부모님. 그렇다고 부모님 말씀대로 노후 준비만 하면서 살지는 못하겠고, 자식으로서 어떻게 하는 게 현명한 효도일까요?

지난주 홍여사 답변은 별별다방 커뮤니티 (troom.premiu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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