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별다방으로 오세요] 치매 걸린 할머니 모시느라 고달픈 엄마.. 방관하는 아빠가 미워요

입력 2014. 7. 24. 04:01 수정 2014. 7. 24. 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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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손주가 귀여워도 내 자식 눈물 빼면 밉다고 하지요.

할머니 할아버지의 품위 있는 마지막을 바라 마지않지만, 그 효심이 내 어머니 등골을 휘게 하는 명분이 되어 돌아온다면? 제2의 청춘에 족쇄가 채워진 엄마가 안타깝고, 그 모든 것을 수수방관하는 효자 아버지가 야속하다는 오늘의 손님입니다.

홍여사 드림

제 친정엄마는 올해로 예순한 살, 아버지는 예순다섯 살이세요.

6년 전에 제가 결혼을 했고, 그 이듬해 남동생이 결혼을 했지요.

그 당시만 해도 저희는 이런저런 꿈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저는 엄마에게, 이제 아버지랑 신혼부부처럼 재미나게 지내보시라고 했고, 엄마는 너희는 애 낳으면 또 봐줘야 할 거 아니냐고 미리 엄살 섞어 말씀하시곤 했지요. 그러나 그런 즐거운 농담은 그리 오래가지 않아 사라졌습니다. 그해에 제 할아버지께서 별세하셨고, 혼자 되신 할머니가 충격으로 우울증 증세를 보이셔서 혼자서 생활하실 수 없는 지경이 되셨던 겁니다. 장남이신 제 아버지가 할머니를 집으로 모셔왔고 맏며느리인 엄마의 일상은 제가 기대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되어갔지요.

현재 87세이신 할머니. 우울증은 결국 치매로 발전하셨습니다. 아주 조용하고 온순한 치매 노인이세요. 혼자서 숟가락질도 하시고, 용변도 보십니다. 종일 노래를 흥얼거리시거나 미소를 짓고 계세요. 그나마 감사한 일이지요. 그러나 손자 손녀들조차 전혀 못 알아보시고, 계절이 여름인지 겨울인지 모르세요. 옷장이나 가방을 언제나 뒤지고 계시고 전화기나 텔레비전 같은 물건의 용도를 잘 모르십니다. 목욕도 누군가가 도와드려야 하는 상황이죠. 어느 날은 요리라도 하실 것처럼 주방에 들어가시더니 주방 세제를 식용유처럼 프라이팬에 가득 부어놓으셨다더군요.

어떻게 보면 네 살 먹은 저희 딸하고 비슷한 정도로 손이 가는 것 같습니다. 식사를 챙겨드려야 하고, 늘 눈으로 어디서 뭐하고 계시는지 체크해야 합니다. 어질러놓은 것을 치워드려야 하고, 궁금해하는 걸 끝없이 설명해드려야 해요. 그리고 잘 모르는 사람을 두려워하시기에 아무에게나 맡길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지난 사 년 동안 저희 부모님은 마음 놓고 집을 떠나지 못하시는 상황입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저희 남매는 할머니를 병원이나 요양원으로 모셨으면 합니다. 엄마의 생활이 너무 고되고 답답해보여서요. 그러나 아버지가 절대 동의를 안 하세요. 사고도 안 치고 저렇게 얌전한 양반을 밥 세 끼 챙겨드리는 게 귀찮아서 남의 손에 맡기느냐고 하시죠. 그리고 고모들 역시 반발이 있을 겁니다.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있고 일찌감치 아들 딸 다 치운 장남이 있는데 왜 요양병원 같은 데를 가느냐고 생각하시는 듯하거든요.

9월이면 엄마가 환갑 생신을 맞으세요. 엄마 환갑에는 부모님 부부 동반 해외여행을 시켜드리는 게 제 오랜 계획이고 꿈이었습니다. 지금도 그 계획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요즘 세상에 환갑은 많은 나이도 아니라지만, 지난 몇 년간 고생한 엄마한테 휴식을 주기 위해서라도 꼭 그렇게 하고 싶어요. 그러나 엄마 아버지가 여행을 떠나려면 할머니를 대신 보살필 사람이 필요합니다.

마음 같아서는 저라도 할머니를 모셔오고 싶지만, 일단 익숙한 공간을 떠나시면 겁에 질리시는 분이시고, 저 역시 직장에 아이까지 딸린 몸이라…. 할머니를 무리 없이 돌볼 수 있는 분은 현실적으로 고모 두 분뿐입니다. 미리 부탁을 드려놔야 할 텐데, 도무지 내키지를 않아 차일피일 미루고 있습니다. 제 부탁을 흔쾌히 들어주실 분들이 아닌 듯해서입니다.

돌이켜보면 지난 4년 동안 단 하루도 할머니를 대신 돌봐주신 적이 없는 분들입니다. 한 달에 한두 번씩 놀러오듯이 오셔서 할머니 곁에 앉아 웃고 떠들며 저희 엄마가 차려주는 밥상을 받아 잡숫고 가신 분들이지요. 할머니 안색이 안 좋다, 이불이 지저분하다, 그런 말이나 듣지 않으면 다행이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고모들이 다녀가면 엄마도 짜증을 내며 저한테 하소연하곤 했습니다. 차라리 안 왔으면 좋겠다고요.

그래도 달리 기댈 데가 없어서 제가 어렵게 운을 떼긴 했습니다. 가까이 사는 작은고모한테 전화를 걸어 엄마 환갑 얘기를 꺼냈지요. 그때 고모의 반응이 참 놀라웠습니다. 딱 잘라 그러시더군요. 무슨 경황에 니 엄마가 여행을 가겠니? 그리고 멀리 갔다가 큰일이라도 나면 임종 못할까 봐 니 아버지가 절대 안 갈 거다.

고모 말에 저는 서글프게 깨달았습니다. 지금 엄마를 제일 고달프게 하는 건 바로 아버지라는 사실을요. 노모를 올케에게 맡겨두고 감시만 하려고 하는 고모들도 야속하지만, 아내의 고충을 덜어주려고 하지 않는 아버지가 더 문제입니다. 엄마도 이미 환갑 노인이고, 가끔은 휴식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아버지는 모르시는 거 같아요. 아들인 당신에게는 노모와 함께하는 이 고된 시간이 어쩌면 행복일 수도 있겠지만, 며느리인 아내에게는 말년의 복병을 만난 것과 마찬가지라는 걸 모르는 아버지. 할머니에 대한 마지막 효도도 때를 놓칠 수 없는 일이겠지만 엄마 아버지의 처음이자 마지막일 여유로운 시간도 한번 가면 돌아오지 않는 소중한 시간이라는 걸 모르십니다. 그런 아버지가 바뀌지 않는 한 엄마한테 휴가는 없을 겁니다.

이러다 할머니보다 엄마가 먼저 잘못되는 건 아닌가 두려워지네요.

지난주 홍여사 답변은 별별다방 커뮤니티 (troom.premiu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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