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소니 해킹, '비례적 대응'

이성철 기자 2014. 12. 22.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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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길은 '인터뷰'로 통한다. 지금 미국이 그렇다.

헐리우드 영화 '인터뷰(The Interview)'와 제작사인 소니 픽처스 해킹 사건이 영화계와 사이버 보안 업계를 넘어 정치권을 강타했다. 동북아 정세도 그 파장의 소용돌이에 빨려들 태세다.

지난 19일 오후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하와이로 크리스마스 휴가를 떠나며 한 2014년 마지막 기자회견의 첫 질문도 역시 이 문제였다.

불과 몇 시간 전 연방수사국 FBI는 소니영화사 해킹이 북한의 소행이라는 중간 수사 결과를 내놨다.

영화 '인터뷰'는 북한 김정은 비서의 암살을 소재로 한 '코믹 영화'라고 한다. 미국은 해킹 사건은 물론 나아가 소니가 '9.11식 테러 위협'에 굴복해 영화 개봉을 포기하고 간판을 내린 걸 엄중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영화 속 표현을 문제 삼아 미국 시민들이 크리스마스 연휴에 마음껏 극장에 가지 못하게 한 건 미국의 정신, 자유에 도전하는 위협이자 강압이라는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비례해 대응(respond proportionally)"할 뜻임을 분명히 했다. 해킹 사건은 범죄적(criminal) 공격으로 규정했다. '비례적인 대응'은 뭘 의미할까? 오바마 대통령은 이어진 질문에 말을 아꼈다.

회견 뒤에는 CNN의 캔디 크롤리와 마주 앉았다. 일요 시사 프로그램 '스테이트 오브 더 유니언' 고별 방송을 마치고 떠나는 그녀의 인터뷰 요청에 응한 것이었다. 크롤리는 이것이 북한에 의한 전쟁 행위로 보느냐 물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전쟁 행위라 생각하지 않는다며 '사이버 밴덜리즘(vandalism)'이라고 재차 성격을 규정했다. 고의적인 파괴 행위로 앞서 말한 '범죄'의 범주에 들어간다. 형사법적 개념이다. 동시에 '전쟁 행위'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보복에 나서기 보다는 일상적인 국가 기능을 통해 풀 수 있는 문제라는 뜻이다.

이어서 테러 지원국 명단에 북한을 다시 올릴지 물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정해진 절차에 따라 검토할 것이라고 답했다.

"테러지원국이 뭘 의미하는지에 관한 아주 명백한 기준이 있습니다. 그러한 판단을 단지 그날의 뉴스에 기초해 판단하지 않습니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체계적으로 살펴보고 그러한 사실들에 기초해서 앞으로 결정을 내리게 될 것입니다."

북한은 과거 테러지원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고자 부단히 애를 썼다. 결국 북핵 협상의 와중인 2008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테러지원국 해제라는 선물을 김정일 정권에 안겨줬다. 공화당 정권 때였다.

민주당의 중간선거 패배로 며칠 뒤면 자리를 내놓는 로버트 메넨데스 상원 외교위원장은 지난주 존 케리 국무장관에게 편지를 보내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라고 촉구했다. 공화당의 에드 로이스 하원 외교위원장과 군사위원장을 맡게 된 존 매케인은 사이버 테러나 전쟁 행위라며 백악관을 압박했다.

미 행정부는 거침없는 정치권의 목소리와는 달리 아직까지 용어 선택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

FBI의 중간 수사결과 발표 뒤 성명에서 국토안보부는 '사이버 공격(attack)', '사건(event)'으로 표현했고, 국무부는 꽤 강한 어조에도 불구하고 '국가 지원 사이버 공격'으로 규정했다.

'공격'을 '테러'로 바꾸는 건 대통령이 하와이에서 겨울 휴가를 즐기고 있는 동안 참모들의 검토가 어떤 결론에 이를지, 또 오바마 자신이 어떤 결심을 갖고 백악관으로 돌아올지에 달렸다.

말은 말로 그치지 않는다. 행동이 뒤따른다. 일단 규정하면 그에 맞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문제는 사이버 공간이 서부의 황야와 같아서 '사이버 테러'의 정의를 어떻게 할지, 또 예방과 제재는 어떻게 할지 규범이 없는 공백 상태라는 점이다.

미국은 먼저 중국에 손을 내밀었다. 워싱턴의 주중 대사관 쪽과 만나 북한이 중국을 거쳐 해킹에 나서지 못하도록 협조를 요청했다고 뉴욕타임스를 필두로 워싱턴포스트와 AFP 등이 일제히 전했다. 북한의 군부나 고위층 극소수가 이용하는 인터넷이 결국 중국의 네트워크를 거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비례적인 대응'으로 북한에 대한 추가 경제 제재도 거론된다. 사이버 사령부에는 어떤 옵션이 있는지 검토를 지시했다고 한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른바 '핵백(hack-back)' 즉 해킹의 진원인 컴퓨터를 역공격하는 응징도 거론되고 있지만, 백악관은 '시범 케이스' 식의 사이버 공격은 내켜하지 않는다고 한다.

"김정은 정권이 체면을 상했다고 판단할 경우 대응에 나설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렇게 공개적이지 않은 방식이되 북한은 알아차릴 수 있는 조치들을 찾고 있다"는 게 뉴욕타임스가 전한 당국자의 설명이다.

북한은 해킹 혐의를 부인하며 미국에 공동 조사를 요구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는 도움을 주고 싶으면 소니사에 배상이나 하라며 거부했다. 그러자, 북한은 '비례성 대응'을 초월해 '초강경 대응전'을 벌이겠다며 엄포를 놨다.

김정은 비서가 포탄에 맞아 죽는 영화 속 장면을 살리라고 국무부 북한인권특사가 부추겼다며 미 행정부로 화살을 돌렸다. 유엔 총회와 안보리의 북한 인권 결의 채택, 상정 문제도 있겠다 긴장 수위를 확 높이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미국이 꺼리는 건 바로 이러한 '확전(escalation)' 상황이다. 북한이 '사이버 전쟁'에 나선다면 외부와 단절돼 잃을 것 없는 북한보다 '투명 유리'같은 미국이 더 괴롭다는 얘기다.

미국은 쿠바와 적대관계를 청산하기로 하면서 테러지원국 명단에서도 빼주기로 했다. 적에서 친구가 되기로 했으니 당연한 대우다. 그 빈자리에 북한을 다시 앉힐까? CNN 크롤리와 고별 인터뷰에서 테러 지원국을 거론하고 떠난 오바마의 하와이 구상이 기대된다.

▶ FBI "북한, 소니 해킹 책임있다"…오바마, 대응 천명 이성철 기자 sbschul@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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