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누가 '베이징 바람'을 빼앗아갔나?

임상범 기자 입력 2014. 11. 26. 13:24 수정 2014. 11. 26.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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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예상은 했지만 'APEC블루'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시진핑 주석이 득의양양하게 'APEC블루'를 영속시켜 보이겠다고 사자후를 토해낸 지 2주가 채 지나지 안됐지만 베이징 사람들은 어느새 4무3청(4일 스모그에 3일 맑음), 5무2청(5일 스모그에 이틀 맑음)을 얘기하며 예전 이맘때의 일상으로 돌아갔습니다. 음험한 스모그를 한꺼번에 확 쓸어가 줄 바람이 불어오길 기다리며 저마다 마음속으로 기우제, 아니 기풍제를 지내고 있습니다. 그 간절함이 혹서기 한낮에 한참 밖을 쏘다니다 탈수 직전 상황에서 허겁지겁 에어컨 바람에 머리를 대는 것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지엄하신 국가주석의 중점 감독 사안일 만큼 환경부 등 유관 부서들은 물론이고 산하 연구기관들까지 모두 달려들어 신묘한 스모그 해소법 찾기에 골몰하고 있지만 획기적인 진전은 아직 무소식입니다. 베이징 시내에 남은 대기오염유발 산업시설 3백여 곳을 허베이성이나 톈진, 산둥성 등 인근 지역으로 이전하는 문제도 님비(NIMBY) 논란을 불러 일으키며 지지부진한 상황이고 공장 굴뚝에 실시간 모니터링 장비를 달아 배출 억제 시스템을 가동하는 것도 예산 문제로 잰 걸음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겨울이 코 앞인데 난방을 못하게 강제할 수도 없고, 하루 이틀도 아니고 연중 차량 2부제를 하자니 출퇴근족의 반발을 잠재우기도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뭔가 시원스런 대책을 내놓거나 그도 아니면 스모그가 안 잡히는 원인 분석이라도 명쾌하게 해주길 베이징 시민들은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 답을 내놔야 하는 입장에서는 뭐라도 희생양을 삼을 수 있다면 얼른 제단 위에 가져다 바치고 싶을 겁니다. 이런 절체절명의 찰나에 이들의 입맛에 딱 맞는 오매불망 기다리던 논문 한 편이 나왔습니다.

'중국국가지리'라는 이름의 학회지에 실린 논문의 제목은 "누가 베이징의 바람을 빼앗아갔나?"입니다. 학술 논문 제목과는 사뭇 어울리지 않지만 나름 신선한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는 게 이쪽 분야 전문가들의 평입니다. 베이징의 북쪽에 위치해 '큰 바람 입구'로 불리는 내몽고 지역이 5년 안에 현재의 32배에 달하는 풍력발전이 가동되는데 풍력설비 가동에 엄청난 바람이 필요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마땅히 베이징으로 불어와야 할 바람을 빼앗기는 상황이 빚어질 수 밖에 없다는 겁니다.

베이징을 괴롭히는 스모그 퇴치에 가장 큰 역할을 해 온 바람을 내몽고에 빼앗긴다? 공식 인구만 2천 만 명인 베이징에서 매일 사람들이 죄의식 없이 뀌어대는 하찮은 방귀도 총량으로 따지면 주요한 스모그 유발 요인 가운데 하나라며 호들갑을 떠는 게 베이징 시민들인데 만일 이 논문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아마 내몽고를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2008년 이래 내몽고에는 풍력발전용 바람지대를 뜻하는 이른바 '풍력삼협'이 만들어졌는데 공교롭게도 이 시기가 징진이(京津冀, 베이징과 톈진, 허베이성 등 수도권 세 지역을 합쳐 부르는 용어)로 불리는 수도권의 스모그가 급격히 악화된 때와 맞아 떨어집니다.

얼마 전에는 베이징의 심각한 스모그는 도심의 열섬 효과 때문이며 그 해소책으로 베이징 시내에 바람이 잘 통하도록 남북으로 6개의 바람길을 만들어야 하다는 주장도 나온 참입니다. 아무리 도심 건물 재배치 등을 통해 통풍 잘되는 바람길을 만들어봐야 정작 바람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니 '내몽고의 베이징 바람 가로채기 의혹'은 꽤나 심각한 논란거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내몽고의 베이징 바람 가로채기 의혹'이 과학적으로 그다지 설득력이 많지 않다는 반박이 관련 학계로부터 나왔습니다. 칭화대 지구환경시스템과학연구센터의 한 교수가 2011년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몇 차례의 시뮬레이션 결과 풍력발전이 바람의 풍속을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긴 하지만 그 영향이 미치는 범위가 기껏해야 60km에 불과하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베이징에서 내몽고까지 거리가 적어도 4백km 이상 떨어져 있는 만큼 결코 베이징 사람들이 내몽고를 탓할 만한 상황은 아닌 겁니다.

환경부 부부장인 우샤오칭은 올 3월 8일 전인대 12기 2차 회의 뒤에 열린 기자회견 자리에서 베이징의 스모그는 베이징 스스로 해결해야 할 업보라고 일갈했습니다. 그러면서 징진이, 주장삼각주(珠三角), 창장삼각주(長三角) 이 세 지역의 오염물질 배출량과 빈도가 전국 평균의 5배나 된다고 따끔하게 지적했습니다. 실제로 이 세 지역이 전 국토에서 차지하는 면적은 8%에 불과한데 석탄 소비량은 43%나 차지하는 게 현실입니다.

그 가운데 특히 베이징을 비롯한 징진이의 무절제한 석탄 소비는 가히 탐욕스러운 수준입니다. 무절제한 화석연료 사용으로 '열섬 효과'를 스스로 자초한 셈입니다. 이처럼 귀책사유가 분명한데도 베이징 시민들이 내몽고가 에너지절약과 공해절감을 위해 도입한 풍력발전단지를 탓하는 것은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다 만일 내몽고에서 "좋다! 베이징의 요구대로 앞으로 풍력발전은 전면중단하고 그 대신 석탄 때서 전기를 만들겠다"고 나선다면 베이징 사람들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차분히 연구해 실효성 있는 환경 대책을 하나씩 만들어내 충실히 지켜나가다 보면 비록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언젠가는 스모그 제로의 '베이징블루'를 원 없이 감상할 수 있는 날이 올 겁니다. 이런데도 누군가가 베이징 바람을 빼앗아갔다고 남 탓만 하고 있어야 할까요?임상범 기자 doongle@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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