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덤앤 더머' 도둑..그래서 더 짠해

우상욱 기자 2014. 7. 27.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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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를 통해 몇 차례 대륙의 도둑을 소개했습니다. 땅이 넓고 인구가 많아서인지 별의별 도둑이 다 있습니다. 기발한 도둑질도 있었고 섬뜩한 방법의 도둑질도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어수룩하다 못해 '바보 같은' 도둑들을 전해드릴까 합니다.

장모씨는 저장성 원저우시의 순찰대원 이었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방범대원과 같은 역할입니다. 원래 사람이 좀 순진했다고 합니다.

지난달 어느 날 아침, 장씨는 담당 구역을 순찰하고 있었습니다. 매일 같은 일상, 정해진 경로에 따라 별 일이 없는지 살피며 나아가는 중이었습니다.

길가에 한 창고 문이 평소와 조금 달라 보였습니다. 다가가서 살펴보니 물건 입출고 작업을 하지 않을 때는 항상 잠겨 있던 자물쇠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창고 주인을 찾아 알려줘야겠다고 생각하며 발길을 돌리려던 장씨는 갑자기 호기심이 일었습니다. '창고 안에 뭐가 있지?' 창고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음료수 상자가 작은 산만큼 쌓여 있었습니다. 모두 한 종류의 냉차 음료였습니다.

견물생심, 장씨는 불현듯 욕심이 일었습니다. '부수입이나 올려볼까?' 창고 밖으로 나와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장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그 동네 고물수집상 3명을 전화로 불렀습니다. "좋은 공병과 폐지 있으니까 어서 와봐."

3명의 폐품 수집상들이 속속 달려왔습니다. 음료수 상자들을 들어내려던 수집상들은 조금 이상했습니다. 빈병이 아니라 속에 가득 내용물이 들어있었던 것입니다. 장씨에게 따졌습니다. "뭐야, 빈병이 아니잖아? 이 음료수들은 어떻게 해?"

장씨가 대답했습니다. "필요 없어. 다 버리면 되잖아!"

여기서 해당 음료수의 주인인 음료 도매상 량모씨가 경찰 조사에서 한 증언을 들어보시죠.

"지난 3월 올 여름 성수기를 대비해 냉차를 잔뜩 확보했습니다. 무려 2천 상자, 3만 병에 달합니다. 돈으로는 17만 위안(한국 돈 약 2천800만 원) 어치나 됩니다. 좁은 가게에 놓을 수 없어 문제의 창고에 보관을 의뢰했습니다. 평소 음료수 보관 창고로 자주 이용하던 곳입니다. 작업을 할 때는 사람이 지키고 있고 평소에는 튼튼한 자물쇠로 문을 잠가놓기 때문에 따로 보안에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지난달 말 그 음료수를 점검하기 위해 창고에 갔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문에 자물쇠가 보이지 않고 닫혀만 있는 것이었습니다. 불안한 마음을 억누르며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세상에! 그 많던 음료수가 싹 사라졌습니다. 놀라서 집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혹시 창고의 음료수를 옮겼느냐고 물었습니다. 전혀 모른다는 대답이었습니다. 그래서 경찰에 신고했죠."

2천800만 원 어치의 음료수를 내어가면서 장씨와 세 수집상은 진풍경을 연출하기 시작했습니다. 병을 일일이 따서 음료수는 땅에 쏟아 부었습니다. 창고 옆 풀밭에 곧 음료수가 흘러넘쳤습니다. 한편에서는 음료수를 내버리고 한편에서는 그렇게 빈병과 폐지를 만들어 차곡차곡 쌓아 올리고, 팔다리가 너무 아프고 목이 말라 3명의 수집상들이 자신의 몸속에 버린 음료수의 양도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모든 작업을 다 끝낸 시간은 밤 8시, 12시간이나 걸렸습니다. (그동안에 아무도 오가지 않은 것이 신기합니다.)

그렇게 모은 어마어마한 폐지 상자와 빈병을 옮기느라 수집상들은 셀 수 없이 여러 차례 트레일러를 몰고 폐품 적치장까지 오가야 했습니다.

다음날 새벽 모든 작업을 마친 이들은 폐지와 빈병 값으로 900위안을 받았습니다. 마음이 여린 장씨는 수집상들에게 200여 위안씩 나눠줬습니다. 본인의 손에 떨어진 돈은 115위안, 우리 돈 약 1만 9천 원이었습니다. 2천800만 원 어치 음료수를 훔쳐 폐품을 만든 뒤 1만9천 원을 번 것입니다!

량씨의 신고를 받고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어이가 없었습니다. 창고 주변에 병뚜껑이 수북했습니다. 주변 풀밭에는 음료수 냄새가 가득했습니다.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주변 탐문을 하고 동네 폐쇄회로 화면을 뒤진 끝에 3명의 폐품 수집상을 찾아냈습니다. 이들의 진술로 장씨는 끝내 검거됐습니다.

폐품 수집상 3명은 체포되지 않고 풀려났습니다. 경찰의 설명입니다. "장씨가 문제의 음료수를 훔치고 있다는 사실을 이들이 알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어떻든 이들은 음료수를 훔친 것이 아니라 장씨의 요구에 따라 빈병과 폐지를 수거한 것이니까요. 죄를 물을 수 없죠."

또 다른 어수룩한 도둑의 이름은 차오모씨입니다. 산둥성 보싱현까지 흘러들어와 잡역부로 입에 풀칠을 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여러 날 동안 일거리를 구할 수 없었습니다. 돈이 없어 며칠 밥을 굶게 되자 담을 넘기로 결심했습니다. 차오씨는 스관촌을 주시했습니다. 오래된 마을인 스관촌은 주민들이 부유해 대부분 도시에 집을 얻어놓고 고택은 비워두고 있었습니다. 빈집털이를 할 만 했습니다.

차오씨는 그렇게 구모씨 집에 숨어들었습니다. 예상대로 아무도 없었습니다. 집안을 마구 뒤지면서 돈이 될 만한 물건을 찾았지만 별다른 소득이 없었습니다. 차오씨는 몹시 실망했습니다.

그만 다른 집으로 갈까 하는 순간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소설책이었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책을 집어 들었습니다. 몇 장 넘겨보다 그만 그 자리에 주저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2시간 동안 독서삼매경에 빠졌습니다.

구씨는 오랜만에 시골집에 들렀습니다. 가져갈 물건이 있었습니다. 집 문을 열려다 깜짝 놀랐습니다. 분명히 잠가뒀던 문이 열려있는 것이었습니다. 집안에 들어가 보니 난장판이었습니다. 물건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습니다.

구씨는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어 누가 무언가를 찾느라 집에 들린 적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아무도 없다는 대답이었습니다. '쯧! 도둑이 왔다갔나 보군.' 구씨는 주섬주섬 물건을 챙기다 도저히 자기 혼자서 하기에 힘들다고 생각했습니다. 친한 이웃 여러 사람을 불러왔습니다.

구씨와 친구들이 각 방에 흩어져 물건을 정리하던 중이었습니다. 갑자기 다른 방에 있던 친구 아내의 비명 소리가 들렸습니다. 놀란 구씨가 소리가 난 쪽으로 달려간 순간 차오씨와 딱 마주쳤습니다.

차오씨는 여전히 책을 손에 들고 있었습니다. 몰려든 구씨의 친구들에게 포위를 당하고도 책을 놓을 줄 몰랐습니다. 결국 차오씨는 구씨 친구들에게 제압당했고 출동한 경찰에 넘겨졌습니다.

차오씨가 경찰 조사에서 진술한 내용입니다. "책에 푹 빠져 제가 어디에, 왜 있는지를 그만 까맣게 잊어버렸습니다. 책을 읽느라 구씨가 들어왔다 나가는 소리도, 다른 사람들이 오는 소리도 못 들었습니다. 웬 아주머니가 비명을 지르는 소리를 듣고서야 정신을 차렸습니다."

'덤앤 더머' 도둑 맞죠? 사실일까 싶을 만큼 어수룩한 도둑들입니다. 처음에는 그 황당함에 '피식' 웃다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짠한 구석이 많습니다.

그만큼 이 2명의 도둑에게는 큰 재물 욕심이 없었습니다. 다만 팍팍한 삶에 치여 푼돈을 챙겨볼까 했던 것입니다. 그나마도 치밀한 계획이나, 꼼꼼한 행동을 하지 못해 어이없는 짓을 저지르고 쉽게 붙잡혔습니다.

마음이 약했던 장씨, 책을 좋아하는 차오씨, 모두 죗값을 치르고 나와 더 건강하고 떳떳한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우상욱 기자 woosu@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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