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단돈 1800원에 저를 품으세요" 거리로 나선 젊은 엄마

임상범 기자 2015. 7. 28.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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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서부의 최대 도시 충칭시의 한 지하철역에 피켓을 든 젊은 여성이 서성이고 있었습니다. 올해 28살인 그녀 옆에는 마스크를 쓴 어린 여자 아이가 서 있었습니다. 그녀의 네 살짜리 딸이었습니다.

자 이제 피켓에 적힌 글귀를 보실까요. "1번 포옹에 10위안!" 10위안이면 요즘 환율로 계산해 우리 돈으로 1800원입니다. 지하철 역 내 간이식당서 파는 국수 한 그릇 가격도 안됩니다.

자그마한 체구의 젊은 엄마는 애처롭게 오가는 행인들을 바라봤습니다. 흔히 보는 걸인이나 잡상인 보듯 무심히 지나치던 행인 중에 그녀에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하나 둘 생겨났습니다. 모녀에게 다가가 사연을 묻는 이도 있었습니다.

사연인 즉 이러했습니다. 몇 달 전 딸 아이가 백혈병에 걸렸음을 알게 된 엄마는 대형 병원을 찾아 딸을 살려달라고 애원했습니다. 하지만 수술과 입원에 필요한 돈은 50만 위안, 우리 돈으로 9천 만 원이나되는 거금이었습니다.

수중에 있는 돈과 친지, 이웃들에게 닥치는 대로 돈을 모았지만 7만 위안을 마련하는 게 엄마가 가진 능력의 최대치였습니다. 그녀가 팔 수 있는 건 많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급해도 '성'을 팔 수는 없었습니다. 비록 가난하지만 떳떳한 엄마이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궁리 끝에 생각한 방법이 자신의 포옹을 파는 것이었습니다.

딱한 사연이 알려지면서 그녀를 안으러 오는 사람들이 줄을 이루기 시작했습니다. 첫 포옹이 있었던 지난 15일 이후 불과 채 열흘이 안 돼 30만 위안이 모아졌습니다. 진찰을 받으러 간 병원에서는 소문 듣고 찾아 온 사람들이 줄을 지어 모녀를 안아 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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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하면 아픈 아들을 위해 기꺼이 '말(馬)'이 된 아빠도 있습니다. 안후이성 허페이시에 사는 한 아빠는 매일 아침 시내 공원이나 대로변으로 출근합니다. 출근 즉시 근무 복장으로 갈아입습니다. 말 머리 모양의 탈이 그의 근무복입니다. "한 바퀴 도는데 5위안!" 말이 된 자기 등을 타고 근처를 한 바퀴 도는데 5위안, 우리 돈 900원의 차비를 달라는 겁니다.

이 아빠에게는 역시 백혈병을 앓고 있는 9살짜리 아들이 있었습니다. 골수이식만이 아들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지만 이미 적잖은 빚으로 은행 대출까지 정지된 상황이라 아들의 약값이라도 마련하려면 뭐라도 해야 할 판이었습니다. 딱한 사정을 듣고는 흔쾌히 100위안 짜리 지폐를 놓고 가는 이들도 있고 격려의 말과 함께 금일봉이 담긴 홍빠오를 건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게 중에는 짓궂게 정말 아빠의 등에 올라 타고 몇 걸음 옮기도록 한 뒤에야 5위안 지폐를 던지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사실상 구걸을 해가며 어렵사리 수술비를 모아야만 가족을 살릴 수 있는 상황이 대다수 중국의 가난한 라오바이싱들이 처한 의료 복지의 현실입니다. 중국은 아직 의료보험이 완벽하지 못하다 보니 영리병원들이 성업중인 나라입니다. 철저히 현금 박치기로 입원을 하고 수술을 받아야 하는 겁니다.

도시 주민들은 그나마 낫지만 농촌은 말 그대로 공공 의료의 사각지대입니다. 그러다보니 웬만큼 아프면 그냥 집에서 앓고 버티는 게 남는 장사라는 생각이 여전히 만연해 있습니다. 하지만 백혈병처럼 긴급한 수술과 치료를 요하는 중병이나 응급 상황에 처하면 돈이 없는 사람들은 무시무시한 병원비 폭탄을 경험해야 합니다.

의료 복지 개혁이 시급함을 인식한 중국 정부가 최근 몇 년 동안 공공 의료 서비스 확대에 힘을 썼지만 그 결과는 의료보험 재정 고갈 위기로 찾아왔습니다. 중국 정부의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직장인 의료보험 지출이 지난 2009년 대비 4218억 위안 늘어난 7083억 위안(126조원)을 기록해 지난 5년간 연평균 19.9%의 증가율을 보였습니다.

외래 진료시 평균 진료비는 157 위안으로 2009년에 비해 44 위안 늘어 지난 5년간 연평균 6.8%의 증가율을 보였고. 중병 진료비는 평균 466 위안으로 2009년에 비해 68 위안 늘어나면서 연평균 증가율 3.2%를 기록했습니다. 입원비는 평균 1만95 위안으로 2009년 대비 2465 위안 증가했습니다.

일부 지방 정부는 이미 의료 비 지불 능력이 6개월도 채 안되는 위기 상황에 처했다고 합니다. 정부의 지원이 정말 필요한 저소득 소외계층에게는 의료 복지 개혁의 혜택이 돌아가지 못하고 형편이 나은 계층들은 도덕적 해이에 빠져 의료 쇼핑에 나서면서 정부의 곳간이 비워져 가고 있는 겁니다. 공공 의료가 답인가? 의료 민영화가 살 길인가? 중국 정부는 여전히 갈팡질팡하고 있습니다.

헐값에 '포옹'을 팔고 말 머리 탈을 쓰고 구걸을 해야만 사랑하는 자식의 목숨을 구할 수 있는 나라는 사회주의도 자본주의도 뭐도 아닙니다. 그냥 생지옥일 뿐입니다.임상범 기자 doongle@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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