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재의 크로스로드]교토를 잊지 마세요

정문재 2015. 6. 23.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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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구조 및 경기 동향에 따라온실가스 배출량도 크게 변화비현실적 감축 목표 고수하면약속 파기에 경제적 피해 초래

【서울=뉴시스】정문재 부국장 겸 산업부장 = 교토는 고색창연(古色蒼然)하다. 일본의 천년 고도(千年古都)다. 서기 794년부터 1868년까지 약 1100년간 일본의 수도였다. 도시 자체가 문화 유적이다. 니시혼간지(西本願寺)를 비롯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만 무려 17곳에 달한다.

교토를 알아야 일본이 보인다. 일본은 물론 세계 각지에서 매년 8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몰려든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이 교토를 폭격 대상에서 제외한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교토에 들어서면 평범한 사람도 역사의 무게를 느낀다. 인류에 보탬이 되는 삶을 마음 속에 그린다. 지도자라면 더욱 그렇다. 역사적 사명감을 불태운다.

하시모토 류타로 일본 총리와 앨 고어 미국 부통령도 그랬다. 이들은 교토에서 역사에 길이 남을 위업(偉業)을 남기려고 했다. 이들은 후세의 사가(史家)들이 자신들을 지구 환경 개선을 이끈 지도자로 기억할 것이라고 상상했다.

전세계 각국 대표단이 1997년 12월 교토에서 지구온난화 대책을 논의했다. 선진국이건 개도국이건 '공동의, 그러나 차별화된 책임(Common But Differentiated Responsibility: CBDR)'에 합의했다. 하지만 어떻게 차별화할 지를 놓고 팽팽히 대립했다.

고어가 먼저 불을 지폈다. 그는 미국 대표단에게 좀 더 유연성을 발휘하라고 지시했다. 미국의 양보에 힘입어 12월11일 역사적인 합의문이 채택됐다. 이른바 '교토의정서'다. 선진국이 먼저 구속력을 갖춘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설정한 후 이행한다는 게 골자다.

선진국들은 1990년 배출량을 기준으로 온실가스를 2012년까지 평균 5.2% 감축하기로 합의했다. 유럽연합(EU)은 8%, 미국은 7%, 일본은 6% 줄이기로 했다. 러시아는 0%를 감축 목표로 제시했다.

고어는 낯이 간지러웠다. 미국의 교토의정서 비준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웠다. 미국 상원은 1997년 7월 "미국은 개도국의 온실가스 감축 의무가 없는 어떤 의정서나 합의서에 서명해서는 안 된다"고 결의했다. 클린턴 행정부는 의정서 비준 요청을 차일피일 미뤘다.

미국은 2000년 대통령 선거에서 정권을 교체했다. 조지 부시 대통령이 2001년 1월 취임했다. 그는 선거 때는 화력발전소에 대한 이산화탄소 총량 규제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부시는 정치인답게 행동했다. 대통령에 당선되자 마자 공약을 뒤집었다. 그는 2001년 3월 "교토의정서에 관심이 없다"고 선언했다.

일본은 약속을 지키려고 애썼다. 교토의정서에 서명한 후 '지구온난화대책 추진법'을 제정했다. 온실가스 배출권 국제 거래도 실천했다. 체코 등 동구권 국가들로부터 온실가스 배출권을 사들였다.

이런 노력에도 온실가스는 크게 줄지 않았다. 일본은 2010년 11월 "어떤 조건, 어떤 상황에서도 교토의정서의 이름으로 국가 목표를 설정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공개적인 교토의정서 폐기 선언이었다.

산업 및 에너지수급 구조가 크게 바뀌지 않는 한 온실가스도 줄어들지 않는다. 일본은 투혼을 불태웠다. 하지만 칼은 부러지고, 화살은 다 떨어졌다. 그래서 항복을 선언하고 말았다.

EU는 교토의정서의 최대 승자다. 2012년까지 온실가스를 12%나 줄여 감축 목표(8%)를 초과 달성했다. 하지만 EU는 날로 먹었다. 동구권 석탄 화력발전소와 에너지 다소비 공장들이 경쟁력 상실로 앞다퉈 문을 닫았다. 공장이 없어지자 온실가스도 사라졌다. 더욱이 북해 가스전 개발로 청정 에너지 사용 비중이 확대됐다.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았지만 온갖 생색을 낼 수 있었다.

정부가 2020년 이후의 온실가스 감축 방안을 발표했다. 4가지 시나리오에 대한 여론 수렴 과정을 거쳐 이달 말 최종안을 유엔에 제출할 예정이다. 시나리오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이다. 기업은 '비현실적'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환경단체는 '느슨한 목표'라고 폄하한다.

구호는 쉽지만 실천은 어렵다. 저탄소 녹색 성장은 쉽지 않다. 상당수 기업들이 온실가스 배출권 할당량에 반발해 행정소송에 매달리고 있다. 바지에 흙을 묻히지 않고 모를 심을 수는 없다. 이들이 무책임해서 온실가스를 줄이지 않는 게 아니다.

비현실적인 목표는 '끔찍한 약속 파기'로 이어진다. 약속을 지키지도 못하면서 엄청난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일본이 게으르거나 무능해서 교토의정서를 폐기한 게 아니다. 온실가스 감축에 관한 한 일본은 훌륭한 반면교사다.

참고문헌1) 노종환 지음. 기후변화협약에 관한 불편한 이야기. 2014. 한울.2) 유흥준 지음.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일본편 3 교토의 역사. 2014.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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