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재의 크로스로드]복지 무임승차

정문재 2015. 4. 28.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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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절반은 소득세 내지 않아복지 확충에도 재원 부담은 꺼려지속 가능한 복지 정책 위해서는작은 비용이라도 분담 노력 필요

【서울=뉴시스】정문재 부국장 겸 산업부장 = 케이맨 제도(Cayman Islands)는 한국과 공통점을 갖고 있다. 바로 '압축 성장'이다. 불과 반세기만에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했다. 스스로의 노력에다 운(運)도 작용했다.

케이맨 제도는 원래 자마이카 땅이었다. 자마이카는 1962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면서 케이맨 제도는 포기했다. 굳이 욕심을 부릴 이유가 없었다.

1960년대 초만 해도 케이맨 제도는 사람이 살만한 곳이 아니었다. 섬 곳곳이 습지라서 모기들이 들끓었다. 모기 때문에 기네스북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숱한 모기가 한꺼번에 콧구멍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소가 질식사하는 사고도 일어날 정도였다.

지금은 다르다. 그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다. 최첨단 빌딩이 곳곳에 들어서 있고, 뛰어난 교통 인프라를 자랑한다. 100개 이상의 은행이 글로벌 금융서비스를 제공한다. 특급 호텔과 콘도가 즐비하다. 이제는 모기도 찾아보기 어렵다.

영국 정부는 자마이카 독립 후 케이맨 제도 발전 정책을 추진했다. 처음부터 '조세 피난처'로 만들 작정이었다. 그래서 직접세는 아예 도입하지도 않았다. 개인소득세는 물론 법인세도 부과하지 않는다. 자본이득세도 없다. 5~12%의 수입 관세가 전부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다. 해외자금을 끌어들일 수 있도록 금융제도도 정비했다. 영국의 은행 제도를 들여오는 한편 신탁법을 도입했다. 케이맨 제도는 세계적인 금융중심지로 부상했다. 캐이맨 제도의 은행 산업은 세계 5위 규모다.

케이맨 제도는 스위스를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았다. 현재 케이맨 제도의 경쟁력은 스위스 이상으로 평가된다. 스위스는 예금 이자에 대해 35%의 소득세를 물리지만 케이맨 제도는 이자소득세를 부과하지 않는다.

케이맨 제도에 대한 시각은 엇갈린다. 거액 자산가와 대기업들은 '천국'이라고 칭송한다. 반면 거의 모든 나라 국세청은 '눈에 든 가시'로 여긴다.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 5월 "다국적 기업의 국제금융 중심지 이용 관행에 제동을 걸 것"이라며 케이맨 제도를 대표적인 '조세피난처'로 적시하기도 했다.

세금은 문명 사회와 역사를 같이 한다. 문명을 유지하려면 세금은 필수다. 조세피난처도 마찬가지다. 조세피난처도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로마 시민들은 무거운 세금 부담 때문에 야만족에 투항했고, 7~8세기 일부 기독교도들은 세금을 줄이기 위해 이슬람으로 개종했다.

세금은 프라이버시 침해로 이어지기도 한다. 스웨덴의 세계적인 영화 감독 잉그마르 베르히만(Ingmar Bergman)이 단적인 예다. 그는 1976년 소득세 탈세 혐의로 스웨덴 국세청으로부터 조사를 받았다. 법원에서 결국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많은 고통을 겪어야 했다. 그는 "높은 세금 부담은 기꺼이 수용하겠지만 국세청의 뒷조사는 신물이 난다"며 독일로 이주했다.

지난해 직장인 가운데 절반은 소득세를 한 푼도 내지 않았다. 연말정산 보완 대책으로 면세 대상자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복지 혜택을 확대하면서도 국민 눈치를 보느라 세금 늘리는 것을 꺼린다.

지난 2011년 현재 국내총생산(GDP)에 대한 개인소득세의 비중은 3.5%에 그쳤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치(8.1%)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진보 진영에서 모범적인 복지국가로 꼽는 스웨덴은 12.3%, 핀란드는 12.8%에 달했다.

복지 재원은 하늘에서 거저 떨어지는 게 아니다. 누군가는 부담을 해야 한다. 연말정산 파동에서 볼 수 있듯 증세는 푼돈이라도 거센 저항을 불러일으킨다. 그렇다면 답은 뻔하다. 부자 증세나 법인세율 인상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이런 방안은 쉬운 선택일지는 몰라도 지속 가능성은 떨어진다. 부자나 기업은 마음만 먹으면 조세피난처를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다. 미국 국세청(IRS)도 "조세피난처를 활용하면 합법적으로 세금을 피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실토할 정도다.

부자나 기업이 이탈하면 세금만 줄어드는 게 아니다. 일단 일자리가 줄어든다. 이는 곧 소득 및 소비 부진으로 이어진다. 경제 전체적으로 깊은 주름살을 드리운다.

복지 확충을 위해 증세는 불가피하다. 세수기반을 확대하면서 형평성을 추구해야 한다. 저소득층이라도 상징적인 수준의 세금은 부담해야 한다. 그래야 자긍심을 가질 수 있고, 고소득층의 증세를 이끌어내기도 쉬워진다. 정치권도 이를 국민들에게 차근차근 설명해야 한다.

복지는 '공동 구매'해야 한다. 그래야 지속성을 담보할 수 있다. '복지 무임승차'는 치명적 유혹이다. 매력적으로 보일 지는 몰라도 공동체를 무너뜨릴 수 있다.

참고문헌1) Adams, Charles. 2001. For Good and Evil : The Impact of Taxes on the Course of Civilization. Maryland. Madison Books.2) 이영. 2015. 국제비교를 통해서 본 조세정책 발전방향. 공동체 자유주의 세미나.3) Cayman Islands -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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