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 칼럼]짝퉁 글램핑은 안전처의 실패다

2015. 3. 24.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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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송평인 논설위원

나도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루소의 이념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프랑스 특파원 시절 캠핑을 간혹 했다. 유럽의 여름은 건조한 데다 해가 길어 캠핑하기에 그만이다. 가격도 싸지만 자연에서 고기 굽고 와인 한잔 하면서 느긋한 저녁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점이 좋다. 그래도 텐트 생활은 불편하다. 새벽의 텐트 속은 한여름이라도 춥다. 밤중에 화장실이라도 가려면 정말 귀찮다. 그러나 자연 속에서 동터 오는 아침의 기운을 느껴봤다면 캠핑의 매력에서 빠져나오기 힘들다.

나도 은퇴한 뒤에 캠핑장이나 차려볼까 하는 생각을 하고 돌아왔을 때 한국에도 캠핑 열기가 불고 있었다. 캠핑이 하고 싶어 인터넷에서 캠핑장을 찾아봤다. 공영 캠핑장은 연락하는 곳마다 예약이 차서 포기하고 결국 사설 캠핑장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예약을 했다. 찾아가 보니 민박집 넓은 마당에 텐트를 치도록 해놓고 장사하는 곳이었다. 캠핑 한번 제대로 하기 어렵다고 생각하고 그냥 돌아왔다. 5, 6년 전 일이다.

지난 주말 사고가 난 인천 강화군 캠핑장도 민박집이 있고 앞마당에 텐트를 칠 수 있도록 돼 있었다. 다만 다른 점은 이미 텐트가 쳐져 있다는 점이다. 이것이 그동안 급속히 늘어난 이른바 글램핑장이다. 캠핑장으로만 제공하면 1박에 1만∼3만 원을 받지만 텐트를 쳐놓고 제공하면 1박에 10만 원도 넘게 받는다고 하니 웬만하면 다 글램핑장으로 바뀌었겠다 싶었다.

글램핑이라고 하니까 과거 리비아의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가 생각난다. 사막에서 텐트 치고 생활하는 유목민인 베두인족 출신의 카다피는 외국 순방 때도 텐트 생활을 선호했다. 카다피가 프랑스 파리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엘리제궁 정원에 텐트를 치고 묵어 화제가 됐다. 이런 게 진짜 '호화로운 캠핑(glamorous camping)'인 글램핑이라고 할 수 있다.

글램핑은 과거 귀족이 하인들을 동원해 텐트를 쳐놓고 자연을 즐기던 것을 모방하면서 시작됐다. 캠핑은 돈 없는 서민, 글램핑은 부유층이 시작한 것으로 계통 자체가 다르다.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에 성행하는 글램핑은 스스로 텐트를 칠 필요가 없다는 점이 글램핑과 같을 뿐 캠핑을 약간 업그레이드한 것에 불과하다. 글램핑을 흉내 낸다고 TV 냉장고 선풍기 컴퓨터까지 다 들여놓았는데, 정작 진짜 글램핑은 자연친화적인 성격을 중시하기 때문에 이런 시설이 거의 없다. 한마디로 짝퉁 글램핑이다.

불에 잘 견디는 텐트는 어디에도 없다. 텐트 속으로는 손전등 정도나 갖고 들어간다는 것이 상식이다. 텐트 안에 온갖 가전제품을 들여놓고 방치하면 기온차가 심한 야외에서는 이슬이 맺혀 누전이나 합선 사고가 날 수 있다는 건 누구나 예측 가능하다. 안전을 담당하는 공무원이라면 짝퉁 글램핑이 하나둘 눈에 띄기 시작할 때 이런 위험성을 본능적으로 느껴야 한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년이 다 돼가고 국민안전처가 출범한 지도 넉 달이 넘었다. 안전처의 촉각에 짝퉁 글램핑의 위험성이 감지되지 않았다면 '안전 한국'을 만든다는 막대한 사명을 띠고 출발한 안전처는 실패한 것이다. 안전처는 캠핑장은 문화체육관광부 소관이라고 떠넘긴다. 그런 소관 타령은 캠핑이 짝퉁 글램핑으로 변질돼 숙박시설의 규제를 피하면서 사실상의 숙박시설로 운영된 점을 무시한 것이다.

사고는 예기치 못한 곳에서 더 잘 터지기 마련이다. 안전은 이 정권이 좋아하는 중앙집권적인 방식으로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뒷북 수준을 절대 넘어설 수 없다. 현장을 누비는 말단의 공무원들이 새로운 위험요소를 감지하고 반응할 수 있는 분권적 구조를 먼저 만들어야 한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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