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시동 꺼 반칙운전]통로-계단까지 승객 빼곡.. 위험천만 질주, 단속은 0건

입력 2014. 10. 30. 03:05 수정 2014. 10. 30. 0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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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일 넘긴 광역버스 입석금지.. 출퇴근 현장

[동아일보]

승객들이 광역버스 입석 금지 시행 100일 만인 2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당산 래미안아파트 앞 정류장에서 경기 일산으로 향하는 1500번 버스에 앞다퉈 오르고 있다. 권오혁 기자 hyuk@donga.com

'이래도 되나?'

직장인 조효진 씨(27·여)는 최근 출퇴근 시간대에 서울에서 경기 분당을 오가는 광역버스를 탈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든다. 버스는 '만차'라는 팻말을 붙이고도 좁은 통로와 출입문 계단까지 입석 승객을 빼곡히 태우고 시속 100km를 훌쩍 넘기며 고속도로를 질주했다. 서로 몸이 끼어 움직이기조차 어려워 보이는 입석 승객들은 버스가 급제동을 하거나 핸들을 좌우로 돌릴 때마다 갈대처럼 휘청거렸다. 교통사고가 난다면 그 결과는 상상조차 하기 끔찍했다.

퇴근 시간대인 23일 오후 서울 중구 백병원 앞에서 경기 성남시 분당 방면으로 향하는 5500-1번 버스 안에 입석 승객이 가득 들어차 있다. 승객들은 손잡이나 좌석 등받이를 잡고 겨우 몸을 지탱했다. 조동주 기자 djc@donga.com

서울과 수도권을 오가는 광역버스 입석 금지가 전면 시행된 7월 16일로부터 100일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국토교통부 정책은 여전히 오락가락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 이슈가 부각되자 부랴부랴 시행했지만 '불편하다'는 여론이 드세게 일자 슬그머니 발을 빼는 모양새다. 국토부는 시행 초기 "8월 중순까지 현장 모니터링을 끝내고 단속을 시작하겠다"고 공언했다가 8월 21일에 "대학 개강을 맞아 입석을 한시적으로 허용한다"고 말을 바꿨다. 10월 말에도 여전히 입석 승객들을 콩나물시루처럼 가득 태운 버스가 수도권 일대 고속도로를 질주하고 있지만 '탄력적 운용'이라는 미명 아래 입석 승객을 단 한 건도 단속하지 않고 있다.

동아일보 '시동 꺼! 반칙운전' 취재팀은 광역버스 입석 금지 시행 100일째인 23일 출퇴근시간대에 수도권을 오가는 승객들이 주로 이용하는 서울 영등포구와 중구, 경기 성남시 분당 일대 버스정류장을 직접 가 봤다. 승객과 버스 기사는 '시간과 돈'이라는 이해관계 속에 여전히 암묵적으로 안전보다 눈앞의 이익을 좇는 부당거래를 하고 있었다. 승객들은 앞뒷문 가리지 않고 버스에 올라타 계단까지 발을 디디고 서는 바람에 출입문조차 한 번에 닫히지 않았다. 기사들은 "다음에 오는 버스 타세요" "그만 올라오세요"라고 말하면서도 밀려드는 승객을 적극적으로 막진 않았다.

취재팀이 23일 오후 6∼7시 경기 북부로 향하는 승객이 많은 서울 영등포구 당산래미안아파트 버스정류장에서 입석 금지에 해당하는 5개 노선 버스를 지켜보니 한 시간 동안 지나간 24대 중 21대가 입석 승객을 가득 태웠다. 나머지 3대도 입석을 거부한 게 아니라 좌석이 여유가 있었다. 같은 시각 경기 남부로 가는 길목인 서울 중구 백병원 앞 정류장도 입석조차 불가능할 만큼 버스가 가득 차야만 무정차 통과했다. 서울에서 분당으로 가는 광역버스 9401번에 직접 타서 입석 승객 수를 세 보려다 인파에 시야가 가려 실패할 정도였다.

광역버스 입석 금지는 세월호 참사 이후 국민 안전을 도모한다는 취지로 시작됐지만 '탁상행정'이라는 거센 반발에 부닥쳐 용두사미가 됐다. 여론에 밀려 대학 개강이라는 명분으로 한시적으로 탄력적 입석을 허용했지만 언제 다시 전면 금지할지 아무도 모른다. 탄력적이라 해도 '몇 명까지 태우라'는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니다. 경찰 관계자는 "국토부가 마땅한 대책을 마련하고 단속을 시작할 거라 했는데 준비가 미진한 것으로 안다. 이대로라면 입석 금지 자체가 불가능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좁은 통로에 서서 끼어 타는 승객이 만연한 상황에서 좌석에 앉은 승객들에게 안전벨트를 바라는 건 사치에 가깝다. 취재팀이 23일 오후 7시 10분 경기 용인 명지대∼서울역을 오가는 5005번 버스에 타 보니 좌석에 앉은 40명 중 안전띠를 맨 승객은 4명에 불과했다. 운전기사가 한남대교를 넘어 경부고속도로에 진입하기 전 "안전띠를 매달라"고 안내방송을 했지만 아무도 따르지 않았다. 이 버스는 시속 100km를 넘나들며 고속도로를 질주했다.

이대로라면 세월호 참사나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 붕괴, 판교 환풍구 추락사고처럼 입석 승객을 가득 태운 광역버스가 사고로 대형 인명 피해를 낸 뒤에야 "예고된 인재(人災)" "안전불감증이 빚어낸 참사"라며 부랴부랴 관련 분야에 대해 강도 높은 대책을 마련하는 '사후약방문'식 대처가 되풀이될 게 뻔하다. 교통안전공단이 시속 25km로 달리는 버스가 6m 아래로 떨어져 구르는 상황을 인체 모형을 통해 직접 실험해 보니 안전띠를 안 한 승객은 안전띠를 맨 승객보다 다칠 가능성이 18배나 높았다. 어린이는 48배나 차이가 났다. 본보와 입석 버스를 동행 취재한 장택영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출퇴근 광역버스에 선 채로 타거나 좌석에 앉아서도 안전띠를 안 매는 습관은 매일 편리를 위해 생명을 담보로 맡기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권오혁 hyuk@donga.com·조동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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