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 칼럼] 얼마나 대단한 일 한다고

김호정 2014. 8. 23.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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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런 날이다. 쓰고 싶던 기사는 부장이 별로란다. 다시 보니 별로다. 성사만 되면 좋을 것 같던 인터뷰도 시원찮았다. 당분간 기사화하지 말아 달란다. 근사한 취재거리를 주겠다던 취재원은 연락도 없고 날 피하는 것 같다.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다. 어떻게 출근했는데. 세수는 다행히 했다. 내 등에 찰싹 붙은 아이를 시어머니가 붙잡고, 나는 얼굴에 물을 묻혔다. 화장은 생략했다. 현관 문을 열었더니 자기도 나가는 줄 알았나 보다. 아이가 까르르 웃는다. 하지만 엄마의 출근을 곧 기억했다. 13개월 된 아들의 표정이 무거웠지만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울지.

 이렇게 왔는데 그냥은 못 간다. 아들의 행복한 시간을 담보로 잡았다. 시어머니의 자유로운 하루도 마찬가지다. 미안한 만큼 뭐라도 하고 돌아가야 한다. 아이디어를 쥐어짰다. 괜히 이사람 저사람 전화로 찾아본다. 한참 후로 잡힌 인터뷰도 억지로 앞당겨 본다. 아이의 웃는 얼굴과 맞바꿀 만한 기삿거리를 찾아야만 한다.

 옆에 있던 워킹맘 10년차 선배가 눈치를 챘다. "여성가족부 장관 정도는 돼야 떳떳하게 출근할 것 같아." 마음을 콕 찌른다. 우리 마음에 찝찝하게 박혀 있는 말을 끌어낸 거다. '뭐 대단한 일 한다고.' 나는 이 말을 앞으로도 10년 넘게 달고 출근해야 할 거다.

 이젠 뭔가 보여줘야 할 것 같다. 나만 할 수 있는 일을 증명하자. 내가 왜 일하는지 모두가 알게 하자. 턱을 괸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간다. 머리는 뜨겁다.

 부풀던 생각 풍선은 선배가 툭 칠 때 터졌다. "집에 저녁 먹고 갈 거야? 밥 먹으러 가자." 밥? 그래, 성과 없는 하루였지만 먹어야지. 오늘 하루 고민한다고 해결될 일인가. 10년차 워킹맘이 나를 밥상 앞에 앉힌다. "사실 말야, 나라를 구한들 아이 돌보는 거만큼 의미 있겠냐." 선배 한 명이 오늘 나를 들었다 놓는다. 맞다, 세상에 그만큼 가치 있는 일은 어차피 없다.

 누가 그랬나, 워킹맘의 적이 상사라고, 회사와 사회라고. 하지만 '아이까지 놓고 왜 굳이 출근하느냐' '월급은 어차피 대리 육아에 다 써버리지 않느냐'는 울림은 환청이 아니었을까. 세상이 내게 그렇게 말하는 줄 알았다. 생각해보면 스스로 하는 질문이었다. 매달리던 아이의 팔을 떼어버리고 나왔으니 나라 정도는 구해야겠다는 조급함 때문이었다. 하지만 스트레스와 걱정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머리에 힘만 들어가 될 일도 안 됐는지 모른다. 그 급한 마음이 망친 워킹맘의 하루는 말한다. 스스로 적이 되지 말라고.

김호정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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