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 칼럼]가는 세월, 그리고 청와대

2015. 7. 2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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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마다 "레임덕 없다"해도 후반 갈수록 국정동력 뚝뚝"사정 칼날로 군기 잡으시라".. 대통령 주변 이런 사람 늘 있어임기 내 많은 일 하긴 불가능.. 역사에 남을 메시지 생각해야
[동아일보]
김병준 객원논설위원 국민대 교수
청와대도 별수 없다. 계절이 바뀌면 산의 모습이 바뀌듯 집권 중반을 넘으면 이런저런 변화가 일어난다. 후반을 향할수록 그 변화의 양상은 더 뚜렷해진다.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이 각 부처에서 파견되어 온 공무원들의 태도다. 좋아서 오거나 좋아서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어쩔 수 없다. 서운해할 일도 배신감을 느낄 일도 아니다. 실제로 끝까지 근무했다가 유쾌하지 못한 일을 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회의 참석자들의 시선도 달라진다. 집권 초기에는 회의를 주재하는 대통령이나 상급자에게 시선이 집중된다. 어쩌다 시선이 마주치고, 그래서 말이라도 길게 주고받게 되면 큰 행운이다. 그게 곧 힘이 되고 권력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집권 후반이 되면 고개 숙여 받아 적기만 하는 사람이 늘어난다. 눈길이 마주치고 그러다 과제라도 받게 되면 그야말로 큰일이기 때문이다. 적느라 시선을 그리 두는 것이 아니라 시선이 마주치는 것을 피하느라 내리 적는 것이다.

말도 줄어든다. 집권 초기에는 상대적으로 논의가 잘 일어난다. 그러나 중반을 넘어서면 상황이 달라진다. 토론을 중시했던 ‘노무현 청와대’도 예외가 아니었다. 후반으로 갈수록 회의는 열기를 잃어갔다. 수석보좌관 회의도 수시로 대통령 혼자의 ‘원맨쇼’가 되곤 했다.

이른바 레임덕 현상이다. 국정운영의 동력이 뚝뚝 떨어진다. “레임덕은 없다”고 크게 외치지만 실상은 안에서부터 이런 일이 일어난다. 계절이 바뀌는데 산의 모습이 늘 푸르기만 하겠나.

청와대 안이 이럴진대 행정 각 부처와 정치권은 어떻겠는가. 관심은 어느새 새로 등장할 권력을 향하게 되고 대통령과 청와대는 점점 멀어져 가는 이들의 뒷모습을 지켜봐야 한다. 때로 낮은 지지율에 만신창이가 되기도 하고, 여당과 여당의 대통령 후보가 그 위를 밟고 지나가는 것을 인내해야 한다.

레임덕을 피할 수 있을까? 분명히 하자. 어렵고도 어렵다. 정당이 집권하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라는 지도자 개인이 집권을 하는 우리와 같은 구조에서는 더욱 그렇다. 같은 정당의 다른 지도자가 다음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지금의 정권과 대통령은 그것으로 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막겠다는 시도가 생겨난다. 또 대통령 주변에는 늘 이런 것을 권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군기’를 잡겠다고 사정(司正)의 칼을 들어올리기도 하고 여당 내 우호세력의 결속을 강화시키거나 그런 세력의 원내 진출을 돕기도 한다. 심지어 정치인 등 주요 인사들의 약점을 잡아 이탈을 막는 카드로 쓰기도 한다.

다 부질없는 짓이다. 그렇다고 하여 빠질 힘이 빠지지 않는 것도 아니고 새로운 힘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여러 가지 무리한 일로 국가와 국민, 그리고 정권 그 자체를 더 큰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

가을이 깊어지면 겨울을 준비해야 하고, 나이가 들면 또 다른 의미 있는 인생을 준비해야 한다. 계절이 바뀌는 것을 막겠다고, 또 회춘을 하겠다고 몸부림 쳐 봐야 뭐 그리 큰 소용이 있겠나. 정권도 마찬가지다. 권력 기반이 약화되면 그런 상태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더 많이 준비해야 한다.

사실 대통령의 책무는 임기 내에 무엇을 완성하는 데 국한되지 않는다. 믿기 어렵겠지만 행정부에서 논의되기 시작한 과제가 국회를 거쳐 시행에 이르기까지 통상 3년이 걸린다. 임기 5년 내에 할 수 있는 일이 뭐 그리 많겠나.

대통령의 더 중요한 책무는 국민의 가슴에, 또 우리의 역사에 기억될 메시지를 남기는 데 있다. 즉, 임기가 끝난 이후에도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하며 무엇이 중요한지 등을 고민하게 하는 데 있다. 대통령은 때로는 말로, 또 때로는 상징적 행동과 정책으로 이런 메시지를 쓴다. 또 때로는 성공함으로써, 때로는 실패함으로써, 또 때로는 미완으로 남김으로써 그렇게 한다.

무슨 말인가? 권력과 권한으로 할 수 있는 일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일, 즉 대통령이라는 상징성과 지도자의 위상만으로 할 수 있는 일도 많다는 뜻이다.

곧 레임덕이 될 이 정부는 어떤 메시지를 준비하고 있나? 여당 원내대표를 억지로 내모는 것을 보며, 공천권을 행사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시중의 민심을 들으며, 또 사정기관 출신들이 국정을 장악해 가는 것을 보며 걱정을 한다. 겨울 준비 없이, 가는 세월을 막겠다고 억지를 부리는 것 같아서다.

김병준 객원논설위원 국민대 교수 bjkim36@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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