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 칼럼]노무현의 좌절

입력 2015. 6. 9. 03:00 수정 2015. 6. 9.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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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와 합리적 교감 통해 세상을 바꾸려 했던 노무현퇴임 후에도 계속된 맹목적 지지와 반대이들을 선동하는 정치권에 좌절검찰 수사로 죽음 이르기 전 지도자 노무현의 또 다른 죽음그를 반대한 사람들만 유죄인가
[동아일보]
김병준 객원논설위원 국민대 교수
참여정부 시절 한때 노무현 대통령이 정치를 하라고 권했다. 때로는 당혹스러울 정도로 강하게 권했다. 당장에 휴직하고 있던 교수직부터 아예 그만두라고 했다.

어쩌겠나.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받아넘기는 수밖에. “어떻게 밥자리를 먼저 던지라 하십니까.” “어∼허, 안 그러면 정치 못 해요. 먹고사는 것? 안 되면 내가 먹여 살릴게.” “다른 것 다 믿어도 그 말은 못 믿습니다.”

그런데 임기 말로 가면서 이런 일이 없어졌다. 오히려 자신의 정치를 ‘실패’로 규정했다. 그리고 정치로 세상을 바꾸겠다고 한 자신의 ‘무모함’을 민망해하기도 했다.

정치에 대한 이러한 회의(懷疑)는 2009년 3월의 글 ‘정치하지 마라’에 분명히 나타난다. 요약하면 이렇다. “정치로 권세나 명성은 어느 정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가치 있는 뭔가를 이룰 수는 없다. … 열심히 싸우며 긴 세월을 달려 보지만 남는 것은 실패의 기록뿐, 추구하던 목표는 그냥 저 멀리 있을 뿐이다.”

집권 초에도 젊은 측근들에게 정치하지 말라고 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측근정치에 대한 우려에서였다. 말년의 이 ‘정치하지 마라’는 다르다. 정치 지도자로서의 깊은 회한과 좌절이 들어 있다.

무엇이 그를 이토록 깊은 좌절로 몰아넣었을까? 일차적으로는 그를 힘들게 한 정치 경제적, 또 사회적 모순들이다. 특히 정치 경제 사회 전 분야에 걸쳐 굳건히 자리를 잡고 있는 기득권 구도는 그를 끝없이 괴롭혔다.

그러나 이것만을 원인이라 할 수 없다.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문제인지는 오래전부터 이미 알고 있는 터였다. 또 바로 이러한 모순들을 바로잡겠다고 대통령이 되고자 했다. 생각보다 힘든 부분이 있었겠지만 이러한 모순 자체가 모든 것을 설명하지는 않는다.

더 큰 문제는 오히려 시민사회로부터 왔다. 애초부터 그는 권력이 아닌 시민사회와의 합리적 교감을 통해 국정을 운영하고자 했다. 제대로 소통하면 시민들의 합리적 이성이 작동하리라 믿었다.

그러나 이게 잘되지 않았다. 여기저기 합리적 이성이 아닌 맹목적 지지와 반대가 난무했다. 그리고 정치는 이 맹목적인 사람들을 선동하고 동원하기에 바빴고, 언론과 지식인들 또한 의미 없는 질문과 답을 주고받으며 이러한 선동과 동원을 묵인하거나 받쳐주었다.

어찌 보면 자괴감도 들었을 것이다. 그 스스로 세상을 이렇게 만드는 데 일조했다는 생각도 했을 것이고, 투쟁적 삶을 살아 온 지도자가 합리적 이성이 지배하는 세상을 만든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도 느꼈을 것이다. 새 시대의 첫차를 타고 싶은데 그러지 못한다는 그의 말이 바로 그 말 아니겠나.

그러나 그는 어쩔 수 없는 계몽주의자였다. 시민들의 합리적 이성에 대한 기대를 끝까지 버리지 않았다. 퇴임 전후에도 참여정부 평가포럼을 만들어 지지자들을 공부하는 사람들로 만들고 싶어 했고, 지식인과 시민들 간의 합리적 토론을 위한 ‘민주주의 2.0’ 사이트 구축에 심혈을 기울이기도 했다.

결과는 시원치 않았다. 반대 세력은 그의 이러한 노력을 정치 재개를 위한 일로 경계했고, 지지자들 또한 세를 결집하는 도구 정도로 생각했다. 지금도 ‘민주주의 2.0’의 상황을 이야기하던 그의 모습이 선하다. “이쪽저쪽에서 오물들을 던져대요.” 그답지 않은 모습으로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그는 검찰 수사를 받았다. 그리고 죽음에 이르렀다. 좋다. 검찰 수사와 그 뒤의 국정 책임자들이 그를 죽음으로 몰았다고 하자. 그러나 우리가 기억할 것이 또 하나 있다. 그 죽음 이전의 또 하나의 죽음, 즉 좌절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좌절이란 꿈과 희망이 꺾였다는 뜻이고, 그것은 곧 지도자로서의 죽음을 의미한다.

누가 이 또 하나의 죽음에 대해 책임을 질 것인가? 이 역시 그를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고 비난한 모든 사람을 유죄라 하자. 그러면 끝인가? 추모의 자리에서 물병을 던지고 욕을 하고, 그래서 다시 맹목적 반대를 유발한 사람들, 지금도 그가 꿈꾸던 합리적 이성과 토론은 뒤로한 채 감성과 감정을 동원하기에 바쁜 사람들, 또 그 위에서 여전히 ‘모이자’ ‘이기자’만 외치는 사람들, 이들은 유죄가 아닌가?

괜히 서럽다. 그를 먼저 보낸 것이 서럽고, 홀로 뒤처져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좋아하는 것이 옳지 않을 수 있다 말하는 처지가 서럽다. 차라리 그의 말대로 정치를 할걸. 그리고 같이 그 위에 올라타기나 할걸.

김병준 객원논설위원 국민대 교수 bjkim36@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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