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주객전도된 양적완화 추진

2016. 5. 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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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이른바 '한국판 양적완화'를 거세게 밀어붙이고 있다. 양적완화에 대해 정부에 반대 의견을 내는 듯했던 한국은행이 '협력' 방침으로 돌아선 가운데 기획재정부는 입법 어려움을 피할 수 있는 여러 방안들을 내놓고 있다. 양적완화 초점도 한은의 국책은행 채권인수에서 직접출자로 옮겨져 그 방안을 논의하는 '국책은행 자본확충 협의체'가 내일부터 가동된다. 현상적으로는 양적완화가 급물살을 타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서두르는 과정에서 편법과 변칙, 주객전도가 엿보인다. 과연 양적완화와 그 목적인 구조조정이 제대로 될지, 양적완화의 '성공'이 또 다른 부작용을 낳지 않을지 적잖게 우려된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어제 "구조조정 지원을 위해 필요한 역할을 적극 수행하겠다"고 밝혀 정부의 양적완화 추진에 큰 힘을 실어주었다. 때를 맞춘 듯 기재부는 한은의 수출입은행 출자나 산은 발행 코코본드(조건부자본증권) 매입, 산은에 대한 정부의 공기업주식 현물출자 등의 방안을 제시하고 나섰다.

정부와 한은 등 관련 당국의 행보는 양적완화 추진을 위한 여건을 갖추고 '묘수'를 찾아낸 듯한 모습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이 빠진 채 주변적인 것에 치우쳐 있으며 편법에 기대고 있다는 염려가 든다.

무엇보다 총선 뒤 가라앉았던 양적완화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것부터가 돌발적이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한은의 태도가 며칠 만에 선회한 것도 석연치 않다. 한은이 구조조정을 최대한 뒷받침하겠다는 자세를 보인 것은 바람직해 보이지만 이 같은 태도 변화가 "경제ㆍ금융수장들이 한은의 팔을 비튼 결과"라는 말이 나온다. 한은 스스로가 독립적인 중앙은행으로서의 위상을 스스로 훼손했다는 비판을 받을 만하다.

지금이 비상시기이며 구조조정이 신속과감해야 한다는 데는 이론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다급하니까 쉬운 수단부터 쓰고 보자는 식이어선 안 된다. 무엇보다 경제 구조개혁을 위한 종합적 구상부터 나와야 한다. 나중에 수정ㆍ보완하더라도 구조조정 필요 재원의 규모, 분명한 처리 원칙이 제시돼야 한다.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 다른 수단에 대한 검토까지 폭넓은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

구조조정 작업은 단기간에 끝날 게 아니다. 재원 마련은 지속적인 숙제다. 이 과정에서 여소야대 국회에서의 입법작업은 어차피 피할 수 없다. 급하다고 빨리 가려다가 오히려 늦어지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내일부터 열리는 '자본확충 협의체'는 그 이름처럼 결론을 미리 정해놓고 들어갈 게 아니라 근본적이고 우선적인 문제부터 검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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