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면칼럼]이건희회장 '냉혹한 가르침'

박종면 더벨대표 2012. 12. 3. 0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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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박종면더벨대표]그리스 크레타 출신의 '20세기 문학의 구도자'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영혼의 자서전'에는 당시 지배자였던 터키사람들에 의한 크레타인 학살 장면이 나온다. 학살이 끝나자 어린 카잔차키스는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동네 항구 쪽으로 간다. 거기엔 큰 대추야자나무에 목이 매달려 흔들리는 동족 크레타인들의 시신이 여럿 있었다.

아버지는 겁에 질려있는 카잔차키스에게 그 시신의 발을 만지게 하고, 입을 맞추고 경배를 하도록 했다. 아버지는 시신 아래 있던 핏자국투성이의 돌멩이를 하나 집어 들고는 간직하도록 했다.

카잔차키스는 후일 '영혼의 자서전'에서 고백한다. "나는 아버지가 왜 그토록 냉혹하게 행동했는지를 나중에 가서야 이해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종족을 보존하는 유일한 길인 무자비한 옛 방법을 따랐다. 늑대가 소중한 새끼를 가르치는 방법이 그러하다. 어려움을 당할 때 마다 항상 나를 지켜 준 인내와 집념을 나는 아버지의 냉혹한 가르침에서 얻었다."

카잔차키스는 이런 고백도 한다. "나는 그때 처음 푸릇푸릇한 들판과 열매가 풍성한 넝쿨과 밀빵과 어머니의 미소라는 아름다운 가면 뒤에 숨은 삶의 진짜 얼굴을 보았다. 삶의 진짜 얼굴은 해골이었다."

삶의 진짜 얼굴이 학살과 시신, 핏투성이의 돌멩이와 해골이라면 기업경영의 진짜 얼굴은 뭘까.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한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은 취임 후 25년 동안 매출은 39배 늘렸고, 시가총액은 303배나 키웠다.

삼성전자는 세계 최강기업 애플과의 특허전쟁에서도 밀리지 않고 있다. 코앞으로 다가온 미국 법원의 판결결과에 관계없이 삼성전자는 이미 애플에 당당히 맞서는 기업으로 인정받음으로써 브랜드 가치가 특허전쟁 이전보다 훨씬 높아졌다.

이런 업적을 올린 이건희 회장이지만 취임 후 25년만에 처음 취임 기념식을 열었다. 외환위기와 비자금사건 등으로 끊임없이 시련이 닥쳤기 때문이다.

시련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이맹희씨가 지난 2월부터 벌이고 있는 차명주식에 대한 유산소송이 바로 그것이다. 김용철씨 비자금 사건과 이맹희씨 유산소송은 말하자면 기업경영의 진짜 얼굴이다.

유산소송은 확전양상이다. 이맹희씨측은 최근 차명주식 131만여주를 찾아냈다며 이것까지 상속회복 청구대상에 포함시켰다. 경우에 따라선 삼성의 지배구조가 흔들릴 수 있다.

여론은 대한민국 1등 기업을 넘어선 초일류 글로벌 기업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속분쟁에 대해 볼썽사납다고 하고, 막장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고도 한다. 인화의 삼성을 강조했던 선대회장의 유지를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럼에도 이건희 회장은 단호하다. 이 문제에 관한한 이 회장은 걸리거나 막힘이 없다. 최근 호암 25주기 추모식 논란 때 다시 한번 확인됐다. 앞으로의 유산소송이 어떻게 진행될지도 너무 분명하다.

이는 상속분쟁과 지배구조문제가 이건희 회장 본인 대에 그치지 않고 후대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핵심 경영요소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앞으로 다시 25년, 50년 삼성 경영을 끌어갈 이재용 사장을 비롯한 후임 경영자들에게 확실한 메시지를 던져 주려는 것이기도 하다.

그룹을 지키고 보전하는 길이라면 단호한 방법이라도 따라야한다는 그 불편한 진실 말이다. 혁신과 창의, 나눔도 중요하지만 기업경영의 진짜 얼굴을 늘 직시하라는 무언의 가르침이다.

30~40년 뒤 이재용 사장도 "어려움을 당할 때 마다 나를 지켜준 인내와 집념을 나는 아버지의 냉혹한 가르침에서 얻었다"고 고백할 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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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박종면더벨대표 m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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