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구 칼럼] 시민운동과 국가경영의 연결고리

중앙일보

이홍구전 총리·본사 고문 올해 대통령선거를 어떻게 전망하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정치학 교과서대로 진행되고 있지 않아 속단하기가 어렵다며 대답을 미뤄 왔다. 이제 대선은 열흘 후로 다가왔고, 판세는 여전히 혼미한 상태지만 적어도 교과서가 제시하는 민주정치의 원리를 재확인해 볼 수 있는 방향으로 선거가 흐르고 있다는 생각이다. 한마디로 민주국가에서 시민운동과 국가경영의 연결고리를 찾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도 중요한 과제인가를 되새겨볼 계기가 마련되었다는 것이다.

 2012년 대선은 이른바 안철수 현상으로 특징지워질 수 있다. 거기에 대한 심층 분석도 있을 터이지만 우선 우리 사회의 큰 변화의 동력 셋이 어우러지면서 그와 같은 현상이 작동하게 되었다는 가설은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첫째로 세계적 경제위기에 시달리는 한국 경제가 빈부격차의 확대와 양극화 현상, 고용시장의 침체와 청년실업의 증대로 광범위한 불만과 불안이 조성되고 있다. 둘째로 정부·국회·정당을 포함한 정치권은 이러한 당면문제 해결에 심각한 한계를 노출함으로써 국민적 불신임의 대상이 되었다. 셋째로 20·30대가 대표하는 새 시대로의 세대교체가 원활히 수용되지 못한 채 사회적·문화적으로 표류하고 있다. 이러한 불안정과 불확실성의 늪에서 젊은이들의 변화에 대한 욕구에 불을 붙인 것이 안철수 신드롬이었다.

 문제는 이렇듯 점화된 변화의 동력이 국가경영에 어떻게 연계될 수 있는가에 대한 충분한 이해나 계획 없이 대선의 흥분에 휩쓸려버린 것이다. 특히 변화를 기다리는 젊은이들의 갈망을 '새 정치에 대한 꿈'으로 포장해 정치운동의 성격을 띠면서 시민운동은 선거의 변수로 작동하게 되었다. 그러나 국가 경영은 꿈만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누가, 어떻게 나라를 경영하고 책임질 것인가 하는 수많은 요건의 총체적 종합과제인 것이다. 1948년 대한민국을 출범시킨 제헌헌법은 그러한 과제를 처리하는 규범과 절차를 명시하면서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못박고 있다. 국민으로부터 국가 권력을 위임받는 절차, 특히 직접선거를 대통령의 경우에도 적용시킨다고 87년 개정헌법이 명시함으로써 혁명이 아닌 민주선거에 의해 다섯 번의 정권교체가 가능했다. 이렇듯 민주정치 운영에 관한 헌법 규범과 규정이 확실함에도 국민의 뜻과 국가권력이 실제로 어떤 유기적 연계를 맺는가는 모든 민주국가 체제가 안고 있는 가장 큰 숙제다. 그 숙제를 풀기 위한 초점은 대의민주주의의 연계고리 역할을 담당하는 정당의 조직·정책·자금 등을 어떻게 민주·책임·효능의 기준을 충족시키는 수준으로 발전시키고 의회가 민주정치의 중심이 되어 국가경영의 한 축을 맡도록 하느냐에 달려 있다.

 민주정치에서의 국가경영은 종합예술의 성격을 갖추어야 한다. 단순히 이미지와 분위기에 치중하는 예능활동을 넘어선 국가 비전과 전략을 총망라한 큰 그림을 효율적으로 기획한 극본, 국민과 세계무대에 내놓을 수 있는 고도의 연출력, 광범위한 지지와 호응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주연과 조연 집단, 감동의 무대장치와 음악 등이 구비되었을 때 비로소 국가경영의 책임을 맡을 이상적 모델이 될 수 있다.

 젊은 세대가 주축이 된 안철수 현상이란 시민개혁운동은 빠른 속도로 그 세(勢)가 확산되었다. 한국 민주주의가 필요로 하는 시의적절한 시민의 움직임이며 이를 주도한 안철수 교수는 역사의 흐름을 적절히 인식한 지도자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다만 그러한 시민운동을 불과 몇 개월 동안에 국가경영을 책임질 모든 조건을 구비한 정치집단으로 전환시키겠다는 실험은 아무리 상황의 논리를 적용한다 해도 과도한 비약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개혁적 독립세력을 지향하는 시민후보나 '시대와 역사의 소명'에 충실한 국민후보의 위치나 위상을 마다하고 대다수 국민의 신임을 잃어버린 기존 정당들의 구태의연한 정치싸움에 끼어들어 여야 대결 구도 속의 야권 후보가 되기를 선택했었다는 것은 한국 정치사에 또 하나의 아쉬운 장(章)으로 남게 되었다. 길게 먼 훗날을 기약할 수 있는 젊은이들의 특권을 간과한 안타까운 에피소드임에 틀림없다.

 그래도 새 정치를 희구하는 젊은 세대의 꿈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나라와 민족의 발전을 위해서는 미래지향적 세대교체를 서둘러야 한다. 식민지시대, 분단시대, 산업화시대, 민주화시대의 이념, 아집, 한을 품고 넘어온 노년들은 뒤로 물러서야 할 지구촌시대가 도래했다. 열흘 뒤에 선출될 새 대통령이 이끄는 다음 5년이 그러한 집단적 세대교체와 한국 르네상스의 여명이 되기를 기원한다.

이홍구 전 총리·중앙일보 고문

이홍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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