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철원이 철새의 낙원? 사실은.."

박수택 기자 2016. 2. 14.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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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다치고..두루미· 재두루미 수난


강원도 철원은 국내 최대급 철새도래지로서 흔히 ‘철새의 낙원’이라고 부른다. 제주도처럼 화산 활동으로 흘러나온 용암이 굳어 생긴 현무암 지대에 한탄강이 협곡을 이뤄 아름다운 관광지이기도 하다. 천 년 전 후삼국 시대에 후고구려-태봉국을 일으켰지만 왕건에게 나라를 잃은 비운의 영웅 궁예의 자취, 일제 강점기에는 금강산과 원산으로 통하는 길목의 도시로 번성했던 역사도 기억할 만하다. 우리 현대사의 비극 남북 분단과 전쟁의 상처를 입고도 자연과 사람이 공생하는 땅으로 되살아난 고장이라는 찬사도 들려온다. 자연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철새 가운데서도 두루미, 재두루미다. 희귀하고 우아한 이들 철새 덕분에 국제적으로도 이름을 널리 알렸다.

강원도와 철원군은 두루미를 자랑거리로 내세운다. 두루미는 철원군의 상징 새이기도 하다. 가로등까지도 두루미 모습으로 만들고, 철원평야에서 생산하는 쌀의 상표를 ‘두루웰’이라고 붙였다. 두루미와 웰빙을 합쳐 만든 표현이다. 올해 1월부터 한국관광공사가 철원에서 두루미 생태관광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철원이 생태와 안보를 결합한 관광의 시험무대가 될 것’이라고 관광공사는 기대를 걸고 있다. 그런만큼 철원에서 두루미는 등 따습게 배부르게 대우받고 있을까?

철원 동송읍 장흥리에 있는 천연기념물 동물치료소(사무국장 김수호)에는 고라니, 고니를 비롯해 몸을 다친 야생 동물이 끊임없이 들어온다. 한국조류보호협회 철원지회가 당국의 위탁을 받아 운영하는 시설이다. 멸종위기종이며 천연기념물로 국가가 특별하게 보호한다는 두루미, 재두루미도 이곳의 단골 환자다. 다리가 부러지고, 날개가 꺾이거나 찢겨나가고, 오염된 모이를 먹고 병에 걸리거나, 심지어는 목숨이 끊어져 논바닥에 처박혀 있다가 독수리나 다른 짐승에게 먹혀 형체조차 알 수 없게 되는 사고가 비일비재하다. 

2001년에서 2014년 1월까지 13년 동안 철원에서 빚어진 두루미, 재두루미 사고는 47건에 56마리다. 두루미 27마리, 재두루미 29마리가 희생됐다. 한해 평균 4.3마리이다. 국립생태원 연구원으로 근무하는 유승화 박사가 2014년도 서울대 대학원 학위 논문에서 집계했다.  국내 최대 두루미 도래지인 철원에서 두루미가 얼마나 위험에 처했는지 여실히 밝힌 논문이다. 원인 분석에 이어서 개선 방향까지 제시한 것으로 앞으로 두루미 보호와 서식지 보전에 참고할 만하다.

논문을 보면 두루미 재두루미 사고 원인은 충돌에 의한 것이 24건으로 전체의 42.9%를 차지했다. 세분하면 전선 충돌 16건(28.6%), 철책 충돌 6건(10.7%), 건물 충돌 2건(3.6%)이다. 충돌외 다른 원인으로는 중독 사고가 15건으로 가장 많고 골절, 총상, 탈진, 감염이 1건씩이다. 사체를 독수리나 다른 짐승이 뜯어먹어 원인을 알 수 없는 경우도 11건이었다. 통틀어서 보면 충돌과 중독이 전체 두루미 재두루미 사고 요인의 70%를 차지해서 가장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날개나 다리가 부러져 죽거나 다치는 경우, 원인을 알 수 없는 사망의 경우는 주로 전선에 부딪쳤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고 유 박사는 논문에서 지적했다. 두루미가 많이 모여드는 민통 지역(민간인 출입 통제지역; 비무장지대 남방한계선 남쪽에 군사 활동을 위해 설정한 통제 지역) 농경지에 전봇대와 전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어서 전선 충돌 사고 위험은 더욱 심각해질 판이다. 철새는 추수 끝난 뒤 들에 떨어진 벼 낟알을 쪼아 먹으며 겨울을 난다. 들판에 들어차는 채소 재배 비닐하우스 때문에 두루미들은 쉼터, 모이터를 잃는다. 축산분뇨(돼지오줌)액비 저장 시설도 들어서서 전기 끌어 쓰는 곳은 더욱 늘었다. 하늘을 가로지르는 전선은 철새에겐 낙원은커녕 감옥의 전기 창살일 뿐이다.

일본 홋카이도에서도 번식하는 두루미의 증가 추세가 1960~70년에 주춤했던 것은 전선 충돌과 관련이 있다고 유 박사는 연구 자료를 제시했다. 일본 환경성 쿠시로(釧路)자연환경사무소도 두루미 관찰 안내 자료에서 40년 전인 1970년대 후반부터 전력회사의 협력으로 두루미 전선 충돌 사고 대책을 세우면서 개체 수가 서서히 증가하기 시작했고, 2005년에 1,000마리를 넘어서게 됐다고 설명한다. 근원적인 대책이라면 전선을 땅에 묻는 것이지만 비용이 많이 들어 시행하기 어렵다. 타협책이 전선 덮개다. 두루미가 많이 오가는 곳 전선에 눈에 잘 띄는 노란색의 덮개를 일정 구간으로 씌워 두루미가 일찍 알아차리게 배려한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충돌을 줄이는 데 상당히 효과가 있다는 연구도 나왔다. 한국전력 측은 철원군과 농민, 조류 전문가들과 상의해 올해 안에 시범으로 전선 덮개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두루미가 철원에서 안심하고 지내기 어렵게 하는 사건은 이밖에도 겨울철 농지 정리와 농수로를  콘크리트로 바꾸는 공사, 대규모 건설 공사, 늘어나는 인삼밭, 볏짚 말아 소 사료로 내가는 관행, 한겨울 논에 축산분뇨 액비 뿌리기, 두루미 생태를 무시한 무지스런 접근, 쓰레기 태우기 등등 이루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앞으로 취재파일에서 상황을 자세히 전하기로 한다. 아무리 두루미가 귀한들 사람보다 귀할 수 있겠느냐, 주민이 잘 살고 봐야 두루미도 지킬 수 있다고 상당수의 주민들은 목청을 높인다. 일리 있는 주장이다.

두루미도 살고 주민도 득보고 지역은 활기를 띠며 철원과 대한민국이 지구 생물다양성에 기여한다고 국제사회에서 인정받는 길을 찾아야 한다. 멸종위기종이다 천연기념물이다 말로만 위하지 말고  죽고 다치는 두루미가 더는 생기지 않도록 함이 급선무다. 주민과 지자체, 정부, 시민단체, 전문가가 서로 마음을 열고 머리를 맞대야 한다. 새 조차 발붙일 수 없는 땅이라면 사람인들 잘 살 리가 없다. 두루미, 곤경에서 구해줬더니 은혜 갚으러 오더라는 옛이야기도 있지 않던가?

▶ [취재파일] 두루미의 자식 사랑, 세상살이 준비 교육
      

박수택 기자ecopark@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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