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사람 잡을 평창 스키점프장 체험기

권종오 기자 입력 2015. 3. 1. 08:42 수정 2015. 3. 1.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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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30일이었습니다. 평창 동계올림픽 준비 상황 취재를 위해 강원대 평창에 위치한 스키점프대 꼭대기에 직접 올라갔습니다. 알펜시아를 비롯해 눈으로 덮인 평창 일대가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아름다운 풍경이었습니다. 그런데 순간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의 강풍이 불었습니다. 그때가 오후 3시쯤이었습니다. 가만히 서 있기도 어려운데 가뜩이나 위험한 올림픽 스키 점프 경기를 어떻게 치를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실제로 2009년에 지어진 평창 스키점프장은 첫해부터 사고를 일으켰습니다. 대륙간컵 스키점프 대회가 이곳에서 처음 열렸는데 미국의 국가대표 선수인 닉(Nick)이 갑자기 부는 뒷바람에 중심을 잃고 그대로 추락했습니다.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니었지만 정말 아찔한 상황이었습니다. 2011년부터는 국제대회가 한 번도 열리지 않았습니다. 한국 국가대표 선수들도 2년 전부터는 겨울에 훈련을 하지 못하고 해외 전지훈련을 떠났습니다. 낙후된 시설 등 여러 요인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원인은 세찬 바람이었습니다. 풍속은 선수 안전에 최대 관건이기 때문입니다.

국제스키연맹(FIS) 규정에 따르면 초속 3m 이상의 바람이 불면 경기가 일시 중지되고, 5m가 넘어가면 그날 경기는 중단됩니다. 어제(2월28일) 막을 내린 제96회 전국 동계체육대회 스키점프 경기가 돌연 취소된 것도 안전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평창 스키점프장의 2월 풍속을 보면 낮에는 평균 초속 3.2m, 최대 풍속은 1초당 5m에 이릅니다. 낮 경기를 사실상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밤에는 바람이 다소 약해지지만 경기하기에는 여전히 쉽지 않습니다.

평창 스키점프장의 가장 큰 비극은 지어서는 안 될 곳에 지었다는 것입니다. 국제스키연맹 관계자와 국내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입니다. 역대 동계올림픽을 치른 다른 나라의 스키점프장를 보면 주로 산 허리 아래에 있는데다 지형적으로 바람이 가장 적게 부는 곳에 건설돼 있습니다. 하지만 평창 스키점프장은 주위에서 바람을 막아줄 지형에 위치해 있지 않습니다. 쉽게 말해 강한 바람에 그대로 노출돼 있는 것입니다.

평창 스키점프장에서 국제대회를 할 수 없다는 것, 따라서 스키점프장이 '무용지물'이 됐다는 사실은 이미 오래전부터 지적돼온 사항입니다 그런데도 평창 조직위는 이를 계속 방치해왔습니다. 지난해 8월 국제스키연맹이 재인증 불가 판정을 내렸는데도 '예산이 없다'는 핑계로 발 빠른 조치를 하지 않았습니다. 보다 못한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달에야 부랴부랴 긴급 예산 80억을 투입하겠다고 나섰습니다.

모든 상황을 고려하면 현재 내릴 수 있는 결론은 2가지입니다. 먼저 스키점프장을 지어서는 안 될 곳에 지은 것에 대한 강도 높은 조사와 책임자 문책이 있어야 합니다. 평창 조직위원회의 시설 담당자들이 전문 지식 부족으로 판단을 잘못했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로 일부러 그곳에 건설했는지 철저히 가려야 합니다. 스키점프장에 무려 533억원의 국민 혈세가 쓰여졌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는 새로운 지역에 새로 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평창 조직위는 방풍막 등 방풍 시설로 강풍을 막겠다는 군색한 변명을 늘어놓고 있습니다. 스키점프는 꼭대기에서 땅까지 100m 이상을 공중에서 나는 경기입니다. 선수가 출발해서 착지할 때까지 어떻게 방풍막으로 다 막겠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조직위는 "새로 지을 경우 1,000억원 가까이 들고 시간도 너무 촉박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경기 도중 혹시 선수가 강풍 때문에 떨어져 사망하거나 중상을 당하는 경우가 생기면 그것으로 올림픽은 사실상 끝입니다. 평창조직위와 문체부, 강원도 등 관련 기관의 현명하고도 과감한 판단을 기대해봅니다.

권종오 기자 kjo@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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